美, ‘北 사실상 2인자’까지 제재…비핵화 미루는 北에 강력 경고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2월 11일 16시 1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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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북한의 ‘사실상 2인자’를 제재 명단에 올리면서 북한에 대한 ‘최대의 압박’ 전략에서 물러설 뜻이 없음을 분명히 했다. 이번 조치로 북-미 비핵화 협상의 교착 상태가 심화되고 2차 북-미 정상회담의 성사 가능성도 더욱 불투명해질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미 재무부는 10일(현지시간) 북한의 권력서열 2위로 평가돼온 최룡해 노동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과 정경택 국가보위상, 박광호 노동당 부위원장 겸 선전선동부장을 제재 명단에 추가했다고 발표했다. 재무부는 “북한에서 자행되는 지속적이고 심각한 인권유린에 이들이 책임이 있다”고 밝혔다. 로버트 팔라디노 국무부 부대변인도 성명에서 “‘10일 세계 인권의 날’을 맞아 심각한 인권 유린과 검열에 책임 있는 3명을 제재 대상에 추가했다”며 “북한의 인권 유린은 세계 최악의 수준”이라고 비판했다.

인권 문제는 북한이 국제사회의 일원이 되는 데 발목을 잡는 아킬레스건인데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오른팔로 불리는 최 부위원장이 포함됨으로써, 트럼프 행정부가 대북 압박 차원을 넘어, 비핵화 협상 결렬까지도 대비하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 워싱턴 정가에서 나온다. 워싱턴의 한 정통한 외교소식통은 “이번 조치는 정례적 인권보고서 제출에 따른 행정행위 성격이 강하지만 북-미 협상이 교착상태에 빠진 상태에서 나온 것인 만큼 북한 비핵화에 대한 트럼프 행정부의 회의적 시각이 반영된 결과로 보는 게 타당하다”고 말했다.

재무부는 최 부위원장에 대해 “검열기관인 노동당 조직지도부장을 맡아 당과 정부, 군까지 통솔하는 ‘사실상의 2인자’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노동당 조직지도부는 간부·당원을 포함해 사실상 전 주민에 대한 통제권을 가진 곳으로 북한 권력의 중추인 노동당 안에서도 핵심 부서로 꼽힌다. 김정일 정권 때는 김정일 위원장이 직접 맡았지만, 올해 1월 최 부위원장이 조직지도부장을 겸직한다는 보도가 나오면서 그가 김정은 시대의 권력 실세라는 걸 공인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정경두 국가보위상은 지난해 11월 정보기관과 비밀경찰 역할을 하는 국가보위성의 수장으로 임명된 뒤 검열 등을 통해 인권을 유린해온 또 다른 권력 실세다. 국무부도 별도의 자료를 통해 “정 국가보위상은 정치범 수용소의 고문, 굶기기, 강제노동, 성폭행 같은 심각한 인권 유린을 지시하는데 관여하고 있다”고 밝혔다.

박광호 부위원장은 사상 검열과 정보 통제, 인민 교화 등을 맡는 선전선동부를 책임지는 인물. 김정은 위원장의 동생 김여정이 선전선동부에서 제1부부장을 맡고 있는 걸 감안하면 ‘얼굴마담에 불과하다’는 평가도 있지만 지난해 10월 정치국 위원 등 당 요직에 발탁되면서 김정은 정권에서 떠오르는 실세라는 분석도 나온다.

대통령 행정명령 13687호에 따라 인권 유린에 책임이 있는 지도자급 인사들을 대상으로 진행돼온 미국의 독자 제재는 이번이 4번째다. 미국은 2016년 1월 북한의 4차 핵실험과 장거리 미사일 발사 이후 같은 해 7월 김 위원장을 비롯한 개인 15명과 기관 8곳을 인권 문제로 제대 대상에 처음 올렸다. 지난해 1월에는 김여정 부부장 등을 명단에 올린 데 이어 같은 해 10월에는 정영수 노동상까지 제재 대상에 포함시켰다. 지금까지 개인 32명, 기관 13곳이 이 제재 명단에 올라 있다.

이번 조치는 북한의 강력한 요구에도 불구하고 대북 압박을 풀지 않겠다는 트럼프 행정부의 의지를 명확하게 드러낸 것이라는 해석이다. 스티븐 므누신 재무장관은 보도자료에서 “재무부는 북한 주민을 억압하고 통제하기 위해 잔인한 검열, 인권침해와 유린을 저지르는 부서들을 지휘하는 고위 관리들을 제재하고 있다”며 “이번 제재는 표현의 자유에 대한 지속적인 지지, 그리고 검열과 인권침해에 대한 반대를 보여준다”고 밝혔다.

국무부는 재무부의 제재와는 별도로 북한 인권 유린 관련 정례보고서를 이날 연방 상·하원에 제출했다. 2016년 2월 시행된 대북제재강화법(H.R. 757)은 국무장관이 북한의 인권유린과 내부검열에 책임 있는 북한 인사들의 명단과 그들이 보인 행위를 파악해 180일마다 의회에 보고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번 보고서는 제재 대상자를 발표할 때마다 의회에 제출됐으며, 지난해 말 10월 3차 보고서 이후 1년 2개월 만에 제출됐다.

이 때문에 트럼프 행정부가 세계 인권의 날을 맞아 보고서를 제출하면서 행정조치 성격으로 제재 대상자를 발표한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한국 정부의 한 관계자는 “정경택과 박광호가 지난해 말 현직에 임명된 이후 이번에 보고서가 나오면서 관련 부서 책임자가 제재 명단에 오른 것으로 볼 수 있다”며 “최룡해 역시 올해 1월 노동당 조직지도부장에 올랐다는 보도가 나온 만큼 두 사람과 같은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워싱턴=박정훈 특파원sunshad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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