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선로전환기 고장…KTX, 7년 만에 동일 문제로 탈선사고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2월 9일 20시 46분


코멘트
“만약 평창올림픽 때 사고가 났다면 어떻게 할 뻔 했나요.”

8일 발생한 강원 강릉시 고속철도(KTX) 탈선에 대해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이 9일 강원 강릉시 운산동 사고 현장을 찾아 오영식 한국코레일 사장을 질책하며 한 말이다. 사고 직후 국토부, 항공철도사고조사위원회 등 5개 기관의 현장 확인 결과 사고가 난 남강릉분기점의 선로전환기 2개는 고장 상태를 외부로 알려 주는 케이블이 서로 엇갈려 연결된 사실이 확인됐다.

이들이 언제부터 다른 선로전환기의 상태를 표시하고 있었는지도 밝혀지지 않았다. 실제 올림픽 기간에 ‘대형 사고’가 발생했을 수도 있었다는 의미다. 한국철도학회 관계자는 “통상 1건의 큰 사고가 표면에 드러나면 실제로는 300번의 작은 사고가 숨어 있다는 ‘하인리히의 법칙’이 산업 현장의 정설”이라며 “최근 잇따른 대형 철도사고는 국내 철도안전체계의 위험성을 나타내고 있다”고 했다.

● 또 선로전환기 고장, 7년 만에 동일 문제로 탈선


지금까지 조사 결과 이번 사고 역시 ‘인재(人災)’에 가깝다. 위험 신호는 사고 발생 전부터 감지됐다. 사고 직전 강릉역과 코레일 관제센터에는 강릉차량기지 방향으로 열차를 보내는 ‘21A’ 선로전환기의 문제 신호가 접수됐다. 코레일 직원들이 현장 점검을 했지만 이상을 발견하지 못했다.

케이블이 잘못 끼워져 있어서 정작 고장 난 ‘21B’ 선로전환기를 들여다보지도 못했다. 열차는 문제가 없는 것으로 신호가 뜬 서울행 선로(21B 관할)로 직선 주행했다가 사고가 났다. 움직이는 선로가 당초 진행해야할 선로와 붙어 있지 않다보니 열차는 탈선한 것이다.

남강릉분기점의 선로전환기 케이블은 사고 지점에서 조금 떨어진 청량신호소 내 신호기계실에 꽂혀 있다. 지난해 6월 설치됐다. 박규환 코레일 기술본부장은 “(선로전환기) 최종 점검이 지난해 9월 17일 있었고, 그때 결손이 발생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했다. 국토부 측은 “누가 언제 케이블을 잘못 연결했는지 조사할 예정”이라고 했다. 한국철도시설공단이 신호소 공사를 끝냈을 때부터 케이블 연결이 잘못되어 있었는지, 추후 유지보수 과정에서 코레일 측에서 문제를 일으켰는지 조사하겠다는 뜻이다.

강릉선은 지난해 12월 개통했다. 개통 후 1년 간 이상 유무를 알지 못했던 것이다. 오 사장은 “(평창올림픽 때) 장애가 발생했다면 문제가 됐겠지만, 다행히 장애가 발생하지 않았다”고 했다.

이번 사고로 열차 10량 전체(기관차 2량 포함)가 선로에서 이탈했다. 당시 충격으로 앞쪽 2량은 T자로 꺾인 채 튕겨 나갔다. 대규모 인명 피해로 이어질 수 있었지만 출발한지 얼마 안 돼 저속주행(시속 103km) 중이라 참사를 면할 수 있었다. 철로 양쪽은 20~30m 높이의 급경사로 열차가 아래로 추락하지 않은 것이 천만다행이다 싶을 정도로 아찔한 구간이다.

선로전환기 관리 문제는 2004년 KTX 상업운행 이후 고질적인 문제로 지목됐다. 2011년 2월 경기 광명시 경부고속선 일직터널에서 발생한 KTX 탈선 역시 이 장치의 너트가 빠지면서 선로전환이 제대로 되지 않아 일어났다. 익명을 요구한 한 철도 전문가는 “7년 전 문제를 제대로 고치지 못하고 또 다시 사고가 난 상황”이라고 꼬집었다.

● 비상안전경영, 총리 질책 끝나자마 사고


국내 철도의 ‘안전 불감증’이 정도를 넘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코레일은 철도사고가 빈발하자 지난달 23일부터 이달 4일까지 비상안전경영에 나섰다. 이낙연 국무총리마저 5일 대전 코레일 본사를 찾아 “국민 불신을 완전 불식할 안전 대책을 마련하라”고 지시했음에도 사흘 만에 역대 두 번째 KTX 탈선 사고가 발생했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홍철호(자유한국당) 의원에 따르면 2013년부터 올해 7월까지 코레일의 기관차·전동차 고장 건수는 661건으로 사흘에 한 번 꼴이었다.

전문가들은 더 늦기 전에 종합안전대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장수은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는 “세계적으로 고속철도용 신선(新線)에서는 탈선이 거의 발생하지 않는다”며 “이번 사고도 만약 300㎞로 달리다 났다면 대형 참사가 났을 것”이라고 했다.

철도 운영관리 책임이 불완전하게 이뤄진 게 사고의 근본원인이라는 시각도 있다. 2004년 건설교통부는 철도청을 분리해 건설 및 유지보수는 철도시설공단, 운영은 코레일이 맡게 했다. 그런데 철도청 노조가 반대해 유지보수 인력은 지금도 코레일에 있다. 장 교수는 “유지보수 인력을 철도 운영 주체인 코레일이 아닌 곳에 둬야 안전점검을 강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박재명 기자 jmpark@donga.com
서형석 기자 skytree08@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