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달째 물고기 떼죽음… 지옥이 된 ‘천국의 강’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2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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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부터 두 달 동안 이라크 전역에서 정확한 원인을 알지 못하는 물고기 떼죽음 사태가 계속되고 있다. 죽은 채 수면 위로 떠오른 물고기들을 굴착기로 퍼내야 할 정도다. AP 뉴시스
10월부터 두 달 동안 이라크 전역에서 정확한 원인을 알지 못하는 물고기 떼죽음 사태가 계속되고 있다. 죽은 채 수면 위로 떠오른 물고기들을 굴착기로 퍼내야 할 정도다. AP 뉴시스
이라크 수도 바그다드에서 남쪽으로 약 70km 떨어진 작은 도시 뮤지입. 이곳에서 민물고기 양식업으로 생계를 유지해 왔던 한 남성은 망연자실했다.

그는 “어디서부터 어떻게 치워야 할지, 치운다고 강이 되살아날 수 있을지, 모든 것이 불확실하다. 너무 두렵다”고 말했다. ‘떼죽음’을 당한 물고기 수만 마리가 강둑에서 악취를 내뿜으며 그의 눈앞에서 썩어가고 있었다.

이라크 중심을 가로지르는 두 물줄기 유프라테스강과 티그리스강을 따라 자리 잡은 도시들에서는 요즘 한숨 소리가 가득하다. 10월 이라크 북부의 강 상류 지역에서 떼죽음을 당한 물고기들이 처음 발견된 뒤로 강줄기를 따라 물고기 떼죽음 사태가 두 달 동안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수면 위로 허연 배를 드러내고 죽은 물고기들이 셀 수 없을 정도다. 떠밀려 내려온 물고기 사체들이 강둑마다 널브러져 있어 발 디딜 곳을 찾기도 어려울 정도다. 썩어가는 물고기들이 내뿜는 악취로 숨조차 쉬기 힘들다. 피해 상황이 가장 심각한 바그다드 남쪽 바빌론 등지에서는 굴착기로 죽은 물고기를 퍼내고, 퍼낸 물고기를 대형 트럭으로 실어 나르는 일만으로도 하루가 다 가는 상황이다.

이라크 정부는 비상 상황에 놓였다. 지난달 정부는 “당분간 강에서 건진 물고기는 먹지도, 팔지도 말아야 한다”고 시민들에게 주의를 당부했다. 또 바그다드를 비롯해 도시와 도시 사이의 물고기 거래도 사실상 전면 금지했다.

이라크에서 유프라테스강과 티그리스강은 ‘천국의 강’이라고 불려왔다. 여기서 잡은 물고기를 장작 구이나 훈제로 먹는 ‘마스쿠프’라는 요리는 이라크를 대표하는 전통 음식이다. 하지만 지금은 관광지에서조차 마스쿠프 요리가 사라졌다.

이라크 정부는 아직 물고기 떼죽음의 정확한 원인을 찾아내지 못한 상태다. 단순히 ‘수질 오염’이 원인이란 답만 내놨다. 이라크 정부의 요청으로 원인 조사에 나선 세계보건기구(WHO)는 악성 폐수에서나 나오는 고농도 암모니아 등이 강에서 발견됐고 이 때문에 물고기가 떼죽음을 당했을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이라크 주민 사이에서는 “누군가 고의로 물을 오염시키고 있다” “사람에게 전염되는 바이러스가 발견됐다” 등의 흉흉한 소문들이 퍼지고 있다. 민물고기를 잡아 팔거나 양식업을 하는 등 강줄기에 의존해 생계를 유지해왔던 주민들은 경제적으로 위기에 빠져 있다. 미처 다 치우지 못해 2차 오염 피해까지 우려되는 상황이다. 양식업을 하는 한 남성은 “며칠 안에 이 물이 우리를 독살할 것 같은 두려움을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이번 물고기 떼죽음 사태로 이라크 내 ‘물 부족 갈등’은 더 심각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유프라테스강과 티그리스강 상류를 차지하고 있는 터키가 댐을 건설하면서 이라크 강 수위는 이미 눈에 띄게 낮아진 상태다. 강수량도 매년 줄어 만성적인 물 부족에 시달리고 있다. 올여름 이라크 전역에서는 물 부족 대책을 제대로 세우지 못한 정부의 무능함에 분노한 시민들이 거리로 나와 대규모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카이로=서동일 특파원 dong@donga.com
#이라크#물고기 떼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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