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무량 그대로인데… “야근 하지마”, ‘지타하라 스트레스’ 日 사회문제로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2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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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정부 ‘야근제한 정책’에 중간관리자들 샌드위치 신세

3년 전 일본인 A 씨(당시 48세)는 일본 도쿄 동쪽 지바(千葉)현 내 한 자동차 판매 회사의 신규 매장 점장으로 부임했다. 기쁨도 잠시. A 씨는 오전 6시에 출근해 밤늦게 귀가했다. 집에서 일을 할 때도 많았다. 아내가 “당신 좀 쉬어야 한다”고 걱정하면 A 씨는 “후배 사원에게 야근을 시키면 안 된다고 하는데 업무량은 줄지 않으니 내가 해야 한다”고 말했다.

과다한 업무를 견디지 못한 A 씨는 점장 부임 3개월 만에 돌연 종적을 감췄다. 두 달이 지나서야 집에 돌아온 A 씨는 의사로부터 스트레스성 우울증 진단을 받았다. 그 때문에 회사로부터 해고 통보를 받자 무효 소송을 제기했다. 그는 소송 도중 괴로움을 참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지바현 노동기준감독기관은 과다 업무를 자살의 원인으로 판단해 산업재해로 인정했다.

요즘 일본에선 A 씨 같은 사람을 ‘지타하라’의 피해자라고 부른다. 지타하라는 ‘시간 단축(지탄·時短)’과 괴롭힘이라는 뜻의 ‘하러스먼트(Harassment)’의 합성어로, 업무량은 줄지 않았는데 회사로부터 무리한 시간 단축을 요구받는 것을 뜻한다. 올해 유행어 대상 후보 중 하나로 거론될 정도로 사회적 이슈가 되고 있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는 야근 시간을 ‘월 100시간 미만, 연간 720시간 미만으로 제한’하는 것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일하는 방식 개혁’을 핵심 정책의 하나로 추진 중이다. 이런 내용을 담은 관련 법률은 6월 일본 국회에서 통과돼 내년 4월부터 시행될 예정이다. 일본 언론들은 3일 ‘3년 전 숨진 A 씨’를 상기시키며 “내년 ‘일하는 방식 개혁’이 본격 시행되면 제2, 제3의 A 씨 같은 희생자가 속출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A 씨의 아내도 언론 인터뷰에서 “다시는 남편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길 바란다”고 말했다.

최근 일본 노동상담소에는 중간 관리직의 고민 상담 전화가 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스다 미키(須田美貴) 노무사는 기자와 통화에서 “야근 때문에 집에 가지 못하는 것을 개인 문제로 보는 회사들이 있다. ‘지타하라’는 회사 차원에서 고민해야 하는 문제”라고 말했다.

중간 관리자가 부하 직원의 업무를 떠안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일본 근로기준법상 관리직은 근로시간 규제가 적용되지 않는 재량 근로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점장 과장 등 직함뿐인 관리직이 적지 않다. 소프트웨어 개발 업체 ‘사이보즈’가 올해 초 20∼50대 중간 관리자 5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일하는 방식 개혁’에서 상사와 부하의 사이에 끼어 있다는 인식을 보인 중간 관리자가 55%나 됐다.

마이니치신문은 “업무가 (중간 관리자 등에게) 주는 괴롭힘은 회사에 생산성 저하 등의 큰 손실을 가져올 수 있다”고 지적했다. 후생노동성은 ‘무리한 근무 시간 단축 등에 따른 직장 내 괴롭힘’을 방지하기 위한 법률안을 마련해 내년 국회에 제출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도쿄=김범석 특파원 bsism@donga.com
#야근제한#아베#지타하라 스트레스#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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