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적부터 교통안전 익혀야”…한국 면허시험 수준 교육 받는 스위스 초등생들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2월 2일 17시 2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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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트리아 빈의 프라터 공원에 마련된 ‘교통 유치원’에서 10월 19일(현지 시간) 한 어린이가 도로에서 안전하게 자전거 타는 법을 배우고 있다. 이곳처럼 유럽 여러 국가에는 실제 도로와 비슷한 환경에서 어린이가 교통안전 규칙을 배울 수 있는 교육시설이 마련돼 있다. 빈=최지선 기자 aurinko@donga.com
오스트리아 빈의 프라터 공원에 마련된 ‘교통 유치원’에서 10월 19일(현지 시간) 한 어린이가 도로에서 안전하게 자전거 타는 법을 배우고 있다. 이곳처럼 유럽 여러 국가에는 실제 도로와 비슷한 환경에서 어린이가 교통안전 규칙을 배울 수 있는 교육시설이 마련돼 있다. 빈=최지선 기자 aurinko@donga.com

스위스의 초등학생들은 학교에서 도로 신호체계와 복잡한 표지판 읽는 법을 배운다. 국내 운전면허시험에 나올 만한 수준이다. 한 예로 초등학교 4학년 학생들은 73개의 교통 상황과 각종 교통 표지판을 익힌다. 이를 소개한 책에는 보행자 우선구역, 제한 최고속도 시속 30km를 뜻하는 ‘Zone(구역) 30’ 같은 간단한 표지판부터 합류도로, 회전교차로 등 복잡한 표지판까지 자세히 쓰여 있다. 마지막 부분에 수록된 간단한 퀴즈로 평가도 받는다. 어릴 때부터 몸에 익히는 교통안전 교육은 유럽 여러 나라에서 익숙한 모습이다. 취리히주(州) 경찰에서 초등학생 교통교육을 맡고 있는 크리스티안 셸리바움 씨는 “신호체계 교육은 교통안전에 필수다. 고학년으로 갈수록 더 복잡한 신호와 표지판을 배운다”라고 말했다.

● 직접 자전거 타며 배우는 교통안전

10월 19일(현지 시간) 오스트리아 빈의 프라터 공원에 마련된 ‘교통 유치원’에 갖춰진 어린이 교통안전 교육 시설. 빈=최지선 기자 aurinko@donga.com
10월 19일(현지 시간) 오스트리아 빈의 프라터 공원에 마련된 ‘교통 유치원’에 갖춰진 어린이 교통안전 교육 시설. 빈=최지선 기자 aurinko@donga.com
10월 19일(현지 시간) 오스트리아 빈의 프라터 공원에서 7세 남자아이가 자전거를 타고 있었다. 자동차 운전면허시험장에서 조심스레 차를 몰듯 어린이는 머리에 안전모(헬멧)를 쓰고 페달을 조심스럽게 밟았다. 이곳은 빈의 어린이 누구나 교통안전을 배우는 ‘교통 유치원’이다.

교통 유치원에서는 어린이가 자전거를 타고 도로에 나가기 전 신호등과 표지판에 충분히 익숙해질 수 있도록 교통안전 규칙들을 가르친다. 오스트리아 정부가 만 12세 미만 어린이들이 안전하게 자전거를 탈 수 있도록 한 ‘어린이 자전거 면허증’ 제도를 위해 만들어진 곳이다. 어린이들은 경찰관의 지도와 감독을 받으며 신호와 표지판을 잘 지키는 시험을 치르고 합격해야만 자전거 면허증을 받을 수 있다. 시민의 55%가 한 달에 한 번 이상 자전거를 타는 빈에서 어린이들은 스스로 시민의 일원이 된다는 성취감도 느낀다.

빈시(市) 자전거팀의 마르틴 블룸 매니저는 “어릴 때부터 철저하게 교육하기 때문에 어린이들이 교통 신호체계를 잘 알고 지키려고 노력한다”고 말했다. 빈의 보도나 차도 대부분에는 자전거를 위한 전용차로가 갖춰져 있다. 하지만 간혹 차도를 이용할 경우가 있다. 이를 위해 어린이에게도 자동차의 신호체계를 꼼꼼히 가르치는 것이다.

● 안전도 ‘최신’을 가르치는 네덜란드

네덜란드교통안전협회(VVN)에서 마케팅과 교육을 맡고 있는 로프 솜포르스트 씨가 10월 29일(현지 시간) 네덜란드 아메르스포르트의 VVN에서 네덜란드 어린이를 위한 교통안전 교육 과정을 소개하고 있다. 아메르스포르트=구특교 기자 kootg@donga.com
네덜란드교통안전협회(VVN)에서 마케팅과 교육을 맡고 있는 로프 솜포르스트 씨가 10월 29일(현지 시간) 네덜란드 아메르스포르트의 VVN에서 네덜란드 어린이를 위한 교통안전 교육 과정을 소개하고 있다. 아메르스포르트=구특교 기자 kootg@donga.com
“자전거를 타면서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를 보내는 것은 ‘자살 행위’와 마찬가지입니다. 자전거 운전 중 휴대전화를 쓰다 발생하는 사고가 급속히 늘고 있어서 법안을 만들었습니다.”

10월 29일(현지 시간) 네덜란드 아메르스포르트 네덜란드교통안전협회(VVN)에서 마케팅과 교육을 맡고 있는 로프 솜포르스트 씨가 ‘가장 대표적인 어린이 교통안전 교육이 무엇이냐’는 기자의 질문에 자신 있게 내놓은 답이다. 네덜란드는 내년 7월 1일 자전거 운전 중 휴대전화 사용을 금지하는 법이 시행된다. 자전거를 타면서 휴대전화를 쓰는 ‘자전거 스몸비(스마트폰과 좀비의 합성어)족’ 때문에 일어나는 사고를 막기 위한 특단의 조치다.

자전거 스몸비족은 자전거를 몰면서 주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보거나 메시지를 읽는다. 운전자가 메시지를 보는 데 걸리는 시간은 평균 3초. 평균 시속 25km로 자전거를 타면 약 20m 이상 앞을 보지 않고 달리는 셈이 된다. 자전거 운전 중 메시지를 보내는 건 더욱 위험하다. 일부는 자전거에서 두 손을 떼기도 한다. 귀에 꽂은 이어폰에서 나오는 소리 때문에 차량이 가까이 오는지 모를 때도 있다. 솜포르스트 씨는 “메시지의 답장을 빨리 보내지 않으면 친구들에게 소외될까 하는 걱정 때문에 자전거 스몸비 사고가 늘고 있다. 새 법은 이런 최근의 문제를 반영한 것”이라고 소개했다.

자전거 사고를 줄이기 위한 캠페인은 다양하다. 대표적인 게 운전과 휴대전화 사용 중 하나만 하라는 ‘모노(MONO) 캠페인’이다. 과거 VVN은 운전자의 두려움을 자극하는 캠페인을 펼쳤다. 자전거 운전을 하면서 휴대전화를 사용하면 죽을 수 있다는 것을 강조했다. 하지만 자존감이 강한 네덜란드 국민에게 외면을 받았다. 반면 ‘운전할 때 휴대전화를 쓰지 않는 게 올바른 일’이란 점을 강조하며 자존감을 높인 모노 캠페인은 성공을 거뒀다.

네덜란드는 전체 인구(약 1700만 명)보다 많은 약 2200만 대의 자전거가 있는 나라다. 오스트리아처럼 자전거 교육을 어릴 때 시작한다. 정부는 자전거 안전교육 시험을 통과한 어린이에게 ‘자전거 안전 학위(디플로마)’를 제공한다. 1931년 시작한 네덜란드의 오랜 전통이다. 어린이들은 매년 4, 5, 6월에 필기시험과 실기시험을 치른다. 교통 규칙이나 안전한 이용 습관, 교통 수신호 등을 평가 받는다. 시험은 의무가 아니지만 네덜란드 초등학생의 92%가 학위를 받고 중학교로 진학한다. 도로에서 차를 운전하는 어른과 마찬가지로 자신도 교통안전의 한 축을 책임진다는 점을 몸으로 익힌다.

김상옥 삼성교통안전문화연구소 수석연구원은 “국내에서도 자전거 사용 인구가 급속히 늘어나고 관련 교통사고가 증가하고 있지만 관련 법규는 아직 초보적인 단계에 머물러 있다”며 “자전거를 타기 시작하는 어린 나이부터 철저한 교육을 통해 교통안전 문화가 뿌리내리도록 한 유럽 국가들의 세심한 사례들을 참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취리히·빈=최지선 기자 aurinko@donga.com
아메르스포르트=구특교 기자 kootg@donga.com

▼“한국도 음주-과속운전 막는 강력한 정책 시급”▼

국제교통포럼(ITF)에서 교통안전을 전문으로 연구하는 베로니크 페이펠 수석연구원이 10월 9일(현지 시간) 파리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본부에서 기자와 만나 한국의 교통안전 정책에 대해 조언을 하고 있다. 파리=서형석 기자 skytree08@donga.com
국제교통포럼(ITF)에서 교통안전을 전문으로 연구하는 베로니크 페이펠 수석연구원이 10월 9일(현지 시간) 파리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본부에서 기자와 만나 한국의 교통안전 정책에 대해 조언을 하고 있다. 파리=서형석 기자 skytree08@donga.com

2015년을 기준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35개 국 가운데 노르웨이(2.3명), 스웨덴(2.7명), 영국(2.8명), 멕시코(2.9명)는 인구 10만 명당 교통사고 사망자 수가 2명대에 머물렀다. 이들 국가의 평균 인구 10만 명당 교통사고 사망자 수는 한국(9.1명)의 3분의 1도 되지 않는다. ‘교통안전 선진국’이라 불리는 이들의 비결은 교통안전 문화가 일상이 되도록 만든 강력한 교통안전 정책이었다.

10월 9일(현지 시간) 프랑스 파리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본부에서 만난 국제교통포럼(ITF)의 베로니크 페이펠 수석연구원은 “교통사고 사망자 수를 줄일 때 가장 참고해야 할 국가 중 하나가 스웨덴”이라며 “도로 설계부터 교통사고 원인 분석까지 교통안전과 관련된 모든 정책에 ‘안전’을 최우선시 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국제도로교통사고센터(IRTAD)에서 20년 가까이 활동한 교통안전 분야의 세계적 학자다.

스웨덴의 지난해 인구 10만 명당 교통사고 사망자 수는 2.5명으로 2년 전보다 0.2명 더 줄었다. 지난해 8.1명이 숨진 한국의 30% 수준이다. 비결은 ‘비전제로(0)’ 정책이다. 1997년 스웨덴 정부가 교통사고 사망자 수를 0으로 만들기 위해 내건 정책 방향이다. 도로를 설계할 때 중앙분리대 설치를 의무화하고, 과속을 막기 위해 수시로 차로 수를 1, 2개씩 바꿔 운전자가 긴장하도록 했다.

특히 ‘음주운전과의 전쟁’에 집중했다. 스웨덴은 전체 교통사고 사망 원인 중 절반 이상이 음주운전 때문이다. 스웨덴 정부는 음주운전으로 한 번이라도 적발된 사람의 차량에 ‘음주운전 시동잠금장치’를 달도록 했다. 시동을 걸기 전 음주 여부를 확인하도록 한 장치다. 설치비용은 운전자가 부담한다. 국민도 호응하며 2007년 337명이었던 스웨덴의 음주운전 교통사고 사망자 수가 지난해 135명로 줄었다. 페이펠 연구원은 “세계적으로 음주운전자의 15%가 세 차례 이상 음주운전을 한 상습범”이라며 “특히 버스 운전사 등 생계형 운전자일수록 음주운전 시동잠금장치를 의무화하는 등 엄격한 조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도심의 차량속도를 줄이는 것도 강조했다. 과속은 음주운전과 함께 교통사고의 가장 큰 원인이다. 페이펠 연구원은 “보행자 통행이 잦은 도심에서는 시속 60km도 빠르다”며 “한국의 교통사고 사망자 중 보행자가 40%인 점을 볼 때 도심의 차량속도 하향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이어 “보행자를 우선시하는 문화가 정착할 수 있도록 한국 정부가 교통안전 선진국들의 강력한 교통안전 정책 경험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문했다.

파리=서형석 기자 skytree08@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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