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 발리볼] 조송화·김다솔, 흥국생명 두 세터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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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년 11월 30일 05시 3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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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국생명 조송화(왼쪽)-김다솔. 사진제공|흥국생명 핑크스파이더스
흥국생명 조송화(왼쪽)-김다솔. 사진제공|흥국생명 핑크스파이더스
세터는 특수 포지션이어서 한번 주전자리가 결정되면 쉽게 바뀌지 않는다.

주전세터의 연결 높이와 스피드, 타점에 맞춰 많은 공격수들이 몸의 기억을 완성하기에 어지간한 사정이 아니면 고정시킨다. 그런 면에서 본다면 흥국생명은 예외적이었다. V리그 출범 이후 팀을 거쳐 갔던 세터들이 많았다.

2005년 이수정을 시작으로 2005~2007시즌 이영주, 2007~2010시즌 이효희, 2010~2013시즌 김사니까지 2~3년 단위로 세터를 바꿨다. 이 가운데 한화 이글스 투수코치 이재우와 결혼하고 은퇴한 이영주가 2번의 챔피언결정전 우승을, 이효희가 1번의 챔피언결정전 우승과 준우승을 했다. 큰 기대 속에 이효희를 밀어내고 영입했던 FA선수 김사니는 준우승 한 번만 차지했다.

세터만큼이나 감독도 많이 교체됐다. 한 때 감독의 무덤이라는 별명이 붙었을 만큼 시즌 도중에 잦은 교체가 있었다. 2014년부터 팀을 이끄는 박미희 감독이 유일하게 팀과 재계약을 맺은 사례다. 또 하나의 예외가 바로 세터 조송화다. 벌써 6시즌 째 주전세터다. FA선수로 팀과 재계약도 맺었다.

흥국생명 박미희 감독. 스포츠동아DB
흥국생명 박미희 감독. 스포츠동아DB

● 박미희 감독의 선택과 신뢰가 만든 세터 조송화 체제

2013~2014시즌을 앞두고 해외진출을 선언한 FA선수 김사니가 훌쩍 흥국생명을 떠났다. 조송화가 덜컥 프로 2년째에 주전세터가 됐다. 팀으로서는 막막했다. 여자배구의 베테랑 류화석 감독은 불안한 세터자리를 보강하기 위해 실업배구에서 선수를 데려오는 등 여러 방법을 썼지만 효과는 없었다.

처음으로 주전세터가 된 시즌. 조송화는 고생했다. 자신에게 연결되는 공에 유난히 까탈스러운 불가리아 출신 바실레바의 레이저 눈빛을 맞아가면서 열심히 공을 올렸지만 결과는 나빴다. 바실레바는 한 경기에서 무려 57점의 최다득점 신기록을 세운 적도 있었지만 팀은 결국 6위로 시즌을 마쳤다.

2014~2015시즌을 앞두고 부임한 박미희 감독은 그런 조송화에게 무한신뢰를 보냈다. 그해 신인드래프트에서 쌍둥이자매 이재영과 이다영이 나왔다. 많은 이들은 오래 쓸 수 있는 세터 이다영을 선택할 것이라고 했지만 감독은 주저 없이 이재영을 지명했다. 그 선택의 결과는 배구팬 모두가 아는 대로다.

감독은 조송화의 능력을 믿고 앞으로 함께 가겠다는 강력한 신호를 줬다. 믿음의 결과, 2016~2017시즌 흥국생명은 9년 만에 리그 우승을 했다. 아쉬웠던 것은 IBK기업은행과의 챔피언결정전이었다.

흥국생명 조송화. 사진제공|흥국생명 핑크스파이더스
흥국생명 조송화. 사진제공|흥국생명 핑크스파이더스

● 조송화와 2016~2017시즌 챔피언결정전 2차전 2세트의 악몽

1차전을 풀세트 접전 끝에 이긴 흥국생명은 2차전에서도 첫 세트를 일방적으로 따냈다. 2세트도 거의 승리 직전이었다. 플레이오프에서 체력을 다 소진해버린 IBK기업은행 선수들이었다. 흥국생명의 우승이 눈앞으로 다가왔다.

하지만 24-21로 앞서던 경기가 뒤집어졌다. 이재영이 서브를 넣으러 후위로 빠진 상황에서 조송화의 연결은 외국인선수 러브에게 집중됐다. 25-26으로 역전당할 때까지 7번 연속 러브에게 향했던 연결은 답이 없었다. 결국 32-34로 세트를 내줬다. 시리즈의 분수령이었던 그 세트의 역전패를 고비로 시리즈마저 1승3패로 역전패 당했다. 흥국생명에게도 조송화에게도 정말로 아쉬운 순간. 그래서 사람들은 조송화를 박 감독의 아픈 손가락이라고 했다.

지난 시즌 조송화의 부상까지 겹쳐 6위로 시즌을 끝내자 세터보강과 교체 얘기가 나돌았지만 감독은 여전히 그를 신뢰했다. 2018~2019시즌의 시작도 조송화와 함께 했다.

흥국생명 김다솔. 사진제공|흥국생명 핑크스파이더스
흥국생명 김다솔. 사진제공|흥국생명 핑크스파이더스

● 오직 배구선수로 성공하겠다는 생각의 수련선수 출신 세터 김다솔

11월 18일 인삼공사와의 2라운드 원정경기. 흥국생명의 선발세터는 김다솔이었다. 어깨부상으로 훈련조차 못한 조송화를 대신했다. 그는 2014년 9월 신인드래프트에서 수련선수로 흥국생명 유니폼을 입었다. 당시 이름은 김도희.흥국생명 모기업의 재단인 세화여고 출신이라는 점을 감안한 선택이었다.

버티지 못하면 1년 뒤 선수생활을 그만둬야 하는 수련선수.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고 봤던 어머니는 배구를 포기하고 공부를 하라고 권했지만 그는 거부했다. 배구선수로 꼭 성공하겠다고 했다.

조송화가 부상을 당했던 2015~2016시즌 김다솔은 한동안 주전으로 뛸 기회가 있었다. 하지만 그의 역량을 신뢰하지 못한 코칭스태프는 마흔이 넘은 실업배구 선수출신의 이수정을 복귀시켜 시즌을 같이 보내게 했다.

첫 기회는 그렇게 사라졌다. 지금은 프로 5년차 김다솔에게 찾아온 2번째 기회다. 다행히 인삼공사와의 경기는 결과가 좋았다. 3-0 완승을 거뒀다. 그동안 팀의 약점으로 지적되던 문제들이 김다솔의 안정된 연결 덕분에 해결됐다. 이재영의 공격성공률은 급상승했고 김미연의 공격 장점도 살아났다.

하지만 21일 도로공사와의 경기에서는 고비를 넘지 못했다. 이재영이 아킬레스건 이상으로 제 역할을 못하자 그도 흔들렸다. 28일 IBK기업은행과의 2라운드 마지막 경기. 선발세터는 여전히 김다솔이었다. 루키 미들블로커 이주아와 유난히 호흡이 좋았던 김다솔이었지만 2세트 중반 흔들렸다.

박미희 감독은 8-4 경기가 12-8로 역전 당하자 조송화를 투입했다. 그 교체는 성공했다. 듀스 끝에 세트를 따냈고 경기도 3-1로 역전했다. 경기 뒤 박미희 감독은 두 세터를 모두 칭찬했다. 이제 흥국생명은 2명의 세터를 경쟁시켜가면서 경기의 흐름을 바꿀 수 있는 시스템을 갖췄다.

공교롭게도 이번 시즌 여자부 상위성적의 팀들은 모두 세터 2명의 경쟁체제다. GS칼텍스가 이고은~안혜진, IBK기업은행이 염혜선~이나연으로 시즌을 헤쳐 나가고 있다. 어느 스포츠에서건 영원한 주전, 천년만년 보장되는 내 자리는 없기에 경쟁은 선수들의 숙명이다. 과연 누가 핑크스파이더스의 주전세터로 오래 팬들의 기억에 남게 될지 궁금하다.

김종건 전문기자 marc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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