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과 놀자!/피플 in 뉴스]차이잉원 대만 총통의 위기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1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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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은 올림픽 등 국제경기 대회에 나갈 때 ‘타이완’ 대신 ‘차이니스 타이베이’라는 국호를 사용합니다. 중국의 ‘하나의 중국’ 정책에 따라 국제사회도 이 명칭을 지지합니다. 국제올림픽위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대만 내부의 속사정은 사뭇 다릅니다. 한편에선 중국의 그늘에서 벗어나 대만의 독립성과 정체성을 찾고자 하는 움직임이 지속돼 왔고, 다른 한편에선 현상 유지와 안정을 바라는 목소리가 만만치 않습니다.

전통적으로 수도 타이베이를 중심으로 한 대만 북부 지역은 국민당 지지세가 우세합니다. 1949년 중국 공산당에 패해 건너온 중국계 주민인 외성인(外省人)이 국민당 지지 기반입니다. 반면 제2도시 가오슝을 중심으로 한 남부 지역은 국공내전 이전부터 살고 있던 한족인 본성인(本省人)과 대만 원주민의 비율이 높아 대만의 독자성을 중시하는 민진당의 지지 기반입니다. 이러한 정치 구도 속에서 집권 민진당은 탈(脫)중국 노선을 추구했고, 국민당은 현상 유지를 기조로 삼아왔습니다.

2016년 총선에서 민진당이 크게 이기면서 탈중국화가 가속화하는 듯했습니다. 그러나 올해 11월 24일에 끝난 대만 지방선거 결과는 전통적 정치 판도를 크게 흔들었습니다. 시장과 시의원, 기초단체장 등 1000여 명을 선출한 이번 선거에서 차이잉원(蔡英文·사진) 총통이 이끄는 집권 민진당은 6대 직할시장 중 2곳을 제외한 나머지 4곳에서 야당인 국민당과 무소속 후보에게 패했습니다.

22개 현 시장 자리 중 3분의 2에 이르는 15곳을 국민당에 내줬습니다. 그중 가오슝 시장 선거는 민진당에 뼈아픈 상처를 안겨주었습니다. 정치적 입지가 약해 허수라는 말까지 들었던 국민당 한궈위(韓國瑜·61) 후보가 15만 표차로 압승을 거둔 겁니다. 대만 제2도시인 가오슝은 민진당이 깃발만 꽂으면 당선되는 곳이라 여겨온 거점 도시입니다.

우리나라로 말하자면 광주에서 무명의 자유한국당 후보가 당선된 것과 마찬가지인 상황입니다. 한궈위는 친중, 반중의 정치 이슈보다 경제 살리기를 최우선 공약으로 내세웠습니다. 가오슝 경제의 장기 침체로 일자리를 찾아 타이베이 등 북부로 떠날 수밖에 없는 현실을 파고들어 20, 30대의 압도적 지지를 이끌어 냈습니다.

대만 언론은 한궈위의 승리를 ‘한류 열풍’으로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차이 총통은 민진당 참패의 책임을 지고 주석 자리를 사퇴했습니다. 대만 국민들은 국가 정체성과 자존심보다 당장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실리를 선택했습니다.

이번 선거로 민진당의 탈중국화 움직임에 제동이 걸렸습니다. 지방선거와 동시에 치러진 국민투표에서 대만의 올림픽 국명 변경 안도 부결됐습니다. 대만 국민들은 정치 이슈 속에서 선수들이 대회에 출전하지 못하는 사태를 더 우려한 것 같습니다. 이와 함께 국민투표에 부쳐진 중요 안건인 ‘동성동본 허용’과 ‘탈원전 정책’도 모두 무산됐습니다.

어부지리(漁父之利)란 말이 있습니다. 도요새와 조개가 서로 물면서 다투는 사이 지나가던 어부가 힘들이지 않고 둘 다 잡았다는 중국 전국시대의 고사입니다. 둘이 다투는 사이 엉뚱한 제3자가 힘들이지 않고 이익을 취한다는 뜻이지요. 이번에 대만 야당인 국민당이 어부가 됐습니다. 중국과 집권 민진당의 힘겨루기 속에서 승리를 얻어냈으니 말입니다. 대만 사례에 비춰 우리 사회에도 또 다른 어부지리는 없는지 눈여겨볼 만합니다.

박인호 용인한국외대부고 교사
#차이잉원#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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