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의 미소’ 보물로 지정됐다…경주 얼굴무늬 수막새

  • 뉴시스
  • 입력 2018년 11월 27일 11시 0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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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의 미소’ 경주 얼굴무늬 수막새가 보물이 됐다.

문화재청은 ‘경주 얼굴무늬 수막새(慶州 人面文 圓瓦當)’를 비롯해 대형불화 ‘군위 법주사 괘불도(軍威 法住寺 掛佛圖)’, ‘예산 대련사 비로자나불 괘불도(禮山 大蓮寺 毘盧遮那佛 掛佛圖)’, ‘상주 남장사 영산회 괘불도(尙州 南長寺 靈山會 掛佛圖)’, 고려 시대 금속공예품 ‘경선사명 청동북(景禪寺 銘 金鼓)’, 조선 시대 고문서 ‘장철 정사공신녹권(張哲 定社功臣錄券)’ 등 6건을 보물로 지정했다.

보물 제2010호 ‘경주 얼굴무늬 수막새’는 신라 시대 원와당(圓瓦當)이다. 일제시기 경주 사정리(현 사정동)에서 출토된 것으로 알려졌다. 1934년 일본인 다나카 도시노부가 골동상점에서 구입한 당시부터 고고학술 자료를 통해 존재가 알려졌다. 이후 일본으로 반출됐다가 1972년 10월 국내 반환됐다.

와당 제작틀인 와범(瓦范)을 이용해 일률적으로 찍은 일반적 제작 방식과 달리 손으로 직접 빚은 작품이다. 바탕흙을 채워 가면서 전체적 형상을 만든 후 도구를 써서 세부 표현을 마무리했다. 오른쪽 아래 일부가 결실됐으나 얼굴 전면에 걸쳐 다듬은 흔적이 있다. 이마와 두 눈, 오뚝한 코, 잔잔한 미소, 두 뺨의 턱 선이 조화를 이룬 자연스러운 모습 등 숙련된 장인의 솜씨가 엿보인다.

지금까지 유일하게 알려진 삼국 시대 얼굴무늬 수막새이자 신라인들의 염원과 인간적 모습을 구현한 듯한 높은 예술적 경지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신라의 우수한 와당 기술이 집약된 대표작이다.
괘불도 3건은 문화재청이 전국 사찰에 소장된 대형 불화인 괘불도의 보존관리를 위해 추진하고 있는 정밀조사 사업 대상에 포함된 작품이다.

보물 제2005호 ‘군위 법주사 괘불도’는 1714년 5월 수화승 두초 등 화승 9명이 참여해 완성했다. 비단 16폭을 이었고 높이 10m에 달하는 장대한 크기다. 대형 화면에는 보관을 쓰고 두 손을 좌우로 벌려 연꽃을 둔 여래 입상을 화면 중간에 큼직하게 그렸다.

부처임에도 화려한 보관과 장신구를 착용한 보살의 모습으로 구현한 점, 하단에 용왕과 용녀를 협시보살처럼 배치한 점 등 다른 괘불도에서 볼 수 없는 독특한 화면 구성을 시도했다. 담채기법의 색감과 세밀하고 정교한 필선, 다양한 문양이 어우러져 작품 완성도가 높다. 또한 연꽃을 든 주존불 모습은 조선 후기 불화의 새로운 도상 연구를 위한 중요한 기준이 된다.

보물 제2006호 ‘예산 대련사 비로자나불 괘불도’는 1750년 축명, 사혜 등 화승 4명이 조성했다. 구도는 세로로 긴 화면에 비로자나불을 중심에 배치하고 좌우로 문수보살과 보현보살, 아난존자와 가섭존자를 상하로 그려 오존 형식을 취했다.

일목요연한 구도와 날씬하고 비례가 적당한 인체표현, 붉은색, 하늘색, 분홍색 등 밝고 부드러운 색채 사용은 18세기 전반 충청도 지역 불화 양식 계승을 잘 보여준다.

19세기 이전 조성된 비로자나불 괘불도는 남아있는 예가 거의 없다. 현존하는 작품은 일반적으로 주로 석가모니불, 노사나불과 함께 삼신불(三身佛)로 구성됐다. 이 괘불도는 유례가 드문 오존으로 구성된 작품이자 18세기 중엽 충청도 지역의 괘불 제작 경향을 보여주는 작품으로 조선 후기 불화 연구에 중요한 의의가 있다.
보물 제2007호 ‘상주 남장사 영산회 괘불도’는 야외에서 거행하는 불교의식인 영산재에 사용된 불화다. 1788년 조선 후기 대표 불화승인 상겸의 주도로 화승 22명이 참여해 완성했다.

높이 10m가 넘는 규모에도 불구하고 본존인 석가모니를 중심으로 주위에 권속을 짜임새 있게 배치했다. 밝고 짙은 채색으로 장식적인 요소가 돋보이는 화면이 특징이다. 명료하고 능숙한 필선으로 대상을 표현해 격조 있는 품위를 보여준다. 18세기 후반 경상북도의 대표 불화로 중요하게 평가되고 있다.
보물 제2008호 ‘경선사 명 청동북’은 사찰의 일상적 불교 의례에서 사용된 불교의식구인 청동북이다. 옆면에 새겨진 명문을 통해 무인년인 1218년께 무관 6명이 발원해 경선사에 봉안하기 위해 만든 작품임을 알 수 있다.

표면에는 굵고 가는 동심원 4개를 둘렀다. 중앙에는 연꽃 씨를 표현했다. 그 주위를 연화문 16개를 돌려가며 장식해 화려하고 조형적인 아름다움을 갖췄다. 고려 시대 청동북 중 아래에 공명구가 뚫려 있는 사례 중 시기적으로 가장 앞섰다.

지금까지 고려 청동북은 뒷면이 뚫려 있는 반자형(飯子形)이 주로 알려져 왔다. 옆면에 공명구가 마련된 경선사명 청동북은 13세기 청동북 중 기년명이 있는 보기 드문 사례이자 독특한 제작기법을 보여줘 고려 금속공예품 연구에서도 의미가 크다.
보물 제2009호 ‘장철 정사공신녹권’은 1398년 11월 공신도감에서 제1차 왕자의 난을 평정하는데 공을 세운 정사공신 29명 중 중추원부사 장철(1359∼1399)에게 발급된 녹권이다.

닥종이에 상·하 단변에 주사란(朱絲欄)을 긋고 공신호(功臣號)와 성명, 국왕의 명령으로 공신책봉을 하게 된 목적, 경위, 공신들의 공로와 관직, 공신의 포상과 이와 관련된 녹권의 발급 사실, 시행 일자가 순서대로 기록됐다.

이 녹권은 정사공신의 공적과 포상의 내역이 자세히 기록돼 있을뿐 아니라 한자어의 순우리말 표기인 이두가 많이 사용됐다.

문서 서식 또한 조선 초기 공신녹권 체제를 유지하고 있어 고문서 연구에도 의미가 있다. 지금까지 유일하게 확인된 조선 초기 정사공신녹권이자 역사적·국어학적·서지학적 가치가 높은 자료다.

【서울=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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