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카드 수수료 낮추기, 여전히 官治·黨治 못 벗어난 한국 금융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1월 27일 0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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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와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어제 국회 의원회관에서 당정회의를 열고 신용카드 수수료를 낮추는 방안을 확정했다. 연 매출 5억∼10억 원인 가맹점의 카드 수수료는 기존 2.05%에서 1.40%로, 10억∼30억 원은 2.21%에서 1.60%로 낮춰 내년부터 적용키로 했다. 그러면 가맹점당 연평균 147만∼505만 원 정도의 혜택을 볼 수 있다고 한다. 연 매출 5억 원 이하 가맹점까지 포함하면 전체의 93%에 이르는 250만 개 점포가 수수료 인하 혜택을 받게 된다는 게 당정의 설명이다.

이번 신용카드 수수료 인하 방침은 정부가 최저임금을 2년간 30% 가까이 무리하게 올리는 바람에 불만이 극에 달한 자영업자 달래기 성격이 짙다. 신용카드 수수료는 원칙적으로 카드회사와 편의점 같은 가맹점들이 자체적으로 협상해 결정하는 게 옳다. 실제 대부분의 선진국에서는 그렇게 한다. 한국은 아직 관치(官治)의 그늘이 남아 있어 금융당국이 카드회사의 적정 원가 등을 계산하고 정책적 고려를 해 3년마다 결정한다.

어제가 내년부터 3년간 적용될 수수료율을 확정 발표하는 날이었다. 문재인 대통령은 22일 최종구 금융위원장에게 “카드 수수료 부담 완화 방안을 마련하라”며 인하 방안 마련을 지시했고 최 위원장은 다음 날 8개 카드회사 사장들을 소집해 비공개 회의를 열고 협조를 구했다. 같은 날 이해찬 민주당 대표는 “연 매출 10억 원 이하 가맹점은 다른 세제까지 감안하면 거의 0%에 가깝게 당정 간 합의됐다”며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 이 정도면 카드 수수료에 관한 한 한국 금융은 관치를 넘어 당치(黨治) 수준이다.

카드 수수료를 낮추면 가맹점들은 혜택을 볼 수 있으나 카드회사 사정은 나빠지기 마련이다. 당정은 카드회사들에 마케팅 비용을 줄여 수수료 인하에 따른 손실을 상쇄하라고 하는데 그렇게 되면 카드 이용자들이 받던 각종 혜택도 줄 수밖에 없다. 황당한 것은 치열한 경쟁을 벌이는 민간 기업에 정부가 마케팅 비용을 줄이라 말라고 말하는 시대착오적 발상이다. 정부와 정치권이 형편이 어려워진 소상공인을 위해 나서는 것은 이해될 여지가 있다. 하지만 정부 고시가격이 아닌 카드 수수료에 대해 금융당국은 물론이고 대통령과 여당 대표까지 직접 나서는 것은 금융 후진국에서나 볼 수 있는 일이다.
#신용카드#카드 수수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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