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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선지능 아동, 꾸준히 돌보니 학습능력 향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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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선지능 아동, 꾸준히 돌보니 학습능력 향상”

한우신 기자 입력 2018-11-16 03:00수정 2018-11-22 1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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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첫 ‘사회성과보상사업’
서울의 한 그룹홈에서 대교 소속 상담사 이정민 씨가 13일 경계선지능 아동 혜진이(가명)에게 인지 치료 수업을 하고 있다. 안철민 기자 acm08@donga.com
13일 오후 4시 서울의 한 그룹홈 시설. 5명의 아동·청소년이 함께 사는 이곳으로 들어서자 초등학교 5학년 혜진이(가명·여)가 부끄러운 듯 몸을 숨겼다. 기자와 함께 방문한 사람은 일주일에 한 번 혜진이를 만나는 정서와 인지 상담을 하는 전문심리상담사 이정민 씨다. 낯선 기자를 경계하는 것도 잠시, 혜진이는 상담사에게 착 달라붙었다. 이어 상담사와 혜진이는 마주 앉아 인지 치료 수업을 시작했다. 혜진이는 책을 읽으면서 글자 하나하나를 발음하는 데 집중했다. ‘분량’이라는 단어는 ‘불량’으로 발음하는 게 맞지만 혜진이는 ‘분’과 ‘량’을 나눠 말하다 보니 ‘분냥’으로 들렸다. 혜진이는 두 줄만 읽고 “선생님, 다 읽었어요”라고 말하기도 했다. 상담사가 “여기도 읽어야지”라고 손가락으로 짚어 보이자 다시 읽어 나갔다.

혜진이는 현재 5학년에 재학 중이고 실제 나이는 6학년이다. 또래 아이들과 조금 달라 보이는 건 혜진이가 ‘경계선지능 아동’이기 때문이다. 경계선지능 아동은 지능지수(IQ)가 71∼84인 아동이다. 70 이하는 지적장애에 해당해 등급에 따라 정부 지원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경계선지능에 속하면 별도 복지 혜택은 없다.

경계선지능 아동 대다수는 일반 학교에 다니지만 집중력이 부족하고 정서가 불안정한 경우가 많아 또래에 비해 뒤처지기 쉽다. 그렇다 보니 IQ 85 이상 아동들에 비해 기초생활수급자가 되거나 범죄에 노출될 우려가 크다. 당장 학교에서는 왕따를 당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특히 이들이 어릴 때 부모의 돌봄을 제대로 받지 못하면 사회생활을 원만히 할 능력을 갖추기 어렵다.



부모와 떨어져서 그룹홈이나 청소년복지시설에서 지내는 경계선지능 아동에 대한 지속적인 교육은 서울시가 2016년 8월 아시아 최초로 시작한 사회성과보상사업(SIB·Social Impact Bond)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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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소한 개념인 SIB는 사회 문제 해결을 민간기관이 주도하고 서울시 같은 정부기관은 성과에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사업을 말한다. 경계선지능 아동 교육 사업은 3년 동안 이뤄지는데, 사업 종료 후 대상 아동 중 경계를 벗어난 비율이 34% 이상이면 원금을 지급하고 43%를 넘어서면 투자 원금의 10%를 더 준다. 사업 운영기관은 팬 임팩트 코리아가 맡고, 교육기업인 대교에 아동 상담과 교육을 수행하게 했다. 2010년 영국에서 처음 도입된 SIB는 사업 종료 후 이자에 해당하는 인센티브를 준다는 점에서 채권이라는 의미의 본드(Bond)란 단어가 들어갔다. 실제 채권을 발행하는 것은 아니어서 혼란을 줄이기 위해 한국에서는 사회성과보상사업으로 불린다.

SIB가 주로 다루는 사업은 경계선지능 아동 교육처럼 복지 혜택을 받지 못하는 사회적 약자를 지원하며, 3∼5년에 걸쳐 이뤄진다. 영국 미국 호주 등 SIB가 활성화된 곳에서는 노숙인 자립 교육, 약물 복용 전력이 있는 청소년 상담 치료, 싱글맘을 위한 직업교육 등이 SIB 형태로 이뤄지고 있다. 국내에서는 서울시에 이어 경기도가 지난해 2월부터 기초수급자의 탈수급을 위한 자립 교육을 SIB 사업으로 시작했다. 서울시는 2호 SIB로 청년들이 일자리를 얻도록 돕는 취업 및 창업 교육, 인턴 알선 등을 한 기관에서 통합해 시행하는 사업을 계획 중이다. 여러 기관별로 나눠진 지원 정책들을 통합해 시행하여 어떤 것이 더 효과가 큰지 보겠다는 목표다.

SIB의 또 다른 가치는 소외된 사회적 약자들에게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기반을 닦는 데 있다. 혜진이는 책에 적힌 글자 하나하나를 힘겹게 읽었지만 뒤에 나오는 문제는 대부분 맞혔다. 상담사 이 씨는 “처음 만났던 2년 전과 비교하면 정말 학습능력이 많이 향상됐다. 꾸준히 상담하고 교육한 결과”라고 말했다. 처음에는 옆에서 지켜보는 기자를 경계하듯 책으로 얼굴을 가린 채 글을 읽던 혜진이는 시간이 지나자 자신이 만든 아이돌 사진 앨범과 유치원 졸업 사진을 보여주기도 했다. 혜진이를 돌보며 그룹홈을 운영하는 전모 씨는 “종전에는 이용할 수 있는 교육 프로그램이라고 해봐야 ‘12회 심리 상담’처럼 단발성인 경우가 많아 프로그램이 끝나면 아동이 오히려 상처를 받기도 했다”며 “이번 SIB 사업처럼 지속적으로 돌봐줄 수 있는 지원 체계가 갖춰져야 한다”고 말했다.

한우신 기자 hanwshin@donga.com
#경계선지능 아동#학습능력 향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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