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이 묻고 우아한이 답하다]천안함·연평도 도발, 北 사과받기 어렵다면 대안은?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1월 15일 12시 1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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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통일을 위해서는 연평해전, 연평도 포격, 천안함 피격과 같은 북한의 도발에 대한 사과를 받고 책임을 물어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도발에 북한 정권의 대내적인 권력 강화의 수단으로 이용되는 상황에서 사과를 받기는 현실적으로 어려워 보입니다. 그렇다면 북한에 직접적인 사과를 받는 것 외에는 정의를 세우기 위해 대한민국 정부가 취할 수 있는 행동은 없는 건가요?



A. 김영철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이 평창 동계올림픽 폐막식 참석을 위해 남한을 방문했을 때,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 도발 사건 희생자 유족들은 분통을 터트렸습니다. 주범으로 통일부 웹사이트에 적시돼 있던 김 부위원장이 사과 한 마디도 없이 북측 대표단을 이끌고 남한에 온다는 사실에 억장이 무너진 겁니다.

제가 직접 인터뷰했던 고 이상희 하사의 아버지 이성우 씨는 무엇보다 김 부위원장이 진짜 천안함 폭침의 주범이라고 특정할 수 없다고 오히려 감싸는 듯한 정부 발표에 울분을 참지 못했습니다. 이 씨는 “살인자의 이름을 대야 꼭 살인자라는 게 명시되나. 진짜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식”이라며 “북한에는 김영철 밖에 없나. 정부도 다른 인사를 내려 보내라고 할 수 있는 일 아니냐”고 반문했습니다.

실제로 김 부위원장의 방남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정부는 희생자 유족에게 그 어떤 양해나 이해를 구하지 않았습니다. 유족은 언론 보도를 통해 그의 방남 소식을 접해야 했죠. 설령 희생자 유족이 그의 방남을 끝까지 반대한다 해도 정부는 최대한 설득하는 노력을 했어야 한다는 생각에 지금도 변함이 없습니다. 그것이 국가를 지키다 희생된 호국영령들에 대한 예의이자, 당연한 도리라고 생각합니다.

정부가 김 부위원장이 주범이란 그간의 발언들을 주어 담은 것도 적절하지 않았습니다. 통일부는 천안함 폭침 사건은 북한이 일으켰고 당시 김영철이 정찰총국장이었다는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그가 천안함 폭침의 주범으로 특정할 수는 없다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이명박 박근혜 정부 당시 청와대와 국정원, 통일부 당국자들은 그가 주범이라고 공공연하게 이야기했습니다. 정찰총국은 각종 대남 도발을 주도하고 지휘하는 곳입니다. 황장엽 전 노동당 비서 암살 시도나 미국 소니사 해킹 등을 주도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수장인 김영철은 2016년에는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 대상이 됐고 미국의 독자제재 리스트에도 올랐습니다.

이후 김 위원장은 노동당 통전부장 자격으로 남북 관계의 핵심에 파고들었습니다. 전공분야도 아니면서 북-미 협상에서도 최전선에 서 있습니다. 정찰총국에서 그의 ‘오른팔’로 불리던 리선권 조국평화통일위원장 역시 남북 협상장에 나서며 심지어는 방북한 우리 경제계 총수들에게 “냉면이 목구멍으로 넘어가느냐”는 해서는 안 될 말을 내뱉고 있습니다. 과거 대남 공격과 공작을 주도했던 인사들이 갑자기 모자를 갈아 쓰고 대외 평화의 수호자로 나선 것입니다.

저는 남북 관계 개선과 평화를 위해서는 적이건 원수이건 필요하다면 협상 테이블에 앉아 얼굴을 맞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평창 동계올림픽을 계기로 남북이 마주앉아 남북관계와 북미관계의 정상화를 논의할 기회가 생겼고 북측이 다른 누구도 아닌 김 부위원장만을 대표로 고집했다면, 정부가 좀 더 현명하게 행동했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이성우 씨의 제안대로 김영철에 대한 우리 내부의 생각을 북측에 전하고 교체를 요구할 수는 없었을까요? 설령 그것이 뜻대로 안됐다면, 남측에 와서 최소한의 유감 표명이라도 하라고 요구할 수는 없었을까요? 비록 모든 것이 불가능했더라도 북한 비핵화와 남북관계 개선이라는 더 큰 목표를 위해서 불가피한 상황이라는 걸 희생자 유족과 국민들에게 설명하고 납득시켜야 했다는 생각입니다.

앞으로도 정부는 북한을 상대로 과거 도발에 대한 진상 규명과 성의 있는 사과를 촉구하는 일을 멈추지 말아야 합니다. 아울러 우리 내부를 상대로도 북한의 과거 대남 도발을 잊지 않기 위한 노력, 유가족과 생존 장병들의 복지를 챙기는 일에 소홀함이 없어야 하겠습니다. 특히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등 심적 물적 고통을 견디고 있는 천안함 폭침 사건 생존 장병들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과 지원이 가장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들은 제대로 된 보상을 받은 적이 없고 치료비도 본인이 부담했고 국가유공자 신청은 거절당했습니다.

지난 3월 대전 국립 현충원에서는 ‘서해 수호의 날’ 기념식이 열렸습니다. 올해 3회를 맞이한 행사는 서해 도발로 희생된 호국영령들의 넋을 기리기 위한 것입니다. 연평해전과 천안함 폭침 등 유가족들과 함께 군 통수권자인 대통령이 참여해 왔습니다. 그런데 올해 문재인 대통령은 해외순방을 이유로 참석하지 않았습니다. 일정 상 참석하지 못했다는 게 청와대의 설명이었지만 유가족은 서운함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나라를 위해 희생한 사람들을 기리는 일에 정권이, 이념이 따로 있을 수 없습니다. 이들에 대한 최대한의 예우와 추모야말로 국민들이 진짜 ‘조국’을 가슴에 그리게 하는 가장 기본이 아닐까요.

강은아 채널A 기자 eu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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