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리하면 “가짜뉴스”, 선거구호는 “자국 우선”… 트럼프에 물들다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1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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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YT ‘세계정치 트럼프化 현상’ 분석
투석 시위대에 발포 나이지리아군, 트럼프 反이민 발언 인용 정당화
시리아 수용소 의문사 보고서에 아사드 대통령 ‘가짜 뉴스’ 매도
이탈리아 퍼스트-브라질 위대하게… 트럼프식 정치구호도 단골 등장


“우리는 참지 않을 것입니다. 그들(이민자들)이 돌을 던지길 원한다면 우리 군대는 맞받아칩니다. 나는 그걸 총으로 간주하라고 말했습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1일 백악관에서 기자회견을 하던 중 남부 국경을 향하고 있는 중남미 국가 출신 이민자 행렬 ‘캐러밴’을 겨냥해 섬뜩한 경고를 날렸다. 총기 대응 발언이 논란이 되자 트럼프 대통령은 나중에 성명을 통해 “그들에게 총을 쏘라는 뜻은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24시간도 안 돼 엉뚱한 곳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총기 대응 발언 영상이 다시 등장했다. 나이지리아군은 2일 트위터에 “보고 판단하라”며 이 영상을 올렸다가 나중에 삭제했다. 지난달 말 수도 아부자 외곽 도로를 막고 돌을 던지며 시위를 벌인 이슬람 시아파 시위대 1000명에게 군이 발포한 사건을 교묘하게 정당화한 것이다.

뉴욕타임스(NYT)는 4일 “세계 지도자들이 트럼프 대통령의 화법을 따라 해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하고 비슷한 정책을 전파하는 데 이용하고 있다”며 4가지 유형을 분석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했던 것처럼 정적을 깎아내리고 공격적인 발언을 쏟아붓는 ‘트럼프화(Trumpified)’ 현상이 포퓰리즘 바람을 타고 세계 정치권을 물들이고 있다는 것이다.

전통 미디어에 대한 불신과 유권자들의 혼란을 유도하기 위해 트럼프 대통령이 자주 사용하는 ‘가짜뉴스(fake news)’ 주장은 시리아부터 이스라엘까지 세계 각국 정치 지도자들이 애용하고 있다.

시리아 정부는 2017년 2월 시리아 수용소에서 수천 명이 의문사한 것에 대한 책임을 지적한 국제앰네스티 보고서를 가짜뉴스로 일축했다. 바샤르 알 아사드 시리아 대통령은 야후뉴스 인터뷰에서 “요즘엔 어떤 것도 만들어낼 수 있다. 우리는 가짜뉴스의 시대에 살고 있다”고 주장했다. 미얀마 관리는 지난해 12월 NYT 인터뷰에서 “로힝야 같은 것은 없다”고 이슬람계 소수 인종인 로힝야족의 존재를 부인하면서 관련 기사들을 가짜뉴스라고 매도했다.

안제이 두다 폴란드 대통령은 1월 트위터에 트럼프 대통령의 가짜뉴스 용어 사용을 옹호하면서 언론 자유를 제한하고 정부가 언론사를 광범위하게 통제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는 법안에 서명하기도 했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도 전통 미디어를 가짜뉴스라고 공격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반이민 정책은 몰려드는 난민들로 골치를 앓고 있는 유럽 국가의 극우 정치 지도자들이 벤치마킹하는 단골 정책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소셜미디어 팔로어인 테오 프랑컨 벨기에 이민장관은 2일 “출생 시민권을 없애야 한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주장에 대해 “이 아이디어에 좋은 점이 많다”며 동조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아메리카 퍼스트’ 선거 구호는 국가 이름을 바꾸는 방식으로 다른 나라 우파 정치 지도자들의 선거 구호가 되고 있다. 이탈리아의 마테오 살비니 동맹당 대표는 올해 선거에서 ‘이탈리아 퍼스트’ 슬로건을 내세웠다. 브라질의 자이르 보우소나루 대통령 당선인은 “브라질을 위대하게 만들자(Let‘s make Brazil great)”라며 트럼프 대통령의 ‘미국을 위대하게’를 대놓고 베꼈다. 지난주에는 트럼프 대통령이 그랬던 것처럼 주이스라엘 대사관을 텔아비브에서 예루살렘으로 옮기겠다는 계획을 발표하기도 했다.

뉴욕=박용 특파원 parky@donga.com
#트럼프#가짜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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