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보 5800억 빼먹은 ‘사무장병원’ 등 90곳 수사의뢰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1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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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허대여 약국’도 24곳 포함… 부당청구 환수율은 4.9% 그쳐


경기 안양시의 한 의원에서 사무직원으로 일하던 A 씨(56)는 2014년 2월 원장이 은퇴하자 건물과 의료장비를 사들였다. 가짜 의료재단을 세워 ‘사무장병원’을 직접 운영할 심산이었다. 사무장병원은 비의료인이 의료인을 대리 원장으로 내세워 운영하는 병원으로 현행 의료법상 불법이다.

A 씨는 봉직의(페이닥터)를 앞세워 진료 수익금을 자기 주머니에 챙겼다. 외부 감사를 한 번도 받지 않았고, 이사회 회의록에도 친필 서명이 없었다.

아내와 자녀, 며느리 등을 직원으로 채용해 고액 임금도 지급했다. A 씨가 올해 8월 당국에 적발되기 전까지 챙긴 건강보험 진료비는 총 82억 원으로 집계됐다.

보건복지부와 국민건강보험공단은 1월부터 지난달까지 특별 단속을 벌여 A 씨처럼 불법 요양기관으로 의심되는 병의원과 약국 등 90곳을 경찰에 넘겼다고 5일 밝혔다.

유형별로는 요양병원이 34곳으로 가장 많았다. 요양병원은 비의료인 실소유주(사무장)의 관점에선 가장 짭짤한 돈벌이다. 2009년부터 올해 10월까지 적발된 사무장 요양병원 288곳의 부당이득금은 1곳당 평균 51억 원이었다. 같은 기간 전체 불법 요양기관 1550곳의 1곳당 평균 부당이득금(17억6600만 원)보다 3배 가까이로 많다. 한번에 많은 입원환자를 돌보기 때문이다.

약사를 ‘바지(가짜) 사장’으로 내세우고 실제 운영은 무면허자가 맡은 ‘면허대여 약국’도 24곳 적발됐다. 전남 여수시의 건물주 B 씨(54)는 인터넷 구인광고로 약사 C 씨(81)를 채용해 2014년 약국을 세우고 적발되기 전까지 총 18억 원을 챙겼다.

윤병철 복지부 약무정책과장은 “구조 자체는 사무장 병원과 같지만 면허대여 약국은 직원이 많지 않아 사무장과 약사가 말을 맞추기 쉽고, 그만큼 적발이 어렵다”고 말했다.

건보공단은 이번에 적발된 불법 요양기관이 벌어들인 건강보험 진료비 5812억 원을 전부 환수 대상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당국이 실제 사무장 병원으로부터 돌려받는 부당 수익금은 적다.

지난해 부당 청구된 불법 요양기관 진료비 중 건보 재정으로 돌아온 비율은 4.9%에 그쳤다. 조사가 들어오면 재산을 빼돌리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불법 요양기관이 챙긴 진료비 중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은 비급여 진료비도 전부 범죄수익으로 몰수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
#건보#요양병원#사무장병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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