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핵화 협상 오래 걸려도 상관없어” 트럼프의 ‘逆살라미 전술’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0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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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 비핵화 조치 야금야금 내놓자 ‘제재 못풀어 초조한건 北’ 장기전
조명균 “김정은 연내 답방 목표… 남북철도, 美 생각 다른 부분 있어”

스티븐 비건 미국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오른쪽에서 두 번째)가 29일 서울 종로구 외교부 청사에서 이도훈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오른쪽)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이 자리에는 해리 해리스 주한 미 대사(왼쪽에서 두 번째)와 앨리슨 후커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한반도 보좌관(왼쪽)이 배석했다. 안철민 기자 acm08@donga.com
스티븐 비건 미국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오른쪽에서 두 번째)가 29일 서울 종로구 외교부 청사에서 이도훈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오른쪽)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이 자리에는 해리 해리스 주한 미 대사(왼쪽에서 두 번째)와 앨리슨 후커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한반도 보좌관(왼쪽)이 배석했다. 안철민 기자 acm08@donga.com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7일(현지 시간) “오래 걸려도 상관없다”며 북한의 비핵화 속도에 재차 유연한 입장을 보였다. 미국이 비핵화 속도에 점차 느긋한 태도를 보이는 것은 대북제재 효과가 쌓이면서 결국 급한 쪽은 북한이라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외교가에선 북한이 비핵화 조치를 야금야금 내놓는 것을 베껴 미국 또한 비핵화 시한을 점층적으로 늘리는 ‘살라미 미러링(mirroring·모방)’을 펼치고 있다는 말까지 나온다.

○ 트럼프 “비핵화 얼마 걸릴지 몰라”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미 일리노이주 정치 유세에서 북한의 비핵화 협상 속도가 느리다는 비판과 관련해 “북한 핵실험이 없는 한 얼마나 오래 걸리든 상관하지 않을 것이라고 내 사람들에게도 말한다”고 했다. 지난달 26일 유엔총회 기자회견에서 “북한과 시간싸움(time game) 하지 않겠다. 2년이 걸리든, 3년이 걸리든, 5개월이 걸리든 문제 되지 않는다”고 밝힌 데서 한발 더 나가 아예 문턱을 없앤 것이다.

이 때문에 트럼프 대통령이 새로운 ‘시간 게임’에 돌입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북한이 종전선언 대신 대북제재 해제 같은 경제적 요구에 집중하는 만큼 키를 쥔 미국으로선 서두를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한 외교 소식통은 “대북제재는 시간이 지날수록 고스란히 미국의 대북 협상 칩으로 쌓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연설에서 “북한은 중국, 러시아, 한국 사이의 좋은 위치에 있어 경제적으로 훌륭한 곳이 될 것이다. 위치가 좋아 환상적인 곳이 될 것”이라고 반복했다. 핵을 포기할 경우 과감한 경제적 보상이 있다는 점을 강조한 셈이다.

또 다른 외교 소식통은 “김정은이 올해 정상 국가란 메시지를 지속적으로 강조한 만큼 다시 핵 도발과 같은 길로 되돌아가기는 힘들 것으로 미국이 판단한 것이다. 결국 본격적인 비핵화와 보상의 주고받기를 앞두고 북-미의 샅바 싸움이 길어지는 것 같다”고 했다.

○ 조명균 “연내 김정은 답방, 종전선언 가능”

비핵화 협상이 늘어지면서 시급해진 건 한국도 마찬가지다. 북-미 간 비핵화 협상이 지연될수록 남북 경협과 교류도 덩달아 위축되기 때문이다.

조명균 통일부 장관은 29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종합 국정감사에서 한미 간의 이견으로 남북 사업에 속도가 나지 않고 있음을 시사했다. 조 장관은 경의선 철도 공동 조사가 지연되는 것과 관련해 “미국 측과 저희가 부분적으로 약간 생각이 다른 부분이 있다”고 밝혔다. 또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위원회와도 북한에 올라가는 열차에 필요한 유류 등과 관련해 협의하고 있다. 아직 답을 얻지 못했다”고도 말했다.

그러면서도 조 장관은 연내 종전선언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서울 답방 가능성에 대한 질문에 “연내 실현을 목표로 노력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민주평화당 천정배 의원이 “연내 실현 가능성이 있다고 보느냐”고 재차 묻자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고 밝혔다. 하지만 북-미 간 정상회담이나 고위급 회담은커녕 실무회담마저 지체되는 상황에서 연내 종전선언 가능성은 갈수록 희박해지고 있다는 관측이 우세하다. 김 위원장이 서울에 오더라도 청와대의 기대와는 달리 한미는 물론 남남 갈등만 더 키울 것이라는 우려도 적지 않다.

신나리 기자 journari@donga.com / 뉴욕=박용 특파원
#트럼프#비핵화#조명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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