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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만든 옥룡은 살아 숨쉰다… 대륙이 감탄한 반도의 장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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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만든 옥룡은 살아 숨쉰다… 대륙이 감탄한 반도의 장인

정승호 광주호남취재본부장 입력 2018-10-29 03:00수정 2018-10-29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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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지정 중요무형문화재 제100호 장주원 옥장
국가지정 중요무형문화재 제100호 옥장 장주원 선생이 단단한 옥을 섬세하게 가공하기 위해서 갈이틀을 돌리고 있다. 선생은 뼈를 깎는 노력과 독창적인 상상력으로 옥공예 종주국인 중국을 능가하는 경지에 올랐다. 목포=박영철 기자 skyblue@donga.com

《 천공(天工). 하늘이 내린 재주 혹은 그런 재능을 갖춘 사람을 말한다. 국가지정 중요무형문화재 제100호 ‘옥장(玉匠)’ 장주원 선생(81)은 ‘천공’으로 불린다. 옥 덩어리를 잇거나 붙이지 않고 원석을 깎거나 뚫고 새기는 독보적 기법으로 옥공예를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린 명장(明匠)이다. 그의 솜씨 중 여의주가 용의 입안에서 빙글빙글 돌게 하는 ‘환주기법’, 하나의 원석에서 실을 뽑듯 만들어낸 둥근 고리로 쇠사슬 모양의 목걸이를 만들어내는 ‘고리연결 기법’ 등은 중국 8000년 역사의 옥공예 기법을 뛰어넘은 것들이다. 신기(神技)에 가까운 그의 작품을 보고 그를 스승으로 모시겠다는 중국의 옥공예 전문가들이 한두 명이 아니다. 》
 
장 선생의 옥공예 한평생이 고스란히 담긴 곳, 전남 목포시 용해동 갓바위문화타운 옥공예전시관에서 22일 그를 만났다. 그곳에는 옥공예 작품 250여 점이 전시돼 있다.

―3년 전 중국으로부터 ‘특급 대사(大師)’라는 칭호를 받으셨는데….

“2015년 5월 중국 상하이(上海)에서 중국 보옥석협회가 주최한 옥룡상 경선대회가 열렸어요. 중국 최고 권위의 옥공예 콘테스트로, 중국에서 내로라하는 장인 1000여 명이 출전했어요. 저는 8점을 출품했는데 대상과 금상, 은상, 창작상, 특별상 등 5개를 받았습니다. 대상을 받은 작품이 백옥으로 만든 ‘삼원관통향수병연결목걸이’였어요. 3개의 원을 72개 고리로 연결한 목걸이였는데, 중국 사람들이 이걸 보더니 ‘도대체 어떻게 만들었느냐’고 하더군요. 수상을 계기로 중국 정부로부터 옥공예 최고 명예인 ‘특급 대사’ 칭호를 받았습니다. 외국인이 최고 장인으로 선정된 것은 제가 처음이라고 하더군요.”


―옥으로 향수병 목걸이를 만든 기법이 그렇게 대단한 것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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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감정사들이 저를 보고 ‘신장(神匠)’이라고 불렀습니다. 작품을 보고는 ‘시공을 초월한 마술’이라고 했어요. ‘고리연결 기법’ 등은 중국에서 찾아볼 수 없거든요. 특히 ‘회전 관통기법’은 옥 원석에 5mm가량의 좁은 구멍을 뚫고 보이지 않는 옥의 내부 곡면을 일정한 두께로 파내는 작업인데 내시경 없이 수술을 하는 것과 같아요. 연마기가 옥을 갈아내는 마찰음을 손으로 느끼며 작업을 해야 하는데 온몸의 감각을 총동원해야 하는 초정밀 기술이죠. 기술 완성에 30년이 걸렸어요.”

―옥 종주국은 중국 아닙니까.

“중국에서 옥과 관련된 산업에 종사하는 사람이 8000만 명이에요. 이 중 3000만 명이 옥을 다루는 기술자들입니다. 국내 옥 공예가는 50여 명밖에 안 되니 비교 자체가 어렵죠. 그런데 옥을 매만지는 일부 기술은 이미 중국을 뛰어넘었습니다. 회전 관통기법은 첨단기술이 발달한 한국에서 레이저 등을 동원한 것으로 중국 전문가들이 오해를 할 정도입니다. 중국을 뛰어넘으려고 60년 가까이 돌을 만졌습니다. 감히 말하자면 이제 8분 능선까지 온 것 같습니다.”

―그래도 중국의 옥공예를 능가하기가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제가 주목하는 것은 우리의 전통적인 선(線)입니다. 화려하면서도 절제된 선 감각은 세계 어디에도 비길 수 없을 만큼 탁월합니다. 국보 83호인 반가사유상을 예로 들어볼까요. 단순하지만 균형 잡힌 신체, 자연스러우면서도 입체적인 옷 주름, 분명하게 표현된 이목구비, 여기에 더해 얼굴의 잔잔한 미소는 선의 미학을 보여줍니다. 제가 흑옥으로 반가사유상을 조각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중국 옥공예를 뛰어넘겠다는 욕심도 이런 문화적 자긍심에서 비롯됐다고 할 수 있습니다. 자연과 가장 가까운, 다시 말해 완벽에 가까운 것이 한국의 선이라면 중국은 지나치게 의식적이고 인위적이라 한계가 있다고 봅니다.”

―옥의 특별한 매력은 무엇인가요.

“옥의 매력은 은은함입니다. 옥은 단단하지만 부드럽고 따듯해 몸에 지니고 있을 때 은은하게 퍼지는 맑은 향기를 느낄 수 있어요. 서양의 보석은 화려하고 빛을 받으면 아주 반짝거리지만, 옥은 빛을 머금고 흡수해 은은하게 내면을 비추는 기묘한 아름다움을 지녔어요. 우리나라의 좋은 명칭 중에 ‘옥’자가 들어가는 게 많죠. 그만큼 우리나라 국민정서에는 옥에 대한 애정이 깊이 깔려 있어요.”

―옥공예를 하게 된 특별한 사연이 있으신지….

“목포에서 한의원을 운영한 할아버지와 금은방을 한 아버지 덕택에 부유한 청소년 시절을 보냈어요. 그런데 아버지가 광산 개발에 손을 댔다가 실패하면서 스물두 살 때 상경해 종로 금은세공장에서 일하며 기술을 익혔습니다. ‘목포 장’이라 불리며 제법 많은 돈을 벌었죠. 어느 날 손재주가 남다르다는 소문을 듣고 찾아온 손님이 고리가 부서진 중국산 옥향로를 수리해달라고 하더군요. 막막함을 느껴 보름간 두문불출하며 고민하다가 인생의 목표를 찾았어요. 20년 안에 세계 최고의 옥공예 기술자가 되는 것이었죠.”

―옥공예 기술은 어디서 전수받았나요.

“대만의 박물관을 오가며 순전히 독학으로 익혔습니다. 옥 제작법이나 공구에 대한 문헌도 없고 스승을 찾을 수도 없는 상황에서 중국과는 수교가 안 돼 있던 시절이라 다양한 옥 공예품을 만날 수 있는 유일한 곳이 대만이었어요. 아침에 빵과 우유를 사들고 박물관으로 들어가 하루 종일 중국 전통 옥 공예품을 들여다보다가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바로 스케치를 해 돌아오는 비행기를 탔습니다. 하루 한 끼 식사에 2, 3시간만 자면서 옥에 매달리다 보니 ‘미쳤다’는 소리를 숱하게 들었죠.”

장주원 선생이 5년 8개월에 걸쳐 완성한 ‘녹옥사귀용문해태향로’. 비취빛이 감도는 향로에는 용머리와 전통 문양이 섬세하게 새겨져 있다. 추정가는 80억 원에 이른다.
―옥 공예가로서 이름을 알리게 된 계기가 있었나요.

“중국을 능가하는 옥공예의 예술성을 알아본 동아일보사의 제안으로 1984년 4월 19일 초대전을 열었습니다. 당시 동아일보 초대전은 예술가들에게 꿈이자 로망이었어요. 초대전 개막 전날 당시 김상만 동아일보 명예회장께서 성대한 리셉션을 자택에서 열어주셨는데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 김우중 대우그룹 회장 등 TV에서만 봤던 재벌 총수들과 인사를 나눴습니다. 옥 공예품이 공개되자 문화계 인사들이 ‘하늘이 내린 장인’이라고 말했어요. 그때 60점을 전시했는데 감정가가 총 19억8000만 원이었습니다. 모두 팔려 나갔고 김상만 명예회장께서도 한 점 사주셨지요. 동아일보 초대전을 통해 세상에 이름을 드러낸 인연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전직 대통령들과도 특별한 인연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1976년 청와대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의 옥 지휘봉을 제작해달라는 부탁을 받았어요. 대통령 휘장과 여의주를 물고 있는 용 9마리를 새긴 지휘봉을 1년 넘게 작업해 납품했는데 박 전 대통령이 비서실장에게 ‘왜 제작자의 직인이 없느냐’며 질책을 했나 봐요. 저는 ‘원래 작품에 직인을 새기지 않는다’고 했지만 무조건 들어와서 파라는 거예요. 제 작품 중에서 직인이 들어간 것은 그 옥 지휘봉이 유일합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과는 학창시절부터 인연이 있어요. 제가 고등학교 2학년 때 김 전 대통령께서 운영하는 목포의 웅변학원을 3개월 정도 다녔거든요. 대통령이 된 김 전 대통령께 통일의 염원을 담아 무궁화 14개와 고리 15개가 달린 옥 작품을 선물했어요. 무궁화 14개는 남북의 14개 도(道)를 의미하고, 고리 15개는 김 전 대통령 이름의 한자 획수를 뜻하는 것이라고 했더니 김 전 대통령께서 무척 좋아하셨던 기억이 납니다.”

―앞으로 꼭 이루고 싶은 꿈이 있다면….

“그동안 수많은 작품을 만들었지만 26년째 작업 중인 ‘코리아 환타지’는 아무래도 생전에 완성하기 힘들 것 같습니다. 3t짜리 흑옥 원석에 단군시대부터 현대사에 이르는 상징적인 사실(史實)을 새기는 대작입니다. 현재 작업하는 작품 중에 꼭 완성해서 많은 이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게 ‘훈민정음 벼루’와 ‘5대양 6대주 향로’입니다. 작품을 보고 눈과 귀만 즐거우면 그건 기술이에요. 하지만 영혼을 울리는 것은 예술이죠. 누구나 제 작품을 보고 그런 감흥을 느꼈으면 좋겠습니다.”
 
인터뷰=정승호 광주호남취재본부장 shjung@donga.com
#국가지정 중요무형문화재#장주원#옥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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