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미야베 미유키가 안내하는 미스터리한 세계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0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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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탄의 문 1, 2/미야베 미유키 지음·김은모 옮김/516, 508쪽·각 1만5800원·문학동네

어쩌면 작가가 ‘와신상담(臥薪嘗膽)’했던 게 아닐까.

물론 헛소리일 가능성이 크다. 미야베 미유키가 뭐가 아쉬워서. 그런데 ‘비탄의 문’은 왠지 근거 없는 추측이 몽실몽실 피어난다. 그만큼 이 소설은 그의 2009년 작품 ‘영웅의 서’를 떠오르게 하니까.

미스터리와 판타지에 사회적 이슈가 결합된 ‘비탄의 문’은 작가의 힘이 느껴지는 작품이다. 주인공 고타로는 평범한 대학 신입생. 우연히 사이버패트롤 회사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인터넷 세상에 대해 배워나간다. 그런데 동료 모리나가가 노숙자 실종을 추적하다 사라진 뒤, 고타로는 그의 발자취를 따라 나가다 예상치 못한 일에 휩쓸린다. 거기엔 의문의 연쇄살인과 함께 비현실적 ‘영역’이 펼쳐지는데….

전혀 다른 소설이지만 ‘비탄의 문’과 ‘영웅의 서’가 겹쳐 보이는 건 두 소설이 공유하는 세계관 때문이다. 말과 이야기의 거대한 교집합 속에서 현실과 가상을 구분할 수 있는 세계가 존재한다는 설정이 깔려 있다. 작가의 의중을 넘겨 짚어본 것도 이 때문이다. 사실 전작은 너무 ‘판타지’했다. 롤플레잉게임을 하는 듯한 쾌감은 충만했지만, 미야베 특유의 ‘사회 고발’ 색채가 흐렸다. 그런데 이번 작품은 작심한 듯 이런 분위기를 강조했다. 좀 과하다 싶을 정도로….

하지만 한 가진 확실하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그의 작품은 재밌다. 극단적인 캐릭터와 평범한 캐릭터를 잘 교차시키고, 상황이나 심리적 변화를 쫀쫀하게 따라가는 속도감을 유지한다. 게다가 이 역시 짐작이지만, 작가는 부지런하다. 세상이 돌아가는 일에 관심이 높다고나 할까, 다양한 분야를 열심히 들여다본다. 다만 언제나 끝이 허망할 때가 많은데, 그게 의도적인 건지는 잘 모르겠다. 어쩌면 미야베 미유키는 이제 말과 이야기가 쌓아올린 사이버 세상이 결국 현실을 지배하기 시작했음을 느끼는 걸까. 그럼 뭐, 이젠 방법이 없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비탄의 문#미야베 미유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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