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다니는 연구소 ‘이사부호’ 태평양 심해생명체 신비 밝힌다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0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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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양과학조사선 항해 동승기
거제∼괌 11일간 일정 탐사… 8층 높이 5000t급의 중대형 선박
선원-과학연구진 등 46명 탑승… 원통형 채집통엔 심해 진흙 가득
6300m 깊이서 생물샘플 채취

이사부호 승무원들이 해양조사장비 중 하나인 수온염분측정기(CTD)를 크레인을 이용해 바닷속으로 집어넣고 있다. 전승민 동아사이언스 기자 enhanced@donga.com
이사부호 승무원들이 해양조사장비 중 하나인 수온염분측정기(CTD)를 크레인을 이용해 바닷속으로 집어넣고 있다. 전승민 동아사이언스 기자 enhanced@donga.com
“잠시 후 ‘멀티플 코어(MC)’ 올라옵니다.”

“예, 준비 완료됐습니다. 지금 올려 주세요.”

24일 필리핀 인근 공해상. 한반도에서 2400km 이상 떨어진 북서태평양 바다 한복판에서 무전기 육성이 오가자 갑판원들의 손놀림도 바빠지기 시작했다. 강철줄 끝에 매달아 수심 5000m 바닷속까지 내려보냈던 해양조사 장비를 4시간 반 만에 배 위로 끌어올렸다. 육중한 철골 구조물이 배 위로 모습을 드러냈다.

한국해양과학기술원이 운영하고 있는 해양과학조사선 ‘이사부호’는 16일 오후 경남 거제 해양연 남해해양연구소에서 출발해 24일로 항해 9일째를 맞았다. 연구자 12명을 포함한 선원은 총 46명. 각종 관측장비를 전문적으로 관리하며 연구자들을 돕는 관측사 4명도 탑승했다. 기자도 이 배에 탔다.

연구자들은 바다 위에서 배를 멈추고 각종 케이블을 내려 조사 작업을 벌이는 위치를 ‘정점’이라고 부른다. 이사부호가 이번 항해에서 조사한 정점은 6개다. 북서태평양 일대는 한국에서 그리 멀지 않고 6000m 이상의 깊은 바다까지 살펴볼 수 있어 연구지로 선택됐다.

마지막 정점에 도착하자 연구진은 시간 안에 작업을 마치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였다. 예정했던 27일까지 괌에 도착해야 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적도 인근에서 새롭게 발생한 태풍도 다가오고 있었다. 안전을 고려하면 즉시 선수를 남동쪽으로 돌려 한나절 태풍을 피해야 했다. 이민수 이사부호 선장은 “태풍의 규모가 상당하므로 배를 우회해서 괌으로 들어가기로 했다. 연구진과 논의해 작업 내용도 축소했다”고 말했다.

갑판수들이 윈치 등 각종 기기를 조작해 MC를 배 위에 내려놓자 이지민 책임연구원을 비롯한 해양연 연구진 3인이 달려들었다. MC 아래쪽에 붙어 있는 8개의 원통형 채집통 속에는 심해의 진흙과 모래가 가득 차 있었다. 연구진은 이 안에 숨어 있는 작은 해양생명체를 채집했다. 이 연구원은 “6300m 깊이에서 해양생물 샘플을 얻어낸 건 이번이 처음”이라고 말했다.

MC가 올라오자마자 다음 해양조사가 이어졌다. ‘다중플랑크톤채집기(모크네스)’가 투입됐다. 수백 μm(마이크로미터·1μm는 100만분의 1m) 정도의 미세한 입자도 채집할 수 있을 정도로 촘촘한 그물망 10개를 설치해 2노트(시속 약 3.7km) 속도로 끌고 다니며 심해생명체를 채집했다. 깊이 500m 간격으로 채집기를 배치하면 바닷속 해수 성분을 층별로 알아볼 수 있게 된다. 플랑크톤 채집과 동시에 바닷물 속에 녹아 있는 미세플라스틱도 채집할 수 있다.

이번 항해에 서울대 지구환경과학부 조양기 교수팀, 인천대 해양학과 김승규 교수팀 등 대학 공동연구진도 참여했다. 바닷물 속 미세 부유물을 채취해 미세플라스틱이 발견되는지, 농도는 얼마나 되는지 알아보기 위해서다. 선내 대학 공동 연구를 총괄하고 있는 임동훈 인천대 전임연구원은 “국내의 경우 이사부호에서만 모크네스 장비를 사용할 수 있어 이번 항해에 기대가 크다”고 말했다.

이사부호 꼬리 부분에 설치된 A형 프레임은 각종 해양조사장비를 바다로 내리는 핵심 장치다. 전승민 동아사이언스 기자 enhanced@donga.com
이사부호 꼬리 부분에 설치된 A형 프레임은 각종 해양조사장비를 바다로 내리는 핵심 장치다. 전승민 동아사이언스 기자 enhanced@donga.com
이사부호에 탑승한 연구진은 6개의 정점을 지나며 MC나 모크네스 이외에도 해저 표면의 흙을 대량으로 퍼 올리는 박스코어, 해수면에 떠 있는 미세플라스틱을 수집하는 만타트롤네트(MTN) 등 장비를 이용해 많은 해양시료를 수집했다. 연구진은 한국에 돌아가 이 시료를 분석할 계획이다.

1067억 원을 투입해 2010년 4월부터 국내 기술로 건조를 시작한 이사부호는 2016년 초 완공됐다. 안전성 검증을 거친 뒤 2017년 6월부터 실제 연구에 투입됐다. 길이 100m, 폭 18m에 이르는 5000t급 중대형 선박으로, 최하단 기관실부터 꼭대기 함교까지 총 8층으로 이뤄진 바다 위 연구소다.

25일 새벽 이사부호는 6개의 정점에 대한 조사를 모두 마쳤다. 이사부호는 적도에서 올라오고 있는 태풍을 멀리 둘러 괌으로 향했다. 괌에서 배에 연료와 식량을 보급하고 기존 연구진은 모두 하선한다. 다시 새로운 연구진이 탑승해 새로운 항해를 시작한다. 새 연구진은 서울대와 일본 도쿄대 공동 연구진. 이들은 인도네시아 인근 섬나라 ‘팔라우’ 인근 공해상으로 출발할 계획이다.
 
이사부호=전승민 동아사이언스 기자 enhanced@donga.com
#이사부호#한국해양과학기술원#해양과학조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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