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원겸의 The 깊은 인터뷰] 박기영 “내가 아티스트? 20년은 더 해야 ‘음악 장인’”

  • 스포츠동아
  • 입력 2018년 10월 26일 06시 5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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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활동 20주년을 맞은 박기영은 장르를 아우르는 깊은 음악성으로 ‘음악 장인’이라 불린다. 하지만 그는 “아티스트의 길은 아직 멀었다”면서 “이제야 전공을 찾은 느낌”이라고 말했다. 사진제공|문라이트 퍼플 플레이
가수활동 20주년을 맞은 박기영은 장르를 아우르는 깊은 음악성으로 ‘음악 장인’이라 불린다. 하지만 그는 “아티스트의 길은 아직 멀었다”면서 “이제야 전공을 찾은 느낌”이라고 말했다. 사진제공|문라이트 퍼플 플레이
■ 싱어송라이터로, 프로듀서로…데뷔 20주년 맞은 가수 박기영

곡 쓰고 노래하다 보니 어느새 20년
이제야 전공을 찾은 느낌…
어릴적 외로움·슬픔이 음악 자양분
가요 틀 깬 8집…진정한 나의 노래!


유튜브에 올라온 ‘넬라 판타지아’ 가창 영상 중 최다조회수의 주인공은 원곡 가수인 사라 브라이트만이 아니다. 가수 박기영(41)이다. 그가 2016년 1월 KBS 2TV ‘불후의 명곡’에서 부른 ‘넬라 판타지아’ 영상은 25일 현재 약 1600만 조회수를 기록중이다. 사라 브라이트만의 500만 조회수보다 5배 많다.

90년대 후반과 2000년대 초 ‘산책’ ‘마지막 사랑’ ‘시작’ 등 서정적 발라드로 큰 사랑을 받았던 박기영은 2015년 클래시컬 크로스오버 앨범을 냈고, 박기영밴드로 매년 라이브 앨범을 발표한다. ‘불후의 명곡’ 뿐 아니라 MBC ‘나는 가수다’, ‘복면가왕’ 등 경연 프로그램에서 절창을 뽐내 뜨거운 호응을 얻고, 그의 노래 ‘나비’는 가수 지망생들의 오디션 곡으로 애창된다.

음악 스펙트럼이 넓고, 장르를 넘나들고, 밴드를 이끌며, 곡을 쓰는 싱어송라이터이자 녹음작업을 총괄하는 디렉터와 프로듀서 역할까지. 올해 가수 활동 20주년을 맞은 박기영을 ‘음악 장인’이라 불러도 이견을 내기 어렵겠지만, 그는 “이제 막 전공을 택한 것 같다”고 했다. 박기영을 22일 서울 광화문 일민미술관에서 만났다.

● 20주년, 성인식

-20주년 맞은 감회가 어떤가.


“이제 성인이 된 기분이다. 전공을 택한 기분이고. 전공은, 장르 상관없이, 내가 주체가 되는 음악이다. 부전공은 크로스오버다.”

-아티스트로서 스스로를 평가한다면.

“나는 아티스트라 생각하지 않는다. 앞으로 20년을 더 해야 아티스트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겸손해서가 아니라, 진짜 ‘음악 장인’의 길은 아직 멀었다. 이제 스무 살, 성인식 해서 내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게 된 느낌이다. 그전까지 음악은 나를 표현하는 도구였다면, 이제부터는 나의 전부가 되지 않을까.”

-발라드, 록, EDM 등 다양한 음악을 하고 있다. 박기영의 대표 장르를 고르자면.

“어쿠스틱과 EDM을 섞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자신의 인생에서 잘한 것을 꼽아보라.

“음악을 놓지 않고 계속 하고 있는 것. 또 하나는, 음악 외에 다른 일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박기영은 음악을 만들고, 녹음을 하고, 또 그것을 노래로 표현하는 모든 과정을 직접 한다. 곡을 쓸 때는 작가 마인드로 창작을 하고, 그 결과물을 녹음할 때는 음악 소스들의 주파수가 충돌을 일으키지 않도록 수학적 원리에 집중한다. 또 완성된 작품을 무대에서 아름답게 보여주기 위해 연구한다. 곡을 쓰고, 녹음을 하고, 노래를 부르는 세 가지 축이 삼각구도를 이뤄 순환하는 과정을 반복하다보면 별 다른 취미를 가질 새도 없다.

가수 활동 20주년을 맞아 최근 8집을 발표한 박기영. 사진제공|문라이트 퍼플 플레이
가수 활동 20주년을 맞아 최근 8집을 발표한 박기영. 사진제공|문라이트 퍼플 플레이

● 외로웠던 소녀

박기영은 어려서 아나운서나 성우를 꿈꿨다. 가수가 된 건 당시 인천 인성여고 동창이었던 배우 박은혜가 라디오 프로그램에 엽서를 보낸 일이 계기가 됐다. 1,2학년을 같은 반에서 공부한 박은혜는 2학년이던 1994년 KBS라디오 ‘김형중의 가위바위보’의 ‘애청자 콘테스트’ 코너에 사연을 보냈고, 박기영은 김태영 ‘혼자만의 사랑’, 머라이어 캐리 ‘히어로’ 등을 불러 연말장원에 올랐다. 뛰어난 실력에 음반기획자들의 러브콜이 잇달았고, 1997년 첫 앨범을 내고 이듬해 3월부터 ‘기억하고 있니’로 활동을 시작했다. 2집 ‘프로미스’(1999)에서 ‘마지막 사랑’과 ‘시작’이 큰 인기를 얻고, 3집 ‘혼잣말’(2000)에선 ‘블루 스카이’가 히트했다.

-2·3집 때 인기가 상당했는데.

“그걸 전혀 체감하지 못했다. 지금처럼 SNS나 인터넷으로 팬들의 피드백을 얻을 수 있는 환경도 아니었고, 스케줄에 치여 살다보니 친구도 떠나가고, 건강도 나빠졌다. 그렇다고 돈을 번 것도 아니고, 20대 초반 한창 놀 때인데 연애를 한 것도 아니었고. 그냥 힘들기만 했던 것 같다.”

4집 ‘프레즌트 유’를 발표하고 당시 소속사와 문제가 생기면서 가수 활동에 위기를 맞았지만, 3년 공백 끝에 2004년 발표한 5집 ‘비 내추럴’은 가수 인생의 큰 전환점이 됐다.

“처음으로 ‘외압’없이 만든, 자주적인 앨범이었다. 비로소 내 목소리 내기 시작했고, 내가 하고 싶은 음악을 했다.”

당시 ‘소몰이 창법’이 가요계를 휩쓸 당시 5집에 담긴 ‘나비’ 등은 음악팬들과 평단으로부터 큰 칭찬과 호평을 받았다.

6집, 7집을 낸 후 ‘유니웨이브’라는 독립 레이블 내고 독자활동에 나섰다. 크리스마스 앨범을 냈고, 싱글 ‘엄마 딸이니까요’를 발표했다. 2012년 tvN ‘오페라스타’ 우승하면서 크게 주목받았다. 2014년 ‘나는 가수다’ 추석특집에 출연해 부른 ‘눈의 꽃’은 지금도 음악팬들 사이에서 회자되는 감동의 무대다.

박기영은 맏이다. 어머니는 할머니와 두 동생을 건사하느라 박기영은 많은 부분에서 어른스러워야 했다. 그 감정은 어머니에 대한 결핍이 됐다. 그래서 ‘소녀 박기영’은 비관적이고 우울했다.

“외로움, 슬픔, 고통, 이런 것에 집중한 것 같다. 어떻게 하면 내가 외롭지 않을까, 엄마에게 사랑한다 말할 수 있을까. 엄마에 대한 그리움. 외로움이 컸다.”

당시의 그런 감정들은 박기영의 음악에 자양분이 됐다.

박기영은 7세 딸을 두고 있다. 그는 “내 삶의 주체는 나 자신이지만, 아이를 키우면서 내 주체는 아이다. 육아만큼 성스러운 경험은 없는 것 같다. 타인이 주체가 되는 가장 성스러운 경험을 딸이 주고 있다”고 말했다.

가수 박기영. 사진제공|문라이트 퍼플 플레이
가수 박기영. 사진제공|문라이트 퍼플 플레이

● 자유의 노래

박기영은 2016년부터 싱글을 연속 냈지만, 음악을 소장하는 시대에서 소비하는 시대가 되면서 “이럴 때 어떻게 창작해야하나” 고민에 빠지게 됐다. 그는 시각을 바꿨다. 차트에 연연하지 않으니 자신이 하고 싶은 음악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게 됐다. 그래서 마음껏 만든 앨범이 최근 발표된 8집 ‘리:플레이’다. 박기영은 “5집과 더불어 8집이 내 음악인데 계속 듣게 되는 앨범”이라고 했다. 5집도, 8집도 모두 “‘외압’ 없이 자유의지로, 자주적으로” 만든 앨범이란 공통점이 있다.

8집은 “전공을 택했다”는 그의 말처럼 매우 실험적이고 도전적이다. 기존 가요의 형식과 문법을 파괴한 구성, 자유로운 창법, 신랄한 가사는 ‘차트용 음원’이 장악한 현실에서 상상할 수 없는 수작이다. 데뷔 20년의 ‘작가주의 뮤지션’ 박기영이라 가능한 음악이다.

‘하이 히츠’ ‘아이 게이브 유’ ‘고잉 홈’ 등 8집 ‘리:플레이’에 수록된 10곡의 음악은 뛰어난 공간감이 특징이다. 극장에서 영화를 보는듯한 ‘평면식 음악’이 아니라 VR 화면과 같이 큰 공간 속에 있는 듯한 느낌을 주는 ‘공간감 있는 음악’이다. 박기영은 여러 소리가 서로 충돌하지 않고 공간감을 잘 이루도록 미리 계산하고 감안해서 음악 소스를 받고 배열했다.

-20주년에 내는 앨범인데, 정서적 기조는 분노인 듯하다.

“우리의 삶은 고통이다. 행복은 아주 짧은 순간이다. 그러나 그 짧은 (행복의)순간 때문에 고통의 시간이 흘러가는 것이다. 그러나 그 과정은 즐겁지 않다. 솔직하게 그냥 고통을 말하고 싶었다. 20년 동안 삶이 고통이 아니란 걸 보여주기 위해 몸부림치며 살아왔다. 이제 아니란 걸 알게 되고 인정하게 됐다. 그 고통의 노래가 ‘아이 게이브 유’ 속에 들어 있다.”

-박기영의 먼 미래를 그려본다면.


“계속 음악하는 사람으로 살 것 같은데, 뭐든 할 수 있는 준비가 돼 있다.”

김원겸 기자 gyumm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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