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단지성의 기부, 과학의 하늘을 연다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0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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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년째 강의 봉사 ‘10월의 하늘’
지역 청소년 위해 자발적으로 준비, 행사진행-기획자 등 모두 자비부담
매년 한차례 행사 연 정재승교수 “내년엔 100개 도서관이 참여”

매년 10월 말 전국 도서관을 찾아가 무료 과학 강연을 여는 ‘10월의 하늘’이 올해 9회째를 맞았다. 처음 행사를 제안한 정재승 KAIST 바이오및뇌공학과 교수(가운데)와 행사 준비위원들이 13일 오후 한자리에 모였다. 윤신영 동아사이언스 기자 ashilla@donga.com
매년 10월 말 전국 도서관을 찾아가 무료 과학 강연을 여는 ‘10월의 하늘’이 올해 9회째를 맞았다. 처음 행사를 제안한 정재승 KAIST 바이오및뇌공학과 교수(가운데)와 행사 준비위원들이 13일 오후 한자리에 모였다. 윤신영 동아사이언스 기자 ashilla@donga.com
이상한 사람들이 있다. 일 년에 한 번 모인다. 그것도 전국 각지로 뿔뿔이 흩어졌다가, 그날 밤 늦은 시간이 돼서야 뒤풀이를 위해 꾸역꾸역 서울로 모인다. 다들 제 돈 내고 주말 하루를 꼬박 바쳐가며 돌아다닌다. 이들이 지역에 가서 하는 일은 과학 강연. 지역 청소년을 위해 자발적으로 일 년에 한 번 무료로 강연을 한다. 외부에서 단 1원도 받지 않는다. 하지만 2010년 시작해, 올해까지 9년째 이어지고 있다. 전국 도서관 무료 과학강연 기부 행사 ‘10월의 하늘’ 이야기다.

10월의 하늘은 2010년, 정재승 KAIST 바이오및뇌공학과 교수가 트위터에서 처음 아이디어를 제시해 시작됐다. 13일 서울 강남구 역삼동 페이스북코리아 사무실에서 올해 27일 열릴 행사를 준비하는 그를 만났다. 그는 “2006년, 충남 서산에 강연을 하러 갔다가 지역 청소년들에게 아이돌 취급을 받은 적이 있다”면서 “지역 청소년이 실제 과학자를 한 번도 본 적이 없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며 행사를 시작한 계기를 설명했다.

2000년대 초중반은 한국 과학 대중화의 황금기였다. 다양한 과학책이 발간되고, 대중에게 알려진 과학자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이런 ‘대중과학 전성기’에 그는 이면을 봤다. 정 교수는 “얼마나 많은 지역 학생들이 과학의 꿈을 버릴까 걱정됐다”며 “이들이 단 한 번이라도 실제 과학자를 만난다면 꿈을 이루는 데 도움이 될 거라 생각했다”고 말했다.

아름다운 시도지만 행사는 혼자서 할 수 없다. 적을 땐 전국 25개, 많을 땐 50여 개 도서관이 참여하는 행사다. 강연자, 진행자만 해도 수백 명이 필요하다. 기적이 일어났다. 트위터에서 그의 뜻에 공감한 300명이 세 시간 만에 모였다. 이들은 알아서 강연자, 강연 진행자, 행사 기획자로 분업해 뚝딱 행사를 치러냈다. 포스터가 필요하다고 하면 디자인 ‘능력자’들이 포스터를 만들어 보냈다. 주제곡이 간절하면 음악가들이 그해 주제곡을 기부했다.

마치 개미나 꿀벌 같았다. 알아서 분업하고, 알아서 완성했다. 어떤 사람은 이게 다 뇌과학자 정 교수가 꾸민 ‘집단지성 실험실’이라고 웃었다. ‘10월의 하늘’ 제목도 첫해에 행사 기획을 했던 참여자 김준태 씨의 아이디어에서 나왔다. 평범한 시골 소년이 미국항공우주국(NASA) 로켓 공학자의 꿈을 이루는 영화 ‘옥토버 스카이’에서 땄다.

이날도 그는 행사 기획단인 ‘10월의 하늘 준비위원회’와 함께하고 있었다. 준비위원회도 특정 조직이 있는 게 아니다. 그해 여름 행사 기획에 참여한 사람들이 그냥 그해의 준비위원회가 된다.

이런 자발성을 성공의 원동력으로 꼽는 정 교수도 내년으로 예정된 10주년은 조금 욕심이 나는 모양이다. 그는 “100개 도서관이 참여하는 행사로 준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100개면 전국 구석구석에 과학 강연을 들려줄 수 있는 어마어마한 수다. 대책을 물었다. “글쎄요. 그냥 일찍 준비를 시작하는 것?” 그저 웃었다. 집단지성의 기획자, 정 교수의 내년 계획은 1년 뒤에나 윤곽을 알 수 있을 것 같다.

윤신영 동아사이언스 기자 ashilla@donga.com
#10월의 하늘#강의 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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