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녀 표심 갈라놓은 ‘캐버노 스캔들’… ‘性대결’ 치닫는 美 중간선거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0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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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전쟁(gender wars).’

미국 일간 USA투데이는 11월 6일 중간선거를 다룬 12일자 기사에 이런 제목을 붙였다. USA투데이는 “성별에 따른 정치적 견해와 표심 차이는 늘 존재했지만 지금처럼 골 깊은 갈등이 나타난 적은 없었다”며 “이런 상황은 상당 부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 의해 야기됐다”고 분석했다. CNBC도 “공화당과 민주당이 중간선거를 앞둔 마지막 한 달을 전례 없는 ‘성(性) 정치전’으로 보내게 됐다”고 보도했다.

브렛 캐버노 연방대법관의 상원 인준 과정에서 빚어진 논란의 여파가 중간선거의 향방을 좌우할 최대 변수로 떠올랐다는 관측이다. 하원의원 전원(435명), 상원의원 100명 중 33명, 주지사 50명 중 36명을 뽑는 이번 중간선거는 트럼프 행정부의 지난 2년에 대한 국민의 평가를 확인하고 향후 국정 행보를 판가름할 초대형 정치 이벤트다.

○ 공화당 “미투 과열됐다” vs 민주당 “여성의 분노 각오해야”

건강보험법과 이민자 관련 정책, 중국과의 무역전쟁을 둘러싼 경제 이슈 등 현안들을 밀어내고 어쨌거나 일단락된 ‘캐버노 스캔들’이 중간선거의 중심 변수로 도드라지게끔 만든 장본인은 트럼프 대통령이다.

캐버노 스캔들은 여성 3명이 ‘그에게 성폭행을 당했다’고 고발하며 불거졌다. 난항 끝에 인준안이 통과된 뒤 트럼프 대통령은 “모든 것은 민주당이 꾸민 중상모략이었다”고 강하게 비난했다. 지난주 대법관 선서식에서는 “면밀한 조사 끝에 유죄로 밝혀진 경우가 아니면 이 나라 모든 국민은 무죄로 인정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로스앤젤레스타임스(LAT)는 이에 대해 “트럼프 대통령이 여성 유권자들의 반발을 감수하고 (민주당에 대한) 보수 진영의 분노를 부추기고 있다”고 평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성폭력 피해 고발 운동 ‘미투(#MeToo·나도 당했다)’ 캠페인의 ‘피해자 중심주의’ 가치관을 거스르면서 공화당 지지자들의 결집을 강화하려 한다는 얘기다.

일부 공화당 후보도 미투 캠페인을 비판하는 발언을 내놓았다. 노스다코타주 공화당 상원의원 후보인 케빈 크레이머는 최근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미투 캠페인이 부당한 희생자를 양산하고 있다”고 말했다. CNN에 따르면 최근 여론조사 결과 캐버노 인준에 반대했던 민주당의 하이디 하이트캠프 현 노스다코타주 상원의원의 지지도가 크레이머에게 밀리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여성인 하이트캠프 의원은 지난해 “검사로 재직할 때 남성 수사관에게 성차별적 언사를 들었다”며 미투 캠페인에 가세한 바 있다. USA투데이는 “캐버노 인준을 계기로 ‘미투 캠페인이 왜곡됐다’는 반발이 일어났다”며 “이런 움직임이 상원에서는 공화당이 다수 의석을 지키는 데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현재 상원은 51 대 49로 공화당이 간발의 우위를 차지하고 있다.

하지만 상원에 비해 현역 의원 교체 비율이 높은 하원 선거에서는 최근의 ‘성 대결’ 양상이 민주당에 유리하리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민주당 여론조사위원 앤 그린버그는 LAT와의 인터뷰에서 “성추행 피해 여성들의 고발을 위축시키려는 공화당 측의 발언에 대한 여성 유권자들의 분노가 하원 선거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내다봤다. 민주당이 다수당이 되려면 지금보다 23석을 추가해야 한다.

○ “성 대결 열기 식으면 ‘건강보험’ 이슈 떠오를 것”

최근 버지니아주 조지메이슨대 조사에 따르면 접전이 예상되는 69개 하원 선거구에서 여성 유권자는 54% 대 40% 비율로 민주당 지지 비율이, 반대로 남성은 51% 대 46% 비율로 공화당 지지 비율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출마 후보의 성별 분포에서도 성 대결 양상이 뚜렷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CNBC는 “미주리, 네바다, 애리조나주 등 접전이 예상되는 지역에서 민주당 여성 후보들과 공화당 남성 후보들이 맞붙는 ‘성 대결’ 양상이 펼쳐지고 있다”고 전했다.

그러나 성 대결 이외의 현안들이 선거 막판에 주요 변수로 부각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시사주간지 타임은 12일 “트럼프 대통령과 공화당이 ‘캐버노 효과’를 강화하는 데만 힘을 쏟는 사이 민주당은 잊혀졌던 건강보험법 관련 이슈를 본격적으로 끄집어낼 준비를 마쳤다”고 보도했다.

지난달 시장조사기관 퓨리서치센터의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미국 유권자의 75%가 “건강보험 이슈가 이번 중간선거의 매우 중요한 고려 요인”이라고 답했다. “민주당이 더 나은 건강보험 정책을 펼 것”이라고 답한 응답자가 51%로 “공화당이 나을 것”이라는 응답(35%)보다 많았다.

지난해 7월 상원에서 부결된 ‘오바마케어(전국민 건강보험법) 폐지 법안’은 오바마케어 폐지를 공약으로 내세웠던 트럼프 대통령에게 상당한 타격을 안겼던 이슈다. 척 슈머 민주당 상원 원내대표는 타임과의 인터뷰에서 “이번 중간선거는 대형 보험회사에 복종하는 공화당 의원들을 자리에서 물러나게 함으로써 국민들이 더 향상된 건강보험 서비스를 쟁취할 기회”라고 말했다.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
#남녀 표심#캐버노 스캔들#성대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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