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염희진]하마와 사슴이 이끄는 중국의 新유통 혁명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0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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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희진 산업2부 기자
염희진 산업2부 기자
한때 ‘자고 나면 건물 하나가 올라간다’는 말이 나왔던 중국 국제화·현대화의 상징인 상하이를 8년 만에 방문했다. 이젠 외관만이 아니라 속까지 빠르게 발전하고 있었다. 대표적인 사례는 결제시스템이었다. ‘중국에선 거지도 QR코드로 결제한다’는 소문처럼 변두리 식당에서도 QR코드로 결제하는 사람이 많아 인상적이었다.

놀란 건 또 있었다. 쇼핑몰과 식당, 심지어 글로벌 프랜차이즈인 맥도널드에서조차 비자나 마스터 신용카드 결제를 번번이 거절당했다. 알고 보니 자국기업인 유니온페이와 제휴한 신용카드나 알리페이의 앱을 깔지 않으면 결제가 불가능한 시스템 탓이었다. ‘중국에선 중국법을 따르라’는 대륙의 자신감이 엿보였다.

더 황당했던 건 상하이에서 요즘 ‘핫’하다는 루이싱커피(luckin coffee·瑞幸咖啡)에 들렀을 때였다. 파란색 사슴 로고의 이 커피 매장은 눈에 띄는 간판 없이 주로 사무실 건물에 있어 찾기가 힘들었다. 어렵사리 매장에 갔지만 커피를 살 수가 없었다. 알고 보니 루이싱커피는 전용 앱으로 근거리에 있는 매장에서 주문하면 30분 내에 배달해 주는 곳이었다. 배달 위주니 손님은 없고 직원 두 명이 커피를 내려 포장하느라 바빴다. 앱으로만 결제가 이뤄지니 현금조차 받지 않았다. 지난해 9월 출시된 이 커피는 현재 1000여 곳에 매장을 열며 스타벅스를 위협하고 있다. 스타벅스는 최근 루이싱커피를 의식해 세계 최초로 중국에서 배달 서비스를 시작했다.

알리바바가 투자해 신유통의 하나로 키우고 있는 신선식품 마트도 마찬가지였다. 하마가 로고인 허마셴성(盒馬鮮生)은 2016년 상하이에 1호점을 연 후 2년 만에 중국 13개 도시에 90여 개 매장을 열었다. 반경 3km 이내의 곳은 30분 안에 배송하는 이 마트가 인기를 끌면서 근처 상권이 발달하고 집값이 올라 ‘허취팡(盒區房·허세권을 뜻하는 중국어·허마셴성이 입점한 곳 주변이 잘된다는 뜻)’이라는 신조어까지 생겼다.

6일 상하이 치바오(七寶)에 있는 허마셴성 매장을 찾아갔는데 여느 마트에서 볼 법한 계산대가 없었다. 손님들은 직접 고른 상품을 알리페이 앱으로만 결제할 수 있었다. 천장에서는 끊임없이 돌아가는 컨베이어벨트에 달린 바구니가 고객의 주문을 받자마자 매장 곳곳을 돌며 상품을 담았다. 해산물 등을 구매하면 매장 안의 식당에서 즉석으로 조리까지 해줬다. 이곳은 신선식품에 대한 불신이 컸던 중국인의 입맛을 바꿨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종업원 없이 로봇이 주문부터 서빙까지 도맡는 로봇식당도 허마셴성이 새롭게 선보인 사업 모델이다.

신유통은 중국의 전자상거래 업체 알리바바의 창업자 마윈이 2016년 제시한 새로운 유통 패러다임이다. 온라인 기반 유통 모델은 한계에 부닥쳤기 때문에 첨단기술을 탑재한 온라인과 체험 위주의 오프라인 유통을 하나로 통합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과장이지만, 중국은 매일 신유통의 성공 사례를 내놓고 있다. 각종 규제와 지역민의 반대로 제대로 된 혁신을 모색할 수 없는 한국 유통산업이 걱정되는 이유다.
 
염희진 산업2부 기자 salthj@donga.com
#중국#루이싱커피#신유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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