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과 놀자!]생텍쥐페리 ‘어린 왕자’를 미술 작품으로 재해석한다면…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0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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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K현대미술관에서 열리는 ‘나의 어린 왕자에게’展 미리보기

“너는 나에게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존재가 되고, 나도 너에게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존재가 되는 거야.” “사막이 아름다운 것은 어딘가에 샘을 감추고 있기 때문이야.”

프랑스 작가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1900∼1944)가 세상에서 사라지기 한 해 전 발표한 소설 ‘어린 왕자’ 속의 문장입니다. 서울 강남구 K현대미술관에서는 내년 1월 27일까지 ‘나의 어린 왕자에게’ 전시회가 열리고 있죠. 소설 ‘어린 왕자’ 속의 장면들을 미술 작품으로 다르게 바라보고 새로운 뜻을 발견하는 전시입니다. 상상 속의 어린 왕자와 함께 사진을 찍을 수 있는 ‘포토존’도 곳곳에 갖추고 있습니다. 전시 속으로 들어가 볼까요?

○ ‘어린 왕자’는 어떤 소설?

윤여준 작가의 비디오 아트.
윤여준 작가의 비디오 아트.
생텍쥐페리는 44년이라는 길지 않은 삶 속에서 ‘인간의 대지’ ‘야간비행’ 같은 보석 같은 작품들을 써낸 작가입니다. 그는 모험을 좋아했고 비행가이기도 했죠. 비행기 결함으로 사막에 불시착하거나 큰 부상을 입기도 했습니다. ‘어린 왕자’에도 작가의 이런 경험이 들어 있습니다.

내용은 이렇습니다. 사막 한가운데 불시착한 비행기 조종사는 지구에 온 어린 왕자를 만나게 됩니다. 어린 왕자는 자신의 별에서 혼자 살다가 어느 날 씨가 떨어져 피어난 장미꽃과 친구가 되지만, 장미꽃과 다툰 뒤 여러 별을 떠돌게 되었고 지구에 도착했다는 사연을 말합니다.

작품 속엔 어린 왕자와 장미꽃 사이에 오간 미묘한 마음, 지구에 오기 전 들렀던 별들 이야기, 조종사가 사막에서 만난 여우와 뱀의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넌 네가 길들인 것들에 책임이 있어’ ‘중요한 건 눈에 보이지 않아’ 같은 문장들은 사람들 사이의 관계와 가치에 대한 일깨움을 줍니다.

이 작품을 쓴 뒤 생텍쥐페리는 나치 독일에 대항하는 자유프랑스군 공군 비행사로 지원해 입대했다가 비행 중 실종되었습니다. 그의 작품들처럼 신비로운 마지막이었습니다.

○ 관객이 화면 조종… TV 속의 보아뱀

레오다브 작가의 그라피티.
레오다브 작가의 그라피티.
전시는 미술 작가 19명의 20개 전시작품과 세 곳의 포토존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한상임 작가의 작품에는 관객이 플레이할 수 있는 ‘조종간’이 있습니다. 버튼을 누르는 데 따라서 화면에는 사막 위의 하늘, 지면이 나오고 짧은 비행이 펼쳐지면서 미지의 곳으로 불시착하게 됩니다.

중국 작가 장위하오의 작품은 세 개의 화면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각각의 화면에 모자가 보입니다. 한 모자 위에는 코끼리가 올라타고 있고, 자세히 보면 모자를 감싸고 도는 뱀도 보입니다. ‘어린 왕자’에서 코끼리를 삼킨 뱀 그림을 보고 어른들은 모자 그림이라고만 생각했던 것을 상기시킵니다.

김재욱 작가의 미디어 아트.
김재욱 작가의 미디어 아트.
구지은 작가의 작품은 커다란 샹들리에입니다. 사람들은 사진을 찍기도 하고 다가가 보기도 하다가 작은 전등 하나하나마다 사람들이 씹던 껌이 들어 있는 걸 발견하게 됩니다. 이 작품은 어린 왕자가 두 번째로 방문한 별에서 만난 ‘허영쟁이’를 연상하게 합니다. 소설 속의 허영쟁이는 자신을 칭찬하는 말만 좋아하고, 박수를 받으면 모자를 들어올리며 만족하죠. 화려하지만 가까이 들여다보면 침 냄새가 날 것 같은 전시 속의 샹들리에와 비슷합니다.

윤여준 작가의 작품은 옛날의 브라운관 TV가 바닥 가득히 깔려 있습니다. 고 백남준의 작품들로 우리에게 낯익은 ‘비디오 아트’입니다. 화면마다 모자와 보아뱀, 코끼리의 이미지가 끊임없이 변화합니다.

정운식 작가의 작품.
정운식 작가의 작품.
정운식 작가의 작품은 가장 친숙하게 다가갈 수 있는 작품입니다. 책을 통해 친숙한 어린 왕자의 이미지가 책 속 삽화와 같은 모양과 색상으로 서 있습니다. 배경에는 사막여우의 귀여운 모습도 보입니다. 하지만 가까이 가보면 단순한 그림이나 조각이 아니라 서로 다른 금속판을 겹겹이 겹친 뒤 볼트와 너트로 연결한 것입니다.

이 밖에 벽에 빠르게 스프레이로 그림을 그리는 그라피티 기법으로 어린 왕자를 그려낸 레오다브 작가, 돌처럼 보이는 형상에 영상을 비치는 얄루 작가, 하얀 커튼으로 공간을 나누어 ‘서로 다른 존재들에 부딪치는’ 어린 왕자의 경험을 표현한 홍유영 작가 등의 여러 작품을 통해 우리는 이 시대의 미술작품으로 재해석된 어린 왕자를 만나게 됩니다.

○ ‘어린 왕자’와 예술작품의 재해석

프랑스 화가 마르셀 뒤샹은 1919년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를 복제한 그림에 연필로 수염을 그려 발표했습니다. ‘L.H.O.O.Q’라는 수수께끼 같은 이름도 붙였죠. 예전에 이미 있던 예술품에 새로운 시각을 더해 다른 경험을 선사하는 작품입니다. 말하자면 기존 예술작품의 ‘재해석’이죠.

‘나의 어린 왕자에게’전에서 만날 수 있는 작품들도 문학작품인 ‘어린 왕자’를 미술작품으로 재해석 또는 재창조한 작품입니다. 재해석은 원래의 작품이 갖고 있는 주제의식을 더욱 또렷이 드러내거나 다른 각도에서 볼 수 있게 해주기도 하지만, 작가의 의도를 비틀어 꼬집거나 풍자하기도 합니다.

이번 전시에 소개된 작품들은 어떤 쪽일까요? 각각의 작품이 다르고, 한 작품에도 바라보는 사람에 따라 정답은 없을 것입니다. 부모님이나 친구들과 함께 전시장을 찾아서 각각의 작품이 담고 있는 ‘재해석’에 대해 서로 생각을 나눠 보면 어떨까요?

유윤종 기자 gustav@donga.com
#생텍쥐페리#어린 왕자#미술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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