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 패딩 150만원… 열린 ‘에잇 포켓’, 명품만 웃는다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0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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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출산시대 아동복 소비 양극화

112만 원에 판매되는 ‘버버리’의 아동용 트렌치코트. 버버리 홈페이지 캡처
112만 원에 판매되는 ‘버버리’의 아동용 트렌치코트. 버버리 홈페이지 캡처
세 살배기 외동아들을 키우고 있는 장모 씨(28)는 이번 겨울에 입힐 아들의 외투로 명품 브랜드에서 나오는 아동용 패딩을 살 계획이다. 추석 연휴에 방문한 시부모님 댁에서 ‘아이 옷 하나 사 입히라’며 가족들에게 받은 돈이 100만 원을 훌쩍 넘었기 때문이다. 장 씨는 “시부모님부터 아이 삼촌들까지 용돈을 주자 금세 큰돈이 모였다”며 “요즘 부모들 사이에 비싼 아동복이 인기인데 이번 기회에 우리 아이도 남부럽지 않게 입혀 보려 한다”고 말했다.

최근 명품 아동복 시장이 활황이다. 출산율은 낮아지는데도 한 명의 아이에게 투자를 아끼지 않는 ‘에잇 포켓(8개의 주머니)’ 소비가 늘면서 고가 아동복이 큰 인기를 끌고 있다.

○ 150만 원 패딩도 날개 돋친 듯 팔려

온라인 명품 편집숍 네타포르테는 올해 7월 ‘구찌 키즈’와 협업해 처음 아동복 카테고리를 만들었다. 네타포르테 제공
온라인 명품 편집숍 네타포르테는 올해 7월 ‘구찌 키즈’와 협업해 처음 아동복 카테고리를 만들었다. 네타포르테 제공
9일 롯데백화점에 따르면 올해 1∼9월 버버리 칠드런, 펜디 키즈, 엠포리오아르마니 주니어 등 명품 패션 브랜드의 아동복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28.2% 늘었다. 특히 구찌 칠드런과 몽클레르 앙팡의 매출은 30% 이상 신장했다.

아동용 의류임에도 가격은 성인 의류 못지않다. 구찌 칠드런의 셔츠는 40만 원, 코트는 100만 원 이상이다. 몽클레르 앙팡의 패딩은 150만 원을 훌쩍 넘는다. 그럼에도 찾는 사람이 많아 롯데와 신세계 등 주요 백화점들은 아예 명품 아동복 브랜드만 모은 코너를 운영하고 있으며 매출도 꾸준히 상승세다.

최근에는 쟈딕앤볼테르, 칼 라거펠트, 마크제이콥스 등 고가의 컨템퍼러리 브랜드들도 아동복 시장에 주목하고 있다. 이들은 고급 성인용 의류로 잘 알려진 브랜드들이지만 아동복 수요가 늘면서 하나둘 키즈 라인을 강화하고 있다. 프랑스의 컨템퍼러리 브랜드인 ‘산드로’도 이달 롯데백화점에 팝업 스토어를 열고 국내에 아동복 라인을 처음 선보였다.

이충현 롯데백화점 컨템퍼러리 치프바이어는 “부모가 왕자나 공주처럼 귀하게 키우는 ‘골드 키즈’가 늘어나고 내 아이만큼은 최고 제품을 입혀야 한다는 사회적 분위기가 확산되다 보니 명품뿐 아니라 컨템퍼러리 브랜드들도 앞다투어 키즈 라인을 내놓는 추세”라고 말했다.

해외 고급 브랜드의 제품을 직구해 아이들에게 입히려는 부모도 늘면서 온라인 명품 편집숍인 ‘네타포르테’ 역시 아동복 카테고리를 새로 만들었다. 네타포르테 관계자는 “7월 구찌 키즈와 협업해 처음 아동복 시장에 뛰어들었고 이달 중 돌체앤가바나와 새로운 아동복 프로모션을 진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 ‘에잇 포켓’에 아동복 성장…국내 브랜드는 주춤

최근 통계청이 내놓은 ‘2018년 7월 인구동향’에 따르면 7월 출생아는 2만7000명으로 전년 동월 대비 8.2% 감소했다. 2015년 12월 이후 32개월 연속으로 출산율이 낮아지고 있다.

그럼에도 아동복 시장은 꾸준히 성장세다. 한국섬유산업연합회 등에 따르면 국내 아동복 시장은 2012년 8771억 원 수준에서 연간 10% 이상의 성장률을 보이며 지난해 1조8000억 원 규모로 확대됐다.

저출산이 심화되는데도 아동복 시장이 활황인 것은 한 명의 아이에게 투자를 아끼지 않는 ‘에잇 포켓’ 소비가 늘고 있기 때문이다. 에잇 포켓은 아이 한 명을 위해 부모, 양가 조부모, 삼촌, 이모 또는 고모까지 지갑을 연다는 신조어다.

그러나 고가 명품 브랜드가 인기를 끌며 급성장하고 있는 데 반해 점퍼 한 벌 가격이 10만 원 안팎인 국내 아동복 브랜드들은 소비자에게 외면당하고 있다. 국내 영유아복 매출 1위였던 A브랜드는 지난해 매출이 전년 대비 12%나 급감했다. 공주풍 옷으로 유명했던 B브랜드도 매출이 14%나 꺾였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다른 유통 분야와 마찬가지로 아동복에서도 소비 양극화가 극명하게 나타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면서 “무턱대고 유행을 좇다가 과소비로 이어질 수 있고 아이들에게 잘못된 가치관을 심어줄 위험도 있는 만큼 현명한 소비 자세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손가인 기자 gain@donga.com
#저출산시대#아동복 소비 양극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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