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극로 박사 “말은 민족의 정신이요 글은 민족의 생명”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0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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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말 큰사전’ 편찬 이극로 박사 1946년 한글 반포 500돌 기고 공개
“한글은 민족의 가장 큰 보배였으나 모진 비바람 만나” 일제 수난도 서술

“말은 민족의 정신이요 글은 민족의 생명입니다.”

일제강점기 한글맞춤법 통일안과 ‘조선말 큰사전’ 편찬의 주역이었던 고루 이극로 박사(1893∼1978)가 광복 뒤 한글 반포 500주년(1946년)을 맞아 쓴 글이 8일 공개됐다. 이 박사는 일제강점기 조선어사전 편찬위원, 한글맞춤법 제정위원, 조선어학회 간사장을 역임하며 문화운동을 통한 독립투쟁에 앞장섰다.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3년간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박용규 고려대 한국사연구소 연구교수(55)는 이 박사가 ‘학생신문’ 제13호(1946년 10월 9일)에 기고한 ‘한글 반포 5백주년 기념일을 맞으며’를 본보에 공개했다. 200자 원고지 약 5장의 이 글에서 이 박사는 “정신(우리말)과 생명(우리글)이 있을진댄 그 민족은 영원불멸할 것이니, 또한 행복은 필연적일 것”이라고 강조했다.

박 교수는 “이극로는 일제의 조선어 말살 정책에 맞서 언어 독립 투쟁을 전개했고, 그의 ‘언어―민족 일체관’은 광복 이후에도 이어졌다”며 “이극로에게 언어는 민족의 중심핵이었다”고 설명했다.

이 박사는 이 기고에서 “성군 세종대왕께서 반포하신 이 한글은 말소리를 잘 적을 수 있는 과학적으로 된 세계적으로 우수한 글이요, 조선 민족의 가장 큰 보배이었으나, 모진 비바람을 만났음은 이루 다 헤아릴 수 없다”면서 한글이 일제강점기까지 겪은 수난을 서술했다.

광복의 감격도 기고에 드러나 있다. 이 박사는 “해방의 종소리가 온 누리를 울리자 거보를 내디디게 된 해방, 오로지 말과 글의 해방으로 우리 민족의 새 생명이 약동하고 있다”며 글을 맺었다. 박 교수는 책 ‘미 군정기의 한글 운동사’(이응호 지음·성청사·1974년 출간)에서 인용된 기고를 확인했다.

“한강에 가을물이 깨끗이 흘러간다/기러기 줄을지어 남국을 도라오니/아마도 살기좋은곳 이땅인가 하노라//남산에 단풍들어 나뭇잎 아름답다/씩씩한 청소년들 떼지어 올라가네/보아라 신흥조선의 남아인가 하노라//곳곳에 쌓인것이 무배추 무뎅이(무더기)다/맛좋은 조선김치 뉘아니 즐기겠니/세계에 자랑거리는 김치인가 하노라.”

이 박사가 1945년 12월 ‘해방기념시집’(중앙문화협회)에 실은 시조 ‘한양의 가을’ 전문이다.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함흥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다 1945년 8월 17일 풀려난 뒤 서울 종로구 화동에 있던 조선어학회 회관에서 국어정책을 연구할 무렵 지은 것. 이 시조도 발견해 함께 본보에 공개한 박 교수는 “우리 국토와 문화, 미래를 짊어질 청소년에 대한 이극로의 애정이 시조에 드러나 있다”며 “국어 교과서에 실어 후세에 알리면 좋겠다”고 말했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한글날#조선말 큰사전#이극로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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