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장 발부 시늉? 기각 시늉?” “조직 작살나나” 뒤숭숭한 법원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0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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前대법원장 첫 압수수색 의견 갈려
판사 비공개 익명 커뮤니티 와글, 찬반 글에 수백건 댓글 달려
“너무 슬프다” “마음이 허하다”
검찰의 강제수사 비통해하거나 “아주 조금씩 희망 갖자” 보듬기도


‘이건 (영장을) 발부한 것도 아니여 안한 것도 아니여!’(A 판사)

‘법관의 꽃이 대법관이었는데…우리 조직은 이렇게 작살이 나는 건가요.’(B 판사)

‘우리가 겪는 창피 또한 어느 정도는 필연적인 것입니다.’(C 판사)

지난달 30일 전직 대법원장이 사법 70년 역사상 처음으로 검찰로부터 압수수색을 당한 사실이 알려지자 법관들은 크게 동요했다. 판사들의 인터넷 비공개 익명 커뮤니티인 ‘이판사판 야단법석’에는 판사들의 게시 글과 수백 건의 댓글이 쏟아졌다. 전국의 판사 약 3000명 가운데 5분의 1이 넘는 660여 명을 회원으로 두고 있는 이 커뮤니티에 1일 하루 누적 방문 건수가 오후 10시 현재 1800건을 넘었다. 수백 건의 조회수를 기록한 게시 글도 여러 건 있었다.

A 판사는 ‘이 영장은 발부 시늉인가? 기각 시늉인가?’라는 제목의 글을 익명으로 남겼다. 이 판사는 “나중에 무죄 나더라도 검사는 기각한 판사 탓이라고 변명할 수 있도록 변명 거리를 마련해주는 데에 결과적으로 이번 영장전담에서도 동참한 것은 분명해 보인다”라고 적었다. 명재권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가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자택 압수수색 영장은 기각하고, 차량만 압수수색을 허용한 것을 이해할 수 없다고 비판한 것이다.

이 글에 대한 판사들의 의견은 엇갈렸다. 한 판사는 댓글에서 “자기주장 강한 사람 몇 명이 게시판 분위기를 흐린다. 실명으로 비판할 용기는 없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다른 판사는 “게시판 분위기가 맑은 것을 추구하신다면 이곳 말고 다른 쪽으로 알아보길”이라고 반박했다.

B 판사는 ‘너무하네요’라는 제목의 글에서 ‘우리 조직은 이렇게 작살이 나는 건가. 적폐라거나 감정적이라고 하겠지만…난 너무너무 슬프다’라며 전직 대법원장과 법원행정처장을 지낸 전직 대법관에 대한 검찰의 강제수사를 비통해했다. “잘못 있으면 책임을 지는 것이 당연한 것 아닌가?” “관련자들 처벌과 사태 규명 누구보다 원했지만 막상 압수수색이라니 마음이 허하다” 등 다양한 댓글이 삽시간에 달렸다.

C 판사는 “장기적으로는 삐걱삐걱 좋은 방향으로 해결하며 나갈 터이니, 많이는 말고 아주 조금씩만 희망을 가지자”라며 희망적인 글을 썼다. 이 글을 본 다른 판사들은 “이제 아픔을 딛고 바로 세울 시기라 생각된다”, “조금씩 나은 방향으로 진전하고 있다고 생각한다”며 동조했다.

반면 김명수 대법원장을 향한 글도 있었다. 한 판사는 “사법 70주년 행사 때 (문재인) 대통령 앞에서 수사에 더욱 협조로(협조하겠다고) 화답한 것도 전례가 없는 일이다. 사법부가 정부의 한 부서로 전락했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썼다. 또 다른 판사는 “대법원장이 기존의 법원행정처 사무를 대신할 사법행정회의를 일방적으로 추진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의 글을 올렸다.

김윤수 기자 ys@donga.com
#대법원장#압수수색#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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