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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과 내일/천광암]공정위, 누구를 위해 기업경영권 흔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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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과 내일/천광암]공정위, 누구를 위해 기업경영권 흔드나

천광암 편집국 부국장 입력 2018-10-01 03:00수정 2018-10-01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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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광암 편집국 부국장
마윈(馬雲)이 2013년 알리바바를 상장시킨 곳은 사업 본거지인 중국 본토나 한 차례 상장 경험이 있는 홍콩이 아니었다. 뉴욕 증시였다. 당시 주가 측면에서 상대적으로 불리했는데도 그가 굳이 뉴욕을 택한 이유는 차등의결권(일부 주식에 대해 주당 1개가 아닌 다수의 의결권을 부여하는 제도) 때문이었다. 알리바바의 창업주이지만 지분은 7%에 불과한 마윈으로서는 다른 대주주를 제치고 안정적으로 경영권을 행사할 장치가 필요했기 때문에 상장기업의 차등의결권을 허용하지 않는 중국 본토나 홍콩을 버리고 뉴욕으로 갔던 것이다.

알리바바를 놓친 홍콩 증시는 30년 전통을 바꿔 올해 7월 차등의결권을 허용했고, 이 덕분에 시가총액이 100조 원대에 이를 것으로 추산되는 샤오미라는 또 다른 대어(大魚)를 낚았다. 그러자 중국 정부도 마침내 백기를 들고, 지난달 27일 기술기업에 대해 차등의결권을 허용하겠다고 발표했다.

미국 영국 일본 등 선진국은 기업들이 안정된 경영권의 토대 위에서 투자와 생산활동에 전념할 수 있도록 오래전부터 차등의결권 등 다양한 경영권 방어수단을 허용하고 있다. 이제는 사회주의 국가인 중국마저도 이 같은 국제적인 흐름에 발을 맞추고 있는데, 유독 한국 정부는 나 몰라라 하고 있다.

아니, 나 몰라라 한다면 차라리 다행이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지난달 28일 공청회에 내놓은 공정거래법 개정안을 보면 1, 2위 대기업들조차 엘리엇 등 해외 투기자본의 공세 앞에서 흔들리는 현실에 눈을 감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든다. 개정안은 금융·보험사와 공익법인의 의결권을 제한하고, 기존 순환출자에 대해서도 의결권을 제한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미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차등의결권 포이즌필 황금주 등 경영권 방어 장치를 하나도 허용하지 않는 상황에서 공정위가 추진하는 의결권 제한이 추가로 더해질 경우 우리 대기업들은 경영권 방어에 천문학적인 거금을 쏟아부어야 하는 상황에 내몰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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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정안에는 심지어 공정위가 지금까지 순환출자식 지배구조의 유일한 대안인 것처럼 제시해온 지주회사에 대해서조차 규제를 강화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정부 정책의 일관성과 신뢰성 문제는 둘째로 치자. 한국의 대기업들은 2003년경부터 정부의 유도에 따라 하나둘씩 지배구조 체제로 전환해 왔다. 31개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 중 12개가 과도한 비용 등의 문제로 아직 지주회사로 전환하지 못한 상태다. 한국경제연구원 계산에 따르면 이들 12개 그룹이 지주회사로 전환한다고 할 경우, 규제 강화로 인해 상장회사 지분 매입에 12조9000억 원의 추가 비용이 든다고 한다. 생산적으로 투자할 경우 27만8000개의 일자리를 만들 수 있는 돈이다.

국회는 지난달 21일 본회의를 열어 은산분리완화법(인터넷전문은행 특례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은산분리완화법은 문재인 대통령이 핵심 지지세력의 반발을 무릅쓰면서까지 국회 통과에 힘을 실어준, 일명 ‘혁신성장의 1호 법안’이다. 정부 추산에 따르면 이 법의 시행으로 창출되는 일자리는 간접효과를 포함해 중장기적으로 약 5000개라고 한다. 공정거래법 개정안은 혁신성장 1호 법안이 어렵게 만들어내려는 일자리의 55배를 허공에 날려버릴 수도 있는 법안인 셈이다.

지금까지 여러 정권이 규제 완화를 야심 차게 추진하고도 성과가 미흡했던 이유는 사라진 작은 규제의 빈자리를 더 크고 더 고약한 규제가 채워 왔기 때문이다. 그 중심에는 규제 권력을 틀어쥐고 내놓지 않으려는 관료집단이 있는 경우가 많았다. 이번에 공정위가 내놓은 공정거래법 개정안을 보면, 혁신성장의 적(敵)은 세종시에 있다는 생각이 든다.
 
천광암 편집국 부국장 iam@donga.com
#마윈#알리바바#공정거래위원회#기업경영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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