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서 몰카범 오해받지 않으려면…” 생존수칙 공유하는 남성들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9월 27일 17시 5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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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 장모 씨(26)는 최근 80만 원 상당의 고성능 휴대용 녹음기를 구매했다. 휴대전화로 녹음하면 음질이 좋지 않고 배터리가 방전되면 녹음이 끊기기 때문. 그는 새로 산 녹음기로 술자리를 함께 한 여성과의 대화를 몰래 녹음한다. 성관계를 가진 뒤 여성이 마음을 바꿔 자신을 고소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서다. 또 카카오톡으로 여성과 대화할 때는 하트 모양의 이모티콘을 의도적으로 보내고 상대방의 애정표현을 유도한다. 30여 명의 남성들과 카카오톡 단체대화방을 만들어 억울하게 성범죄 가해자가 되지 않기 위한 ‘생존 수칙’을 공유하기도 한다.

장 씨처럼 ‘성범죄 가해자 안 되기’ 생존 수칙을 공유하는 남성들이 늘고 있다. 이달 초 이른바 ‘곰탕집 성추행 사건’ 논란이 불거지면서 남성들의 불안과 불만이 커지는 분위기다. 이 사건에서 유죄 선고를 받은 남성의 아내가 억울함을 호소하며 청와대 국민청원게시판에 올린 글에 참여한 인원이 30만 명을 돌파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생긴 인터넷 카페에는 4000여 명이 가입했고, 다음달 27일 집회를 열 예정이다.

남성들은 일상생활 속에서 억울하게 성추행범으로 몰릴 가능성이 있는 사례를 소개하고 대처 방안을 공유한다. 버스나 지하철 등 인파가 붐비는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에는 휴대전화를 조심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조모 씨(26)는 지하철을 탈 때 의식적으로 휴대전화 화면을 켜둔다. 휴대전화를 끄고 손에 쥐고 있으면 ‘몰카범’으로 오해를 받을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조 씨는 “불필요한 오해가 없도록 휴대전화 뒷면 카메라를 아래쪽이 아닌 천장을 향하도록 각도까지 신경 쓴다”고 말했다.

여성과 성관계를 가질 때 지켜야할 행동 수칙도 퍼지고 있다. 궁극적으로는 여성이 ‘성관계에 동의했다’는 증거를 확보하겠다는 취지다. 폐쇄회로(CC)TV가 있는 모텔 로비에서 의도적으로 애정행각을 벌이거나, 로비에 놓여있는 빵을 먹거나 커피를 함께 마시고 들어가는 방법이 대표적이다. 방을 잡은 뒤 남성 혼자서 편의점에 가는 방법도 소개됐다. 여성이 강압적으로 모텔에 들어간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다. 이모 씨(26)는 “CCTV가 잘 설치된 모텔 정보를 미리 카카오톡 단체대화방에서 확인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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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들은 목격자나 물증을 찾기 어렵고, 여성 피해자의 구체적이고 일관된 진술이 중요한 증거가 될 수 있는 성범죄의 특성 때문에 빚어진 일이라고 분석했다. 유진영 변호사는 “잘못이 없어도 무혐의를 입증하기 까다롭기 때문에 녹음이나 카카오톡 대화를 방어 수단으로 여기는 생존 수칙이 유행처럼 퍼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반면 윤김지영 건국대 몸문화연구소 교수는 “가해자 안 되기 생존 수칙을 공유하는 움직임에는 여성을 잠재적 ‘꽃뱀’으로 보는 인식이 자리 잡고 있다”며 “여성을 성범죄의 원인 제공자로 치부하는 남성 중심적인 시각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구특교 기자 koot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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