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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백만원 자전거 망가져도 보상 막막”… 블랙박스 다는 라이딩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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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백만원 자전거 망가져도 보상 막막”… 블랙박스 다는 라이딩족

이지훈기자 , 김자현기자 입력 2018-09-27 03:00수정 2018-09-27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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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 인구 1300만명… 상대방 과실 입증하려 자구책 마련
‘자전거 충돌사고’ 이후 블랙박스를 단 직장인 지모 씨의 자전거. 운전대 중간에는 30만 원 상당의 블랙박스용 카메라가 달려 있다. 자전거 사고가 늘면서 라이딩족들에게 ‘블랙박스 달기’는 필수가 됐다. 라이딩족 지모 씨 제공
이모 씨(29)는 지난해 8월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인근에서 자전거를 타다 역주행하던 다른 자전거와 부딪쳤다. 몸이 풀숲으로 튕겨져 나갔고, 700만 원 상당의 자전거가 완파되는 큰 사고였다. 상대 자전거 운전자는 사고 책임을 부인했다가 뒤따라오던 지인 자전거에 달린 블랙박스에 역주행 장면이 찍힌 걸 보고서야 마지못해 과실을 인정했다. 이 씨는 수백만 원 상당의 배상금을 겨우 받을 수 있었다. 이 씨는 얼마 뒤 60만여 원을 들여 자전거에 블랙박스용 카메라를 달았다.

한 달에 한 번 이상 자전거를 타는 ‘자전거 인구’가 1300만 명을 넘어서면서 자전거 사고가 최근 3년간 하루 10건꼴로 발생하고 있다. 자전거 사고 사망자는 지난해 전국에서 126명에 이른다.

하지만 자전거는 사고가 나도 블랙박스를 달고 있는 자동차와 달리 객관적 증거가 거의 없어 책임 소재를 따지기 어렵다. ‘라이딩족(族)’ 사이에선 사고에 대비해 자전거에 블랙박스용 카메라를 다는 등 자구책 마련에 나서는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다.

5년 차 라이딩족 지모 씨(27)는 2014년 충돌 사고로 억울한 경험을 한 뒤 자전거에 블랙박스를 달았다. 당시 지 씨는 급하게 방향을 틀어 좌회전을 하던 상대와 부딪쳐 사고를 당했지만 책임 소재를 입증할 방법이 없었다. 결국 지 씨는 전치 2주 진단이 나왔고 상대는 전치 4주가 나왔다는 이유로 지 씨가 합의금을 지불했다. 지 씨는 “사고 장면을 녹화한 영상이 없으면 책임을 가리기 어려워 진술에 의존해야 하는데 상대가 부인하면 잘잘못을 가릴 방도가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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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박스로 사고 과실을 입증하더라도 배상을 받기까지는 말 그대로 ‘산 넘어 산’이다. 자영업자 양모 씨(41)는 올 3월 이촌 한강공원에서 역주행하던 공용 자전거 운전자와 부딪쳤다. 자전거에 설치한 블랙박스 영상을 통해 상대편 과실을 입증했으나 곧바로 배상을 받을 수 없었다. 800만 원을 호가하는 자전거가 상당 부분 파손돼 배상액이 500만 원으로 컸기 때문이다. 보험이 없었던 상대 운전자는 배상을 해줄 수 없다고 버텼고, 양 씨는 민사소송을 진행하고 있다. 890만 원 상당의 자전거를 타는 5년 차 라이딩족 조모 씨(28)는 “보험에 가입돼 있지 않은 사람과 부딪쳤을 때 블랙박스로 과실을 입증하고도 거액의 배상금이 나오면 대부분 민사소송까지 감수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런 사고가 늘면서 ‘자전거용 보험 상품을 만들어 달라’는 요구가 쏟아지고 있다. 민간 보험사들이 자신의 자전거 파손을 보전받을 수 있는 ‘자차 보험’ 상품을 운영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한 보험사가 지난해까지 관련 보험을 판매했지만 보험사기를 적발하기 어렵고 수익성이 낮다는 이유로 폐지했다. 각 지방자치단체의 자전거 보험이나 개인별 ‘일상생활 책임보험’이 있긴 하다. 그러나 운전자 본인이 아니라 피해를 본 상대방의 입원 치료비 일부만 보전받을 수 있다. 자전거 수리비는 배상 범위에서 빠져 있다. 고가의 자전거를 보호하기 위해 보험에 가입하고 싶어도 뾰족한 수가 없다.

전문가들은 블랙박스 설치, 보험 같은 사후 대책에 앞서 자전거 사고를 예방하기 위한 교육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장택영 삼성교통문화연구소 수석연구원은 “네덜란드, 일본에선 초등학교에서 ‘자전거 안전 수칙’ 등을 교육해 사고를 방지하는 데 주력한다. 급정거 같은 위협 운전이 잘못임을 알고 수(手)신호로 사고를 예방하는 환경이 조성돼 있다”고 말했다.

이지훈 easyhoon@donga.com·김자현 기자
#라이딩족#자전거#블랙박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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