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김광현]이상과 현실 짬뽕정책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9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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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현 논설위원
김광현 논설위원
이제 추석도 지나고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취업준비생들은 마음이 급해지고 기업 채용 팀의 손길도 분주해지기 시작한다. 졸업생들은 친척들에게 어디에, 언제 취직하느냐는 질문을 많이 받았을 것이다. 여기서도 가벼운 질문 하나 던져 보자. 두 가지 선택이 있는데 당신이 연봉 1억1000만 원을 받고 대학 동기가 1억 원을 받는 A 경우와 당신이 1억2000만 원을 받고 동기가 1억3000만 원을 받는 B 경우가 있다면 무엇을 택하겠는가. 실제로 몇 년 전 미국 명문 경영대학원(MBA)이 졸업예정자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다.

당연히 B를 택할 것 같은데 실제 답변에서는 3분의 2 정도가 A를 택하겠다고 했다. 자기가 좀 덜 받는 게 낫지, 동료가 나보다 더 받는 꼴은 못 보겠다는 심리다. 누구보다 계산 앞에서 냉철할 것 같은 미국 MBA 졸업생이 이 정도다. 이런 심리현상들을 전통 경제학과 접목한 게 요즘 각광받는 행동경제학이다.

한국에서 경제정책을 펴기가 참으로 힘들다는 게 관료들의 하소연이다. 원래부터 합리적이지만은 않은 게 인간 본성이지만 한국 사람은 심하다는 것이다. 이론을 앞세우다가 과거 명성만 추락시키고 물러난 대선 캠프 출신 교수가 한둘이 아니다. 그래서 한국의 경제 장관 자리는 경제학 교수들의 허다한 무덤이다. 어디를 가더라도 절대적으로 옳고 그른 정책은 없고, 다만 현실에 맞고 맞지 않는 정책이 있을 뿐이란 걸 몰랐기 때문이란다.

비슷한 차원에서 최근 발표된 주택공급방안 가운데 소셜믹스(Social Mix)라는 처방은 다시 한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어 보인다. 소셜믹스란 말을 처음 접한 것은 노무현 정부 당시 건설교통부 출입기자로 요즘처럼 정부가 한창 집값과의 전쟁을 벌일 때였다. 경제부처에서 웬 뜬금없는 사회정책인가 했더니 서울 강남 요지의 대형 평수 분양아파트에 임대주택을 의무적으로 일정 비율 섞어 짓도록 하겠다는 내용이었다.

있는 집과 없는 집, 그리고 그 자녀들이 사이좋게 어울리는 공존 사회를 지향한다고 포장했지만 실제로는 날로 치솟던 강남 아파트에 고춧가루를 뿌리는 식으로 가격을 떨어뜨리겠다는 의도가 다분해 보였다. 여기에는 청년시절 판자촌철거반대운동을 맹렬히 벌였던 김수현 당시 대통령자문 정책기획위원의 견해가 많이 반영됐다는 게 건교부 공무원들의 귀띔이었다.

지하철 3, 5호선 환승역이 코앞인 옛 성동구치소 터에 분양·임대아파트가 함께 들어서는 소셜믹스 형식으로 주택을 공급한다는 발표가 나자 동네 전체가 발칵 뒤집어진 모양이다. 연일 집값 하락 대책 심야회의가 열리는가 하면 ‘절대 반대’ 플래카드도 내걸렸다. 기존 소셜믹스형 아파트 단지 내 임대동(棟)과 분양동 사이에 담벼락이 세워지고 주민 간 갈등과 위화감이 심각한 수준이란 사례도 거론됐다고 한다. 유럽이나 미국에서 성공한 소셜믹스 일부 사례가 있다. 현 거주민과 지방자치단체가 개발단계에서부터 몇 년에 걸쳐 수백 번 만나 논의하고 구체적이고 세심한 갈등 해소방안을 마련해 조심스럽게 추진한 결과다.

그런 것도 없이 덜컥 집값 잡기 발표용에 동원되는 소셜믹스는 원래 취지와는 다른 방향으로 전개될 이상과 현실의 짬뽕일 뿐이다. 문제는 이런 정책이 한둘이 아니란 점이다. 현 정부 간판정책이면서 아직도 강한 집착을 보이는 소득주도성장 실험도 같은 범주다. 이념을 현실에 강제하거나 이상과 본성을 혼동하는 정책은 성공하기 어렵고 그 대가는 일반 국민이 치르게 된다는 공통점이 있다.
 
김광현 논설위원 kkh@donga.com
#행동경제학#소셜믹스#주택공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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