험난했던 ‘시골 판사’의 첫 출근길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9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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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시법원 부임 박보영 前대법관
‘쌍용차 해고 판결’ 노조 항의 받아… 신변위협 우려해 일찍 관사로 퇴근
박보영 “초심 잃지 않고 소임 다할 것”

“1심 법관으로서 충실히 최선을 다하겠다. 상급심에서 부담을 느끼지 않도록 노력하겠다.”

10일 오후 광주지법 순천지원 여수시법원의 10평 남짓한 민원실. 시법원 판사로 첫 출근한 박보영 전 대법관(57)은 소감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이같이 답했다. 검은 정장을 입은 그는 엷게 웃으며 “고향 쪽에서 근무하게 돼 기쁘다. 초심을 잃지 않고 소임을 다하겠다”고 했다.

올해 1월 대법관 퇴임 뒤 대학에서 후학을 양성했던 박 전 대법관은 이날 서민 사건을 주로 다루는 시·군법원 판사로 첫 출근했다. 당초 부임하기로 했던 9월 1일 예기치 못한 부친상을 당하면서 출근 날짜를 열흘 미뤘다. 1948년 대법원 설립 후 전직 대법관이 일선 법관으로 돌아온 건 이번이 처음이다. 전직대법관은 대체로 퇴임 뒤 대형로펌을 가거나 변호사 개업을 해왔다.

오전 9시 30분에 출근한 박 전 대법관은 지역 인사들을 소개받은 뒤 일부 사건을 서면 결재했다고 한다. 학생들을 가르치다 돌연 법관으로 돌아온 계기에 대해서는 “법원이 각종 의혹으로 어지러운데 제가 인터뷰하는 건 적절치 않다”며 말을 아꼈다. 박 전 대법관은 ‘정년까지 시법원 판사로 근무할 계획인가’라는 기자의 질문에 “앞으로의 일이 어찌 될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있는 곳에서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다.

첫 출근길은 그야말로 아수라장이었다. 한상균 전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노총) 위원장 등 금속노조 쌍용차 지부 노동조합원 30여 명이 오전 7시부터 법원 앞에서 박 전 대법관과의 면담을 요구하고 나섰다. 현장에서는 고성이 오갔고, 박 전 대법관이 인파에 휩쓸려 넘어지기도 했다. 박 전 대법관이 면담 요청을 받아들이지 않자, 노조원들은 법원 민원실에서 난동을 부렸다. 박 전 대법관은 2014년 쌍용차 노조원들이 회사를 상대로 해고를 무효로 해달라며 낸 소송 상고심에서 원심과 달리 회사 측 손을 들어줬다. 이 사건은 최근 공개된 법원행정처 문건에 ‘BH와 VIP의 국정운영에 협조한 사례’로 등장한다.

한 차례 소동을 겪은 박 전 대법관은 오후 일정을 취소하고 여수 시내 관사로 돌아갔다. 법원 관계자는 “박 전 대법관이 신변에 위협이 생기는 걸 우려해 일찍 귀가했다”고 했다.

소규모 법원 중 하나인 여수시법원에서는 박 전 대법관과 직원 4명이 근무한다. 박 전 대법관은 주로 소송가액이 3000만 원 이하인 소액 사건을 맡는다.

여수=고도예 기자 yea@donga.com

“시위대에 밀려 넘어지기도” 박보영 판사 보도 정정

본지는 2018년 9월 11일 “험난했던 ‘시골 판사’의 첫 출근길… 시위대에 밀려 넘어지기도” 제하의 기사에서, 박보영 전 대법관이 여수시 법원 판사로 부임하는 첫 날, 관련 판결에 항의하는 쌍용차 해고노동자들에 밀려 넘어졌다는 내용을 보도한 바 있습니다.

그러나 사실 확인 결과 박보영 판사는 시위대에 밀려 넘어진 사실이 없고, 쌍용차 해고노동자들은 박보영 판사를 만나지도 못했던 것으로 밝혀져 이를 바로 잡습니다. 해당 보도와 관련하여 쌍용차 해고노동자와 독자들에게 사과의 말씀을 드립니다.
#박보영#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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