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시낭인을 구하라”, 팔 걷어붙인 서울시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9월 7일 03시 00분


코멘트
2016년 서울 노량진에서 공무원 시험 공부를 시작한 ‘공시생’ 김모 씨(25·여). 올해 세 번째 시험을 위해 작년보다 마음을 더 다잡고 준비에 매달렸다. 오전 7시부터 오후 5시 30분까지 독서실에서 공부를 한 뒤 부모님에게서 용돈을 받지 않으려고 오후 6시부터 11시까지 학원에서 조교 아르바이트까지 했다.

하지만 석 달 전 치른 9급 지방직 공무원 시험 결과는 또 불합격이었다. 최근 통보를 받은 김 씨는 공시생을 그만두기로 했다. 질려버린 ‘고시식당’ 백반과 편의점 샌드위치를 언제까지 먹어야 할지…. 덜컥 두려움이 밀려들었다. 노량진 골목에 수험생들이 그득그득했다. 수험생활을 오래 한 이들은 한눈에도 알아볼 수 있었다. 공무원 시험도 볼수록 ‘중독’되는 것 같았다. 포기할 수 없는 나이가 되기 전에 다른 길을 찾아봐야 할 것 같았다. 현재 김 씨는 컴퓨터활용능력검정시험과 토익시험 등 취업에 필요한 시험을 준비 중이다. 김 씨는 “저는 아직 취업에 치명적인 나이가 아니고, 전공도 취업 연계가 잘되는 편이라 그나마 나은 편”이라며 “일반 인문계 공시생들은 정말 그만두고 싶은데도 엄두가 안 난다는 친구들이 많다”고 전했다.

청년실업률 지표가 최악을 기록하며 공무원 시험에 매달리는 청년이 약 50만 명으로 추산되는 가운데 서울지역 공시생 10명 중 3명은 수험을 포기하고 취업으로 진로를 변경할 의향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시 출연기관인 서울산업진흥원(SBA)이 7, 8월 온·오프라인 방식으로 서울 종로, 노량진, 강남 등 공무원시험 준비생 1000명을 대상으로 진로변경 희망 수요를 설문조사한 결과다. ‘공무원 시험을 그만두고 기업 분야로 진로를 바꿀 의향이 있느냐’는 질문에 응답자의 30.6%가 ‘그렇다’고 답했다. 32.8%가 ‘보통이다’, 36.6%가 ‘의향이 없다’고 응답했다. 취업으로 진로를 돌리겠다고 답한 응답자 중 48.6%가 5년 이상 시험을 준비한 이들이었으며 ‘2∼5년’(34.2%), ‘2년 미만’(25.6%)으로 시험 준비 기간이 길어질수록 진로 변경 의향이 높은 것으로 조사됐다.

취업으로 진로를 변경하고 싶은 가장 큰 이유로는 ‘희박한 합격 가능성’(50.5%)을 꼽았다. ‘수험 준비의 경제적 부담’(26.7%)과 ‘새로운 분야 도전 희망’(14.2%)이 뒤를 이었다. 그러나 자신감은 매우 낮은 것으로 드러났다. 전체 응답자의 37.8%가 진로 변경 시 자신의 경쟁력이 낮다고 답했다. 이때 경쟁력이 부족한 이유로는 ‘기업 실무경험 부족’(37.4%)이라고 가장 많이 답했으며 그 다음으로 ‘자신감 및 도전의식 부족’(25.4%)과 ‘기업 직무지식 부족’(19.3%)을 들었다.

“공무원 시험에 실패하는 청년들이 사회적으로 낙오되는 걸 막아주는 교육이 절실해요.”

10년간 ‘고시 낭인’이었다는 손모 씨(37·여)가 말했다. 손 씨는 2006년부터 2016년까지 6년간은 공무원 시험, 4년간은 노무사 자격증 시험에 매달렸다. 불합격이 거듭될수록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과연 내가 할 수 있는 게 있을지’ 자존감이 바닥을 쳤다. 취업을 하기엔 너무 늦어버린 나이라는 무력감이 들었다.

길을 걷다 우연히 발견한 정부 취업 프로그램 센터에서 받은 집단 심리 상담이 손 씨의 삶을 바꿨다. “10년 전 기회가 있을 때 ‘대학 가기엔 너무 늦었다’고 포기한 것이 후회된다”고 말하는 60대 여성의 이야기를 들은 후 고민 끝에 직업상담사 자격증을 취득했다. 손 씨는 “심리적으로, 실질적으로 공시생들을 돕는 프로그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서울산업진흥원은 향후 설문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진로 변경을 희망하는 공시생들의 취업을 지원하는 교육 프로그램을 열 예정이다. 올해안에 개설을 목표로 공시생들을 대상으로 기업 최고경영자(CEO) 특강과 기업 미니 인턴을 통한 진로 탐색, 직무 교육 등을 준비하고 있다. 진흥원 관계자는 “중소·중견기업의 일자리 미스매치까지 해결하는 프로그램을 마련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김예윤 기자 yeah@donga.com
#공시낭인#서울시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