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눗방울총부터 톡톡 아이디어 1만개… ‘발명 한국’의 산역사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9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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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학생과학발명품경진대회 40년]40회 대회 수상자, 5일 시상식

“경진대회 수상으로 발명가 꿈 키워” 김중호 ‘대호’ 대표가 고등학생 때 전국학생과학발명품경진대회에서 
대통령상을 수상하는 모습(위쪽 사진). 당시 아이디어로 현재 회사를 차려 만능 트랙터 ‘로보랙터’를 판매하고 있다(아래쪽 사진).
 로보랙터는 트랙터와 굴착기 로봇팔을 결합한 기기로 엔진만 빼고 모두 자체 개발했다. 김 대표는 “더 나은 트랙터를 개발하고 
싶었던 어린 시절의 꿈에 한발 한발 다가가고 있다”고 말했다. 김중호 대표 제공
“경진대회 수상으로 발명가 꿈 키워” 김중호 ‘대호’ 대표가 고등학생 때 전국학생과학발명품경진대회에서 대통령상을 수상하는 모습(위쪽 사진). 당시 아이디어로 현재 회사를 차려 만능 트랙터 ‘로보랙터’를 판매하고 있다(아래쪽 사진). 로보랙터는 트랙터와 굴착기 로봇팔을 결합한 기기로 엔진만 빼고 모두 자체 개발했다. 김 대표는 “더 나은 트랙터를 개발하고 싶었던 어린 시절의 꿈에 한발 한발 다가가고 있다”고 말했다. 김중호 대표 제공
1994년, 한 고등학생이 독특한 발명 아이디어로 제16회 전국학생과학발명품경진대회에서 대통령상을 차지했다. 출품작은 ‘트랙터 부착용 벼 수확기’. 말 그대로 농촌에서 벼 수확을 도울 수 있는 자동화 기구였다. 어른들은 똘똘한 학생 하나가 ‘재미있는 상’을 하나 받았다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학생의 생각은 달랐다. 엔지니어이자 발명가로서의 자신감을 얻은 그는 3년 뒤인 1997년, 땅을 고르는 자동화 농기계 전문기업을 창업해 기업가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김중호 ‘대호’ 대표의 이야기다.

김 대표는 농토를 고르게 만드는 농기구인 써레를 자동화한 제품을 발명해 판매했다. 대호의 써레는 2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 시장 점유율에서 독보적 1위를 달리고 있다. 아직도 현장에서 발명가이자 엔지니어로 활약 중인 김 대표는 최근 고교생 때부터 꿈꿔온 만능 트랙터를 자체 개발했다. 그는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1994년 수상은 내게 더 좋은 트랙터를 만들고 싶다는 오랜 꿈을 실현하게 해준 소중한 계기”라고 말했다.

청소년들을 위한 최고의 발명대회로 꼽히는 전국학생과학발명품경진대회가 올해로 40회를 맞았다. 올해 시상식은 5일 국립중앙과학관 사이언스홀에서 열린다.

그동안 최고상인 대통령상(7회 대회부터 신설) 34명을 비롯해 대회가 배출한 청년 발명가는 약 1만 명에 이른다. 김 대표처럼 기업인이 된 사람도 있지만 직업과 별개로 과학적 아이디어와 혁신정신을 생활 곳곳에서 발휘하는 사람도 많다.

전국학생과학발명품경진대회는 학생은 물론이고 함께한 지도교사도 지도논문을 통해 경합을 벌일 수 있는 독특한 발명대회다. 대회에서 여러 차례 수상해 ‘발명 명문’이라는 자랑스러운 별칭을 얻은 구미전자공고의 발명반을 20년 넘게 이끌던 김용학 전 교사는 2005년 ‘발명의날’에 대통령표창까지 받은 발명 마니아다. 4년 전 그는 아예 교사를 그만두고 경북 성주군에 ‘실용아이디어제작소’라는 작업실을 마련해 발명가의 길을 걷고 있다.

40년간 모인 1만 건의 수상작은 예사롭지 않다. 1979년 첫 대회에서 금상(한국야쿠르트사장상)을 받은 임성무 군(당시 남원용성초 6학년)의 비눗방울총이 대표적이다. 지금도 장난감 가게에서 인기 상품으로 판매되는 비눗방울총은 39년 전 임 군이 처음 생각해낸 아이디어다. 작품기획서에 당시 임 군은 “어떻게 하면 비눗물을 묻히는 불편을 없애고 계속해서 비눗방울을 날릴 수 있을까 고민하다 비눗방울총을 떠올렸다”고 밝혔다.

신호등 옆 초록빛 막대 칸이 줄면서 신호가 바뀔 때까지 남은 시간을 알려주는 안전 신호등의 원형은 1983년 장려상(동아일보사장상)을 받은 신동원 군(당시 서울 세종초 5학년)의 발명품이다. 이후에도 녹색 신호가 켜지면 음악이 재생되고 시간이 다 될수록 연주 속도가 빨라지게 만든 ‘시간 분할 신호등’(1992년) 등 업그레이드된 안전 신호등 작품이 다수 나왔다.

시대에 따라 ‘발명 트렌드’도 변했다. 대회 초기에는 일상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생활과학 부문과 학습용품, 과학완구 부문이 비슷하게 출품됐지만 1990년대 들어 생활과학이 평균 69%로 크게 늘었다. 1990년 자원재활용 부문이 신설돼 환경에 대한 관심이 반영된 결과다. 2012년에는 스마트폰을 활용한 작품이 처음 등장했다.

특허로 출원된 작품도 많다. 지난해 국무총리상을 받은 김성윤 군(당시 서울 세종과학고 2학년)의 ‘물 쏟음 방지 병 내부마개’는 특허 출원 후 상품화를 준비 중이다. 올해 대통령상을 받은 최원찬 군(경북과학고 3학년)의 ‘물 튐 방지 밑창’도 특허 등록을 마쳤다.

교육 현장에선 발명에 대한 인기가 예전 같지 않아 아쉽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한 고등학교 발명반 지도교사는 “많은 기술계 고등학교가 마이스터고 등으로 전환되고 취업과 창업을 강조하는 분위기로 바뀌면서 상대적으로 발명이 위축됐다”고 말했다. 하지만 발명은 기술 창업의 지름길이다. 대회 심사위원장을 맡은 이광식 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장은 “기업 활동에서 특허 의존도가 점점 커지고 있다”며 “발명품을 만들고 제품화한 사람이 안정적으로 창업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지면 좋겠다”고 말했다.

윤신영 ashilla@donga.com·송경은 동아사이언스 기자
#비눗방울총#전국학생과학발명품경진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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