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와이에 잠자는 한국 문화유산 찾아라”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9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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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놀룰루미술관 ‘레인 컬렉션’… 韓日 전문가 감정 현장을 가다


하와이 호놀룰루미술관의 ‘레인 컬렉션’에서 발견한 조선 초기 회화 ‘계회도’ 앞에 선 정우택 동국대 박물관장. 그는 “지금도 세계 곳곳에 우리 문화재들이 주인을 만나지 못한 채 잠자고 있다”며 “해외의 한국학 전문가들을 육성해 현지에서 한국의 국보·보물급 문화유산을 발견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호놀룰루=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하와이 호놀룰루미술관의 ‘레인 컬렉션’에서 발견한 조선 초기 회화 ‘계회도’ 앞에 선 정우택 동국대 박물관장. 그는 “지금도 세계 곳곳에 우리 문화재들이 주인을 만나지 못한 채 잠자고 있다”며 “해외의 한국학 전문가들을 육성해 현지에서 한국의 국보·보물급 문화유산을 발견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호놀룰루=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1년 내내 화창한 햇살과 에메랄드빛 해변을 자랑하는 미국 하와이 호놀룰루. 지난달 27일 찾은 호놀룰루는 아름다운 날씨로 인사를 건넸다. 그러나 하와이의 빼어난 자연경관을 뒤로한 채 정우택 동국대 박물관장(미술사학과 교수·65)과 후쿠시마 쓰네노리 일본 하나조노대 문화유산학부 교수(56)는 서둘러 호놀룰루미술관 지하 1층으로 향했다.

양국 문화재 권위자인 이들이 향한 곳은 바로 미술관의 ‘레인 컬렉션’ 수장고다. 한국 언론에 처음으로 공개한 이 수장고는 동아시아 고미술품이 가득한 곳으로 명성이 자자하다. 한국과 일본, 중국 등을 아우르는 각종 유물 2963점이 자신의 가치를 알아주길 기다리고 있다.

수장고에 들어간 학자들은 각종 고서화 데이터베이스(DB)가 수록된 태블릿PC 등을 꺼낸 뒤 바로 조사를 시작했다. 2014년부터 해마다 두 차례씩 진행돼 올해로 8번째를 맞은 ‘레인 컬렉션’ 감정 현장이다. 태평양 한가운데 위치한 하와이에서 한국의 문화유산을 찾고 있는 이들의 연구를 단독으로 동행 취재했다.

○ 하와이에 숨겨진 한국의 전통 회화

“일본에선 볼 수 없는 작품인데….”(후쿠시마 교수)

“조선시대 전북 임실군 등지에서 유행한 낙화(烙畵) 작품이군. 화찬(畵讚)에 남원이라고 명시돼 있는 등 한국의 작품이 확실하네.”(정 교수)

두 학자는 불에 달군 인두로 표면을 지져 그림을 완성한 한 작품을 두고 열띤 감정을 펼쳤다. 이들이 보고 있던 회화는 19세기 제작된 것으로 보이는 낙화였다. 먹이를 노려보는 매를 표현한 그림으로 조선시대 전북 일대에서 유행한 독특한 전통예술이다. 정 교수는 “꼬박 100여 점의 작품을 감정한 뒤에야 겨우 1건의 한국 회화를 발견했다”며 “작품성이 뛰어나진 않지만 한국 전통의 낙화를 하와이에서 발견한 것만으로도 특별한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사료가 거의 남아있지 않은 고미술인지라 한 작품마다 감정 시간이 굉장히 오래 걸리기도 한다. 작가를 확인할 수 있는 화찬과 인장을 검증해 구체적인 작품의 창작 시기를 밝혀 내는 게 관건. 이후 작품성 및 보존 상태 등을 평가해 그림 제목을 붙이고 최종 등급을 매긴다. 하루 종일 감정해도 최대 20∼30점에 불과하다.

‘레인 컬렉션’은 리처드 레인 박사(1926∼2002)가 사후에 기증한 동아시아 고서화 수집품이다. 레인 박사는 미국 해병대 통역병 출신으로 제2차 세계대전 종전 뒤 일본 교토 등지에서 활동하며 고미술품을 모았다. 하지만 호놀룰루미술관의 인력과 예산 부족으로 지금까지 작품에 대한 조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레인 컬렉션이 빛을 본 것은 2014년 1월경. 문화재청이 진행한 ‘국외문화재 소장기관 활용 지원사업’에 호놀룰루미술관이 감정과 보존 작업에 대한 도움을 요청하면서부터였다. 당시 한국 전문가로 참여한 정 교수는 예상치 못한 보물급 한국 문화유산을 발견했다.

“당시 조선 초기 문관인 윤안성(1542∼1615)의 시가 적혀진 1586년 그림 ‘계회도(契會圖)를 발견했죠. 조선 초기 산수화의 전형으로 평가받을 만큼 뛰어난 작품이었습니다. 그때 결심했죠. 하와이에서 잠자고 있는 한국의 문화유산을 꼭 찾아내야겠다고 말입니다.”

○ 1%의 가능성을 향한 도전

물론 레인 컬렉션의 대부분은 성격상 일본 미술품이 다수이다. 지난달 27∼30일 회화 총 130점을 감정했는데 한국 전통회화는 단 2점밖에 찾지 못했다. 지금까지 조사가 완료된 1100여 점 가운데 한국 작품은 30여 점에 그쳤다. 하지만 정 교수는 사비를 들여 조사 작업을 지금까지 이어왔다. 이 무모한 도전을 정 교수는 왜 계속하는 걸까. 그는 “1%의 가능성을 믿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호놀룰루미술관과도 끝까지 조사를 해주겠다고 약속을 했습니다. 사실 포기하고 싶은 순간이 정말 많았죠. 하지만 ‘계회도’나 17세기 작품 ‘주돈이애련도(중국 성리학자 주돈이가 연꽃을 감상하는 모습을 담은 그림)’ 등 보물급 고미술품이 이따금 나오니 실낱같은 희망을 버릴 수가 없었습니다. 잠자고 있던 우리 문화재를 발견한 것만으로도 이미 보상을 받았다고 생각합니다. 2963점의 모든 작품을 조사해 단 한 점이라도 한국의 소중한 문화유산을 꼭 발견해낼 겁니다.”
 
호놀룰루=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호놀룰루미술관#레인 컬렉션#정우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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