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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여수의 라스트 씬] 1등만 기억하는 세상…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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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여수의 라스트 씬] 1등만 기억하는 세상…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

윤여수 기자 입력 2018-09-03 06:57수정 2018-09-03 0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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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4등’은 우리 사회에 만연한 1등 지상주의에 날카로운 메시지를 던진다.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라는 것을 다시 한번 일깨워준다. 사진은 ‘만년 4등’인 준호가 체벌을 가하는 코치의 훈련을 받는 장면. 사진제공|프레인글로벌·CGV아트하우스

■ 영화 ‘4등’

아이에게 1등만 강요하는 어른들
전보다 잘하면 됐지 뭘 더 바라나
AG서 뛴 모든 선수들에게 박수를…


2일 막을 내린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서 770명의 대표 선수단은 중국과 일본에 이어 한국이 여전히 아시아 스포츠 강국임을 입증했다. 카누 용선 남녀팀과 여자농구팀 등 ‘코리아’라는 이름으로 나선 남북단일팀의 활약도 눈부셨다. 물론 이들 메달리스트들에게만 환호와 박수를 보낼 일은 아니다. 대회에 참가한 모든 선수들과 코칭스태프도 승자이다. 더 이상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이 아니며, 아무나 쉽게 이룰 수 없는 은메달의 영광으로도 침통한 표정을 지은 채 고개를 숙이던 과거의 안타까움과도 결별한 지 오래다.

선수들에게 향할 마땅한 박수는 이들이 오랜 시간 흘린 땀과 눈물에 대한 찬사이다. 오로지 승리를 위해, 자신의 꿈과 목표를 향해 쉼 없이 뛰고 달려오는 과정 속에서 이들이 흘렸을 땀과 눈물의 양은 대체 얼마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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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과 목표는 그래서 이를 이루려는 이들의 것이어야 한다. 꿈과 목표는 이루려는 자들 이외의 누구도 강요할 수 없는 것이다. 거기에 끼어들 권리를 지닌 사람은 아무도 없다. 권리란 공정한 경쟁과 경기의 규칙 안에서 끊임없이 자신을 단련해온 이들만의 것인 까닭이다.

하지만 무수한 꿈과 목표는 왜곡되기 십상이다. 공정한 경쟁의 규칙이 허물어진, 혹은 허물어졌다고 여겨지는 시대에는 더욱 그렇다. 그러니 여기에 끼어들 권리를 주장하는 이들은 또 얼마나 많아지는가. 규칙이 허물어졌으니 그 규칙을 새롭게 정비하고 또 다져가야 할 노력은 뒤로 한 채, 오로지 설정한 꿈과 목표, 아니 이미 왜곡되어 버린 꿈과 목표를 향해 달려가라고 채찍질할 뿐이다.

채찍의 날카로운 뼈아픔을 애써 참아가며 내가 설정하지 않은 꿈과 목표만을 향해가는 일은 고통스럽다. 이루려는 꿈과 목표, 하지만 당초 나의 것이 아닌 것만 같은, 그래서 왜 그것을 이뤄야 하는지조차 알지 못한 채 무조건 내달려 나아가야 하는 길 위에서 무수하게 스러진 꿈은 또 얼마인가.

영화 ‘4등’의 한 장면. 사진제공|프레인글로벌·CGV아트하우스

● “엄마는 기다리고 있겠어요”

태평양전쟁이 극단을 치달으며 일본에 패망의 기운을 안겨주던 1944년 5월. 이제 갓 중학생이 된 14살 소년 이치로는 어머니 하타노 이소코와 편지를 주고받기 시작했다. 아들은 또래 아이들처럼 자신도 겪는 매우 생생하고 절실한 고민을 써내려갔다. 학교생활, 친구 혹은 형제와 겪는 갈등, 일탈에 대한 작은 욕망 같은 일상에서부터 전쟁과 인생 등 자신이 바라보는 더 넓은 세상에 관한 고민까지. 모자의 대화는 1948년 이치로가 상급학교에 진학하기까지 4년 동안 이어졌다.

놀라운 것은 그 사이 드러나는 현실과 세상에 관한 이치로의 시선과 내면의 변화와 그 양상이다. 전쟁이 끝난 이듬해인 1946년 이치로는 세상을 바라보는 다양한, 하지만 이를 주장하는 이들은 보편적이라고 말하는, 가치와 기준을 두고 혼란스러움 속에서 이렇게 썼다.

“옛날 사람들이 얼마나 훌륭했는지 모르겠지만, 한 명의 인간으로부터 그렇게 간단히 보편적인 진리가 만들어질 리 없습니다. 그저 스스로가 진리라고 여기는 이야기에 불과할 거예요. 그래서 저도 매 순간 나만의 진리를 만들어 가려고 합니다. 그렇다고 제가 자신 있다는 이야기는 아니에요. 저라는 전차가 탈선으로 사고가 날지도 모르고요. 그러니 전차가 고장 나지 않게끔 어머니가 잘 정비해 주세요. 그렇다고 브레이크를 밟지는 말아 주세요. 운전은 제가 할 테니 어머니는 선로나 봐 주세요. 튼튼한 선로를 만들어 무사히 종점까지 갈 수 있게 해 주세요.”(‘소년기’, 하타노 이소코)

물론 그의 어머니는 앞을 향해 내달리는 아들이라는 전차의 “브레이크를 밟지” 않았다. 아들의 바람대로 전차를 잘 정비하고 선로를 봐주었다. 이치로는 자신의 온갖 투정을 이해하며 온전하게 있는 그대로 바라봐준 어머니의 믿음 덕분에 매우 자연스러운 성장의 과정을 지날 수 있었다.

어머니는 “시험은 합격 여부가 중요하지 않아요. 모든 공부는 헛되지 않기 때문이죠. 이치로 나이 때는 무엇이든 힘닿는 데까지 부딪쳐 보는 게 좋습니다. 물론 이치로가 허우적거리는 모습을 보면 가엾기도 하지만 그런 경험이 결국 정신적 성숙을 가져올 거예요”라며 “엄마는 그렇게 생각하고 즐거운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겠어요”라고 말했을 뿐이다.

영화 ‘4등’의 한 장면. 사진제공|프레인글로벌·CGV아트하우스

● “전보다 잘하는 것”

70여년 전 아이와 어머니가 주고받은 편지의 교훈처럼 아이들의 성장은 결코 닦달해서 될 일이 아닐 터이다. 하지만 아이들의 성장이 닦달해야만 이뤄진다고 믿는 어른은 수없다.

대회마다 4등에 머물고 마는 어린 아들의 꿈과 목표에 엄마가 기어이 그리고 끊임없이 개입하는 것도 그런 탓이다. 아들이 폭력적 체벌의 위기에 놓이는 상황 앞에서도 엄마의 개입은 멈추지 않는다. 그럴 때 오로지 메달만이 꿈과 목표인 것은 엄마의 욕망인가, 아니면 아들의 현실적 가능성인가. 어쨌거나 엄마의 꿈과 목표 안에서 메달은 3등 안에 들어야 목에 걸 수 있으며, 그것은 아들이 스스로 지닌 기록에서 조금 더 빨리 나아가 자신을 성취하는 것보다 그저 남들과 경쟁에서 이길 때 가능한 일이다.

바티칸 대법원 로타 로마나 변호사인 한동일 신부는 ‘라틴어수업’에서 유럽 대학의 교수들이 학생의 성적을 매기는 라틴어식 표현을 소개했다. “Summa cum laude(숨마 쿰 라우데) / Magna cum laude(마냐·마그나 쿰 라우데) / Cumlaude(쿰 라우데) / Bene(베네)”로 쓰는 성적 표기는 각각 “최우등 / 우수 / 우등 / 좋음·잘했음”을 뜻한다.

한 신부는 “평가 모두가 긍정적인 표현”이라면서 이는 “잘한다/보통이다/못한다 식의 단정적이고 닫힌 구분이 아니라 ‘잘한다’라는 연속적인 스펙트럼 속에 학생을 놓고 앞으로의 가능성을 열어두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럴 때 “학생들은 남과 비교해서 자신의 위치에 대해 우월감을 느끼거나 열등감”을 느끼지 않고 “스스로의 발전에 의미를 부여”해 “남보다 잘하는 것이 아닌 ‘전보다’ 잘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게 된다는 것이다.

수많은 어른들은 자신들이 그토록 찬양해온 선진유럽의 대학과 그 교수들의 라틴어식 성적 표현법과 그 의미를 일찍이 알고 있었을까, 몰랐을까. 그런 어른들의 개입 속에서 아이들은 이미 자신들이 “전보다” 잘 할 수 있는 것을, 온전히 자신들의 것이 되어야 할 꿈과 목표를 잃어가는 위태로운 현실 위에 서 있다.

영화 ‘4등’의 한 장면. 사진제공|프레인글로벌·CGV아트하우스

■ 영화 ‘4등’은?

초등학생 준호는 수영에 재능과 실력을 지녔지만 대회에서는 늘 4등에 머물고 만다. 엄마는 국가대표 출신으로 ‘천재’로 불린 광수를 코치로 내세운다. 광수는 폭력적 체벌로 준호를 몰아가고, 결국 준호는 꿈을 포기해야 하는 위기에 놓인다. 정지우 감독의 2016년작. 엘리트 스포츠의 허상, 폭력적 교육 시스템, 지나친 경쟁과 성적지상주의 등 현실의 부조리함을 고발한 수작이다. 코치 역 박해준, 엄마와 준호 역의 이항나와 유재상 등이 호연했다.

윤여수 전문기자 tadad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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