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주차 칸에 차 댔다가 신고 당하자…“장애인 주차구역 없애자”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8월 26일 20시 5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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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씨는 이달 초 거동이 불편한 어머니와 함께 인천 계양구에 거주하는 친척집을 방문했다. A 씨는 동 출입구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장애인 주차칸에 차를 대려다가 당황했다. 다른 주차칸에 비해 장애인칸이 유독 좁게 그려져 주차를 하는 게 사실상 불가능했기 때문. A 씨는 주차장을 빙빙 돌다가 겨우 자리가 난 비장애인 칸에 주차한 뒤 어머니를 부축해 아파트로 들어가야 했다.

이 아파트는 올해 4월부터 동대표 회의 등에서 꾸준히 ‘장애인 주차구역 폐지’를 논의하고 있다. 비장애인 주민 중 일부가 장애인 주차칸에 차를 댔다가 신고를 당한 것이 발단이 됐다. 당시 관리사무소에서 붙인 협조문에는 “주민분이 신고 피해자가 되어 갈등이 있다”며 “장애인 주차구역 폐쇄는 동대표 회의 안건에 상정해 결정할 것”이라는 안내가 담겼다. 이후 논의가 진행 중인 상황에서 관리사무소가 신고를 예방하기 위한 방편으로 장애인 주차칸의 폭을 좁힌 것이다.

19일 이 아파트를 찾아가보니 장애인 주차칸 안쪽에 주차선을 넓게 덧칠한 것이 뚜렷하게 보였다. 추가로 칠한 주차선은 약 30cm 넓이였다. 비장애인 주차칸의 폭은 2.5m인데 반해 장애인 주차칸 폭은 2.2m가 된 셈이다. 장애인 주차칸 양 옆에 차량이 바짝 주차돼 있으면 장애인 주차칸에 차를 대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했다. 장애인들로서는 주차공간을 잃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실제 주말인 이날 이 아파트 주차장은 만원이었지만 좁아진 장애인 주차칸은 7곳이 모두 비어있었다.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이 아파트의 조치에 대해 “너무 이기적이다”, “위법 아니냐”는 등 비난하는 글이 여러 개 올라왔다. 아파트 관리사무소 측은 “21일 원래 규격대로 장애인 주차선을 다시 그렸다”고 밝혔다.

장애인 주차구역 위반 과태료 부과는 크게 늘어나고 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2011년 1만2191건이었던 장애인 주차구역 위반 과태료 부과 건수는 지난해 33만359건으로 6년 만에 30배 가까이 증가했다. 장애인 주차구역 준수에 대한 시민 인식이 높아졌고, ‘생활불편신고’ 모바일 앱 등을 통해 손쉽게 불법 주차를 신고할 수 있게 된 점 등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장애인 주차구역 위반 신고를 당한 것을 ‘피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 시각에서는 불편한 일이다. 그렇다보니 아예 장애인 주차구역을 없애자는 목소리가 나오는 것이다.

장애인 주차구역을 없애는 것이 모두 불법은 아니라는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장애인·노인·임산부 등 편의증진보장법은 2005년 7월 이후 지어진 아파트에 대해 장애인 주차구역 설치를 의무화했다. 때문에 2005년 7월 이전에 지어진 아파트의 경우 장애인 주차구역이 없어도 법적으로는 문제가 없다.

실제로 일부 아파트에서 장애인 주차장을 폐지한 사례가 있다. 2015년 전북 전주의 한 아파트에서는 주민이 신고 당하는 것을 막기 위해 장애인 주차칸 17개를 모두 없앴다. 2016년 대구 달서구의 한 아파트도 “주민 전체의 이익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장애인 주차구역을 없앴다. 국가인권위원회에서는 이와 관련한 진정에 대해 2016년 “장애인 차별의 우려가 있다”며 원상복귀 권고를 했지만 강제력은 없다.

김자현기자 zion3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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