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타? 공중전화? 옛말!…건군 70년 맞은 군대, 어떻게 바뀌나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8월 25일 1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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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전투복
최근 전투복

과거 군대는 ‘젊음을 담보 잡히는 시간’이라 불렸다. 혈기왕성한 20대에 현역(일반 병사)으로 입대하면 2년 넘게 사회와 격리된 생활을 감내해야 했다. 30여명이 한 내무반을 쓰는 병사들은 좁은 내무반에서 생활해야 했고 일부에선 구타 사고도 발생했다. 외부와 통화 하려면 공중전화가 전부였고 외출은 포상자 외에는 극히 제한적이었다.

그러나 건군 70년을 맞은 군대가 변화하고 있다. 복무기간이 크게 단축됐고 내무반(생활관)도 10명 안팎의 쾌적한 환경으로 탈바꿈했다. 군 인권이 개선되면서 얼차려 문화도 거의 사라졌다. 올해 일과 후 개인 휴대전화 사용을 시범 실시하면서 외부와의 통화도 자유로워질 것으로 보인다. 사회봉사, 리더십 등 군 복무 경험을 대학 학점으로 인정하는 방안까지 추진된다. 이제 군대가 미래를 준비하는 공간으로 진화하고 있는 셈이다.

●부대 내 휴대전화 가능… 월급도 수직 상승

그동안 군에서는 통신 보안에 극도로 신경을 써왔다. 각종 군 기밀이 외부에 유출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다. 이 때문에 입대할 때 개인 휴대전화는 반입할 수 없었다.

그러나 국방부가 올해 3월 발표한 ‘2018¤2022 군인복지기본계획’에 따르면 3분기에 육해공군 중 시범부대를 정해 일과 후 휴대전화 사용을 허용한 뒤 4분기에 전군 확대 여부를 검토하기로 했다.

이미 군은 2016년 생활관에 수신전용 공용 휴대전화를 비치해 병사들이 부모나 친구로부터 걸려온 전화를 받을 수 있도록 했다.

다만 스마트폰으로 작전 관련 기밀자료가 유출되는 등 보안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와 관련해 군 당국은 휴대전화에 사진촬영 및 음성녹음 기능을 제한하는 앱 설치 등 세부 가이드라인을 마련하고 있다.

30년 전인 1988년 당시 육군 병장 월급은 7500원이었다. “군대 병사 월급으론 담뱃값밖에 안된다”던 시절이었다. 1998년에는 외환위기와 관련해 전년과 같은 1만3300원으로 동결되기도 했다. 그러나 2000년대 들어 병사 월급은 크게 오르면서 2011년 10만 원을 돌파(10만3800원)했고 올해는 40만6000원이나 된다.

군 당국은 병장 월급을 2022년까지 67만6000원으로 높일 계획이다. 국방부 관계자는 “병역의무 이행자에 대한 합리적 보상과 국가책임 강화 차원에서 병사 봉급을 연차적으로 인상할 것”이라며 “외부 지원 없이 병영생활이 가능하고 전역 시 사회진출의 마중물로 활용하라는 취지”라고 말했다.

군복 변천 사진
군복 변천 사진

●군 복무기간 줄고, 일과 후 외출까지 가능

군 복무기간은 한국전쟁 이후 꾸준히 단축돼 왔다. 1959년 33개월(이하 육군)에서 1981년 30개월, 1993년 26개월, 2003년 24개월, 2011년 21개월로 각각 단축됐다. 여기에 국방부는 올해 10월 전역자부터 병사 복무기간 단축을 시행한다고 밝혔다. 군 복무가 18개월로 줄어드는 것이다. 지난해 1월 입대자부터 복무기간을 단계적으로 단축해 2020년 6월 입대자는 이듬해 12월 제대하도록 했다.

군 관계자는 “병사 복무기간 단축은 현대전 양상의 변화에 맞춰 과학기술 군으로 정예화하는 국방개혁의 하나”라며 “취업 등으로 어려움을 겪는 청년들의 병역 부담을 완화하고 사회진출 시기를 앞당겨 국가 인적자원의 효율적인 활용하자는 차원”이라고 설명했다. 또 “첨단전력을 증강하고 병사의 비 전투 임무를 최소화하는 종합 개혁을 통해 전력을 강화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병사가 정기 휴가 외에 외출, 외박을 하기는 쉽지 않았다. 체육대회 우승 등 각종 포상을 받아야 이례적으로 외출할 수 있었다. 한국전쟁 직후인 1950년대 중반 서울 방위를 맡던 해병 1사단장은 우수 이등병들을 선발해 순차적으로 ‘서울관광 외출’을 시킨 게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처럼 까다롭던 병사의 외출이 한층 자유로워질 것으로 보인다. 국방부가 올해 8월부터 10월 말까지 13개 부대 사병의 평일 일과 후 외출을 시범 실시한 뒤 이르면 내년부터 전군으로 확대할 방침이라고 밝혔기 때문이다. 군에서 오후 6시부터 점호 시간인 오후 10시까지 외출을 허가하는 획기적인 제도다. 부대 운영에 지장이 없는 한도 내에서 가족과 만남, 민간 의료시설 이용, 소규모 단합활동을 허가해 사회와의 소통을 확대하자는 취지다. 자칫 음주 사고 등 군 기강이 흐트러질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있지만 자유로운 병영생활을 위해 외출은 필요하다는 반응도 나온다.

이와 함께 군 생활에서 힘든 일 가운데 하나가 부대 주변 정리 업무였다. 부대 주변을 돌며 잡초를 뽑고 연병장 돌을 고르는 작업은 고된 일상이었다. 공군의 경우 겨울에 폭설이 내리면 하루 종일 비행장 활주로 눈을 치워야 했다.

이 같은 병사들의 부대 관리 사역도 민간 인력으로 대체된다. 국방부는 병사들이 본연의 임무 수행에 전념하도록 우선 일반전방초소(GOP) 지역 11개 사단을 대상으로 민간인력 전환을 실시한 뒤 2020년 전군으로 확대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1970년대 군복
1970년대 군복

●병사들의 거주 공간과 군복도 업그레이드

한국전쟁 이후 군대 내무실(내무반)은 30~50여 명이 함께 생활하는 ‘콩나물시루’였다. 침상 바닥에는 침구류, 그 위로 나무로 된 관물대를 만들어 철모, 옷 등 개인장비를 놓도록 했다. 공간이 비좁아 칼잠을 자야 했고 쥐, 바퀴벌레가 많아 위생 상태도 나빴다고 한다. 군은 이후 내무실의 열악한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침상 밑을 막아 위생 상태를 개선했고 나무 관물대를 상자형으로 바꿨다.

1980년대 내무반은 옷걸이형 관물대를 도입해 수납 편의성을 높였다. 2003년 내무반 개선사업이 시작되면서 신형 내무반이 도입됐다. 전방 부대들을 시작으로 소대 단위(30~50명)였던 내무반이 분대 단위(8~10명) 침대형 구조로 바뀌었다. 2005년 10월에는 명칭도 ‘생활관’으로 바꿨다.

생활관의 편의 시설도 크게 개선됐다. 1960년대는 러시아식 난로인 페치카와 라디에이터를 사용했지만 현재는 시스템 냉·난방기를 도입해 쾌적한 환경을 유지하고 있다. ‘5분 이내 샤워 완료’를 외치던 열악한 사우나 시설도 이제는 언제든 온수를 쓸 수 있는 시설이 마련됐다.

군복도 시대에 따라 변화하고 있다.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1948년 국군이 창설됐을 당시는 물자가 부족해 미국으로부터 군복을 보급 받거나 일본 군복을 입었다. 한국전쟁 직후인 1954년 미군 군복과 비슷한 디자인의 정식 군복이 나왔다. 1965년에는 팔꿈치 무릎 엉덩이 등 쉽게 마모되는 부분에 보강용 천을 덧댄 군복을 선보였다.

1990년 개량화된 군복은 얼룩무늬 전투복이었다. 흙색 20%, 녹색 30%, 갈색 30%, 모래색 20%로 얼룩 무늬를 만들어 은폐 엄폐에 최적화했다.

2008년에는 디지털무늬 전투복을 도입했다. 흙색, 침엽수색, 수풀색, 나무줄기색, 목탄색 등 국내 화강암을 응용한 디지털 5도색을 하고 있어 상대에 잘 노출되지 않도록 했다. 신축성과 땀 흡수 기능도 개선됐다.

최근에는 첨단화 전투복을 추진 중이다. 국방부는 지난해부터 스마트 섬유소재를 적용한 전투복을 개발하고 있다. 위장 효과를 극대화하고 편의성을 강화해 최상의 전투력 발휘할 수 있는 제품을 내년 경 보급할 예정이다.

황태훈 기자 beetlez@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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