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에게 국가는 없다” 도심 2만명 성난 외침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8월 2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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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희정 1심 무죄 판결 항의 집회

“안희정이 무죄면 사법부는 유죄다.”

수행비서 김지은 씨(33)를 성폭행한 혐의로 기소된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53)의 1심 무죄 판결을 비판하는 집회가 18일 서울 도심에서 열렸다.

‘미투운동과 함께하는 시민행동’은 이날 ‘여성에게 국가는 없다―못살겠다 박살내자’는 이름으로 성폭력·성차별 끝장집회를 주최했다. 오후 5시부터 서울 종로구 서울역사박물관 앞 새문안로에서 열린 집회에는 주최 측 추산 약 2만 명이 모였다. 집회에 참가한 시민들은 빨강이나 검정 바탕에 흰색으로 ‘안희정은 유죄다’ ‘사법부도 유죄다’라고 쓴 종이 팻말을 들었다.

이번 집회는 당초 25일에 열 예정이었지만 14일 서울서부지방법원이 안 전 지사에게 무죄를 선고하면서 일주일 앞당겨 열렸다. 이 자리에는 여성뿐 아니라 남성 참가자도 여럿 있었다. 자녀와 함께 나온 가족 단위 참가자도 눈에 띄었다. 6세 딸을 데리고 나온 민모 씨(35·여)는 “박물관에 나들이를 왔다가 집회를 한다는 걸 알고 함께 팻말을 들게 됐다”며 “이번 판결을 바로잡으려는 어른들의 노력을 아이에게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들은 1심 판결과 재판장인 조병구 부장판사를 강도 높게 비판했다. 여성학자인 권김현영 씨는 이번 판결을 “사법 농단이자 언어 농단”이라고 규정한 뒤 “피해자의 증언만 탄핵당했다. 탄핵당해야 할 사람은 조병구”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올 2월 고은 시인(85)의 성추문을 폭로했다가 최근 고 시인에게서 명예훼손으로 고소를 당한 최영미 시인(57·여)은 “안희정 씨는 모든 잘못을 인정하고 스스로 감옥에 가라. 그러면 기꺼이 용서할 준비가 됐다”고 말했다.

판결 이후 김지은 씨의 두 번째 입장도 공개됐다. 김 씨는 자신의 변호를 맡고 있는 안희정성폭력사건공동대책위원회(대책위)의 정혜선 변호사가 대신 읽은 편지에서 “그날 저는 안희정에게 물리적이고 성적인 폭력을 당했다. 최대한 거부 의사를 표현했다. 안희정의 미안하다는 말을 믿었다”고 밝혔다. 이어 “검찰의 집요한 수사와 법원의 이상한 질문에도 다 답을 했다”며 “(재판부는) 왜 진실을 말한 사람들의 목소리를 듣지 않았나. 왜 가해자 측 말만 들었나”라고 재판부를 비판했다. 김 씨는 “죽어야 제대로 (내 미투가) 인정받는다면 죽어야 하나 생각도 했다”라며 “바로잡을 때까지 이 악물고 살아있겠다”고 의지를 밝혔다.

집회 초반에는 주최 측 추산 7000여 명이 모였지만 점차 인원이 늘어났다. 경찰은 당초 새문안로 서대문역 방향의 4개 차로 중 오른쪽 끝 1개 차로만 집회 참가자에게 내줬다가 3개 차로로 확대했다.

세종대로와 인사동, 종로로 이어진 행진에서 참가자들은 안 전 지사, 고 시인을 비롯해 연극연출가 이윤택 씨, 안태근 전 검사장, 영화감독 김기덕 씨, 배우 조재현 씨 등 미투 대상자의 실명을 들며 “고은 10억 손배소송, 네 명예는 네가 훼손” “안희정은 끝났다, 안희정은 감옥으로” 등 구호를 외쳤다.

서형석 기자 skytree08@donga.com
#무죄 판결 항의 집회#도심 2만명#안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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