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하듯 크레인 원격조종… 항만의 ‘아마조네스’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8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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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신항 한진 컨테이너 통제실 직원 21명 모두 여성 ‘금남구역’

14일 한진부산컨테이너터미널(HJNC) RCS 직원들이 모니터 화면을 바라보면서 조이스틱을 이용해 컨테이너 박스를 나르고 있다. 
RCS에서는 원격으로 야드크레인을 조종해 컨테이너를 화물차에 옮기는 작업을 한다. 부산=변종국 기자 bjk@donga.com
14일 한진부산컨테이너터미널(HJNC) RCS 직원들이 모니터 화면을 바라보면서 조이스틱을 이용해 컨테이너 박스를 나르고 있다. RCS에서는 원격으로 야드크레인을 조종해 컨테이너를 화물차에 옮기는 작업을 한다. 부산=변종국 기자 bjk@donga.com
부산신항 한진부산컨테이너터미널(HJNC) 사무실에 있는 RCS(통제실·Remote Control Station)는 ‘금남(禁男)의 구역’이라 불린다. 실제로 들어가 보니 직원 21명이 모두 여성이다. ‘험하기로 소문난 항만에 여성들만 근무하는 곳이라니….’ 의문을 해소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RCS 직원들은 선박에서 화물차로 내려진 컨테이너를 야적장에 옮겨 쌓거나, 야적장에 있는 컨테이너를 다시 화물차로 옮기는 일을 한다. 과거에는 사람이 직접 크레인을 조종해 컨테이너를 날랐다. 하지만 요즘은 무인자동화 크레인(야드 크레인)이 도입돼 사무실에서 어디로 컨테이너를 옮기라는 신호만 입력하면 야드크레인이 스스로 컨테이너를 옮긴다. 하지만 사람의 힘이 필요한 부분이 있다. 야드크레인은 컨테이너를 들어서 화물차 바로 위 6m 상공까지만 옮겨준다. 여기서부터 화물차에 컨테이너를 안전하게 싣는 작업은 사람이 직접 조종해야 한다. 컨테이너와 화물차의 크기와 종류, 규격이 제각각이어서 자동화에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RCS 직원들은 상하좌우로 조심스럽게 조이스틱을 움직여 화물차에 컨테이너가 딱 맞게 실릴 수 있도록 조종했다. 마치 ‘테트리스’라는 블록쌓기 게임을 보는 것 같았다. 조금의 오차도 용납되지 않는다. 화물차에 제대로 실리지 않으면 컨테이너가 떨어져 박살나거나 화물차가 망가진다. 스피드도 중요하다. 주간 근무(오전 9시∼오후 8시) 기준으로 평균 300개, 물량이 많은 날엔 500개를 날라야 하기 때문이다. 1∼2분에 컨테이너 1개꼴이다.

이처럼 고도의 집중력과 섬세함, 꼼꼼함을 요구하는 작업 특성상 여성이 남성보다 적합하다는 게 직원들의 설명이다. HJNC 박희숙 대리는 “특별히 여성만 고용한 건 아닌데 결과적으로 여성들로 채워졌다”며 “여성들이 상대적으로 더 섬세하다 보니 실수나 사고 위험이 적어 그런 것 같다”며 ‘해석’해줬다. 박 대리는 “화물차 기사님들과 소통이 매우 중요한데 딸 같은 직원들과 무전으로 이야기하면서 분위기가 더 좋아지는 효과도 있다”고 말했다. 때때로 화물차 기사들이 “우리 딸내미들 고생 많지”라며 커피와 아이스크림을 사다주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취재 도중 비상상황이 발생하기도 했다. 한 여성 직원이 “어? 컨테이너 박스가 안 맞아요. 뭔가 이상한데요? 현장에 직접 가봐야 할 것 같아요?”라며 다급하게 소리쳤다. 이윽고 모니터 화면에 현장으로 급파된 한 남성이 화물차와 컨테이너의 고박(잠금장치) 상태를 살피는 모습이 보였다. 한참을 살피더니 문제를 해결했다는 수신호를 줬다. 어딘가 무게중심이 맞지 않는 것 같다는 ‘직감’ 덕분에 사고를 면할 수 있었다. 이를 지켜보던 사무실 막내 정문선 인턴은 “처음 이 일을 혼자 했을 때 긴장감이 지금도 생생하다”며 “항만은 물류의 꽃이라고 부르는데 물류의 첫 시작인 컨테이너 작업을 내가 하고 있다는 데 자부심이 크다”고 말했다.

RCS 직원들은 하루 약 11시간씩 교대 근무를 한다. 야간 근무를 해야 하는 단점이 있지만, 출산 및 육아휴직 후에도 할 수 있는 직업이라 이직률이 낮다. 박 대리는 “항만 근무를 걱정하던 가족들도 지금은 일을 독려하고 남편도 계속 일하기를 바란다”며 웃었다. 야간 근무를 하면 졸리지 않냐고 묻자 정 인턴은 “순간의 실수가 사고로 이어지니까 잠이 올 수가 없다. 휴대전화도 끄고 근무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부산=변종국 기자 bjk@donga.com
#크레인 원격조종#한진 컨테이너 통제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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