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금융제재 불뿜은 트럼프… 석유수출 봉쇄 또 한발 장전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8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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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2년7개월만에 이란제재 부활

그래픽=김충민 기자
그래픽=김충민 기자
7일 40도에 육박하는 더위에도 이란 사회는 꽁꽁 얼어붙었다. 이날 미국의 대(對)이란 경제·금융 제재가 재개되기 전부터 이란에서는 리알화 가치가 급락하고 금 사재기가 횡행했다. 수입에 의존하는 생필품 가격도 급등해 최근 이란 시민들은 마트에서 물건 사재기를 하느라 분주했다. 벌써부터 극심한 생활고를 호소하는 이란 시민들의 목소리가 들린다. 중동 언론에 따르면 시민들은 “고기를 먹지 못하는 사람들이 넘쳐난다” “집세는커녕 당장 먹을 음식을 걱정해야 한다”며 불만을 터뜨리고 있다. 수도 테헤란에서 시작된 민생고 시위는 전국으로 번지며 반정부 시위로 변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6일 이란 제재를 복원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하면서 미국의 이란 옥죄기가 본격화됐다. 미국의 대이란 제재는 버락 오바마 행정부 시절인 2016년 1월 이란이 핵합의 이행에 나서면서 완화 및 중단한 지 2년 7개월 만이다.

제재는 7일 0시(미국 동부 시간·한국 시간 7일 오후 1시) 다시 시작됐다. 이날 발효된 1단계 제재는 △이란 정부의 달러화 구매 금지 및 이란 리알화를 통한 거래 금지 △이란 국채 매입 금지 △흑연 및 금속 자동차 소프트웨어 거래 금지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한다. 이란 정권의 자금줄을 조이면서 글로벌 달러 체제에서 이란을 ‘퇴출’하는 게 목적인 셈이다. 특히 미국 업체뿐 아니라 이란과 거래한 제3국의 기업이나 개인도 제재를 받는 ‘세컨더리 보이콧’(제3자 제재)이 적용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행정명령에 서명한 뒤 성명을 낸 데 이어 7일 트위터를 통해서도 “이번 제재는 그동안 부과된 것 중 가장 가혹한 제재다. 그리고 11월엔 (제재 수준이) 더 높아진다. 이란과 비즈니스를 하는 그 누구라도 미국과 사업을 할 수 없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제재가 본격화되면서 2015년 7월 핵합의 타결 후 이란에 진출했던 기업들이 하나둘 발을 빼고 있다. 이른바 ‘테헤란 엑소더스’가 일어나는 중이다. 파이낸셜타임스(FT)와 CNBC 등에 따르면 현재까지 자동차 회사 푸조와 르노 등 50여 개 글로벌 기업이 이란과 거래 중단 의사를 밝혔다. 이란에서 가스 개발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던 프랑스 에너지업체 토탈은 이미 5월 사업 철수를 예고했고 독일 전자기업 지멘스도 모든 신규 거래를 중단하겠다고 밝혔다. 이란에 항공기 100여 대를 공급하기로 했던 에어버스도 대부분의 계약을 포기할 것으로 보인다.

이란 리알화 가치는 출렁거리고 있다. 미국의 핵합의 탈퇴 전까지 시장에서 달러당 5만 리알 안팎이었던 리알화 가치는 제재에 대한 불안감의 반영으로 지난달 30일 달러당 11만8000리알까지 떨어지며 사상 최저치로 폭락했다. 이란 정부가 일반인도 달러화 예금 계좌를 열 수 있게 해 ‘장롱 속 달러’를 끌어들이는 등 리알화 가치를 방어하기 위한 대책을 내놓았다. 현재 리알화 가치는 달러당 9만 리알 선을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리알화 가치 하락을 우려한 이란 시민들이 금 사재기에 나서면서 최근 이란에서는 금값이 폭등했다.

더 큰 문제는 11월 5일부터 적용되는 2단계 제재다. 이란 원유, 에너지 사업 관련 거래 제재가 담긴 2단계가 적용되면 이란 경제의 ‘생명줄’인 원유 수출까지 틀어 막히게 된다. 이란의 연간 원유 수출 규모는 257억 달러(약 28조9000억 원)로 전체 수출의 63%(2016년 기준·경제 통계 사이트 OEC 자료)를 차지한다. 전체 수입 원유의 13%를 이란에서 들여오는 한국도 고민에 빠졌다. 특히 한국과 이란의 교역에서 이용되는 원화 결제 시스템이 중단되면 이란에 자동차, 냉장고 등을 수출하는 국내 기업이 입을 타격이 크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원유 수입량 상당 부분을 감축하되 원화 결제 시스템에 대한 예외적 지위 인정에 관해 협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국제유가도 비상이다. 6일 기준 글로벌 벤치마크인 브렌트유 선물은 배럴당 73.75달러로 전일 대비 0.7% 올랐고, 미국 서부텍사스산원유(WTI) 선물은 69.01달러로 0.8% 상승했다. 11월 2단계 제재가 적용되면 원유 공급이 줄어 국제유가가 급등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에너지애스펙츠의 수석 애널리스트 암리타 센은 CNBC 인터뷰에서 “(4분기가 되면) 가격이 80달러를 넘을 위험이 크며 심지어 90달러대까지 진입할 가능성도 있다”고 전했다.

시장 전문가들은 2단계 제재가 시행되면 내년 이란 경제가 마이너스 성장을 할 가능성도 있다고 점치고 있다. 그러나 이란 정부의 입장은 강경하다. 하산 로하니 이란 대통령은 6일 국영 TV와 인터뷰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대화 제안을 사실상 거절하며 “당신이 칼로 누군가를 찌르고 난 뒤 대화를 하고 싶다고 한다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칼부터 빼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 “미국은 이란 제재에 대해 후회하게 될 것”이라며 “우리는 단결하여 극복할 것이다”고 밝혔다.

구가인 comedy9@donga.com / 카이로=서동일 특파원 / 세종=김준일 기자
#이란 금융제재#트럼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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