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위 이기는 책과 영화… 그해 여름과 올해 ‘문화 콘텐츠’ 장르에도 미묘한 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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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년 8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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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 공포물, 현실 벗어난 이야기로 더위 식혀
2018 에세이, 장기간 불황에 심리적 안정 원해

한강으로 1994년 7월 25일자 동아일보에 게재된 사진. 연일 계속된 열대야에 지친 시민들이 더위를 피하고자 한강변 둔치로 나왔다. 동아일보DB
한강으로 1994년 7월 25일자 동아일보에 게재된 사진. 연일 계속된 열대야에 지친 시민들이 더위를 피하고자 한강변 둔치로 나왔다. 동아일보DB
1994년 대폭염과 2018년 슈퍼폭염의 피서법은 같을까 다를까. 언뜻 생각하면 크게 다르지 않을 것으로 여겨지지만 실제로는 사회 변화만큼이나 큰 차이가 있었다.

열대야가 계속된 1994년 7월 서울 한강 둔치 잠실선착장에는 저녁 무렵 시민 5000여 명이 가족 단위로 나와 강바람에 더위를 달랬다. 음료수와 과일을 챙겨온 사람이 적지 않았고 일부는 아예 김밥을 준비해와 저녁을 때웠다(동아일보 1994년 7월 14일자 참조). 2018년 여름에도 한강을 찾는 이들이 여전히 많지만 시간대는 바뀌었다. 한강 곳곳에 생긴 수영장에서 물놀이를 하는 사람들로 낮이면 인산인해를 이룬다. 반면 저녁에는 오히려 한산하다. 그 대신 저녁에는 에어컨이 빵빵한 커피전문점 PC방 북카페 등으로 몰리고 있다.

낮 더위를 피해 찾는 장소도 달라졌다. 1994년엔 종일 에어컨이 켜져 있는 은행, 증권사, 동사무소 등이 ‘피서족’으로 붐볐다. 당시에도 실내온도 20도 수준을 유지하는 매장을 찾아 백화점 등을 찾는 피서족이 적잖았다. 하지만 올해엔 아예 ‘몰캉스’(쇼핑몰+바캉스), ‘백캉스’(백화점+바캉스)라는 신조어가 나올 만큼 쇼핑몰과 백화점의 인기가 높다. 서울 송파구 잠실 롯데월드몰의 7월 방문객 수는 약 422만 명으로 전달 같은 기간보다 14% 증가했다. 이남곤 신세계 홍보팀 부장은 “스타필드 하남도 7월 들어 하루 평균 10만∼11만 명이 방문했다. 평균 주말 하루 방문객보다 10∼11% 늘어난 수준”이라고 전했다.

혹서를 몸으로 이겨내야 하는 산업 현장에도 적잖은 변화가 있다. 대표적인 곳이 건설공사 현장이다. 1994년까지만 해도 얼음주머니가 달린 조끼(이른바 ‘얼음조끼’)를 제공하거나 작업 현장에 제빙기를 설치해 작업자들에게 얼음을 나눠주는 수준에 머물렀다. 하지만 요즘에는 현장 곳곳에 휴게공간이 늘었고, 온도가 일정 수준을 넘어서면 아예 실외작업을 중단시키는 등 체계적인 더위 대책이 가동되고 있다. 조근호 삼성물산 커뮤니케이션팀 수석은 “전 현장이 외부 기온 35도 이상이면 공사 현장에서 45분 작업을 한 뒤 의무적으로 15분간 휴식하도록 하고 37도 이상이면 외부 작업을 중단하게 한다”고 말했다.

서점으로 ‘슈퍼폭염’이 몰아닥친 이번 주 초 시민들은 쇼핑몰 등을 찾아 피서를 즐겼다. 부산 해운대구 신세계몰의 반디앤루니스 서점에서 알뜰 피서족들이 몰려 책을 읽고 있다. 동아일보DB
서점으로 ‘슈퍼폭염’이 몰아닥친 이번 주 초 시민들은 쇼핑몰 등을 찾아 피서를 즐겼다. 부산 해운대구 신세계몰의 반디앤루니스 서점에서 알뜰 피서족들이 몰려 책을 읽고 있다. 동아일보DB
더위를 이겨내기 위한 수단으로 소비했던 문화 콘텐츠도 달라졌다. 1994년 여름엔 안방피서 상품으로 납량물의 인기가 높았다. 교보문고 등 대형 서점에선 애거사 크리스티, 엘러리 퀸 등 고전 추리물뿐 아니라 로빈 쿡의 ‘돌연변이’, 이우혁의 ‘퇴마록’ 등이 강세였다. 비디오 대여점에선 ‘엑소시스트’ ‘13일의 금요일’ ‘이블 데드’ 등 공포물이 인기를 끌었다. 하지만 최근 극장가에선 액션물, 애니메이션 등이 주목을 받는 반면 전통적인 호러물은 주춤한 편이다. 서점가의 종합 베스트셀러 역시 고단한 사회에 위로가 될 만한 에세이류가 강세이고 추리물은 찾아보기 어렵다. 김현정 교보문고 브랜드관리팀 베스트셀러담당은 “1994년 여름에 인기를 끌었던 호러물 등은 대개 비현실적인 내용이었다. 현실에서 벗어난 이야기를 통해 더위를 식히고 분위기를 전환하려는 독자들이 많았다는 얘기”라고 말했다. 이어 “최근에는 극심한 불경기가 수년간 이어지면서 독자들이 심리적인 안정을 찾을 수 있는 책을 더 선호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
#폭염#더위#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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