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년 전 폭염보다 더 뜨거운 올해 여름… 그때와 지금 비교해보니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8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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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클리 리포트]1994년 ‘가뭄과의 전쟁’… 2018년 ‘電力과의 싸움’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에 갇힌 느낌이다.”

폭염에 지친 시민들이 하는 말이다. 최악의 폭염이었다는 1994년을 기억하는 시민들도 “그때는 양반이었다”며 혀를 찬다. 일단은 올해 폭염이 더 치명적인 듯하다. 두 폭염 모두 무더운 북태평양고기압이 한반도를 뒤덮어 시작됐다. 24년의 격차를 두고 발생한 두 폭염을 비교해 본다.

○ 2018년 폭염엔 전력이 최대 화두

“1994년 고3 수험생이었는데, 세숫대야에 찬물을 받아 발을 담그고 야간자율학습을 했던 기억이 나요. 요즘 아이들 학원에는 에어컨이 쌩쌩 돌아가던데….”

40대 초반의 주부 조모 씨는 며칠 전 아이를 데리러 학원에 갔다가 문득 이런 생각을 했다. 조 씨는 “당시엔 에어컨을 설치한 가정이 많지 않아 전력 문제를 걱정하지 않았던 것 같다”고 말했다. 하지만 올해는 다르다. 폭염 관련 기록이 모두 다시 쓰이면서 ‘전력’이 폭염의 화두가 됐다.

1994년 당시에도 전력 문제는 심각했다. 7월 들어 전력 수요가 급증하면서 전력예비율이 한때 2.8%까지 떨어졌다. 서울에서도 툭하면 ‘블랙아웃’이 발생했다. 정부는 일부 공장에 대해 평일 휴무를 유도했다. 시민단체는 “에어컨 1대를 끄면 선풍기 30대의 전력을 얻을 수 있다”며 전력 소비 절감 운동을 벌였다. 다행히 7월 말로 접어들면서 전력사용량이 한풀 꺾였다. 전력 소비를 줄이면서 8월 이후로는 전력 위기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쑥 들어갔다.

24년이 지난 올해는 8월 이후 폭염이 더 심해지고 있다. 에어컨을 밤새 틀어놓는 집도 적지 않다. 어쩌면 이제부터 전력 위기를 걱정해야 할 상황인 셈. 이에 따라 당장은 1994년보다 전력예비율이 높지만 자칫 훨씬 심각한 상황의 블랙아웃이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런 상황은 정부가 자초한 측면이 있다. 정부가 지난달 5일 발표한 최대전력수요 전망치는 8830만 kW. 그 시기도 8월 둘째, 셋째 주로 예상했다. 하지만 최대전력은 지난달 23일 9070만 kW로 전망치를 넘었다. 24일엔 9248만 kW로 역대 최고 기록을 세웠다. 23∼27일 최대전력 전망치와 실제 수치 간에는 매일 118만∼260만 kW씩 오차를 보였다.

올해는 1994년과 달리 정부가 대대적인 에너지 절약 운동이나 수요 감축 정책을 펼치지 않는 것도 다른 점이다. 최근 폭염에도 전력예비율이 6%대로 낮아졌지만 1994년 2%대까지 떨어진 것에 비해서는 상대적으로 여유가 있는 것과 무관치 않다는 분석이 나온다. 하지만 정부가 최대전력수요 전망치를 다시 짜겠다고 발표하는 등 ‘블랙아웃’을 우려하는 여론이 사라지지 않고 있다.

○ 1994년엔 기우제도 지내

올해 이전까지 가장 더운 여름으로 기억됐던 1994년엔 폭염도 문제였지만 가뭄 피해가 더 심각했다. 논바닥이 쩍쩍 갈라졌다. 저수지는 메말랐다. 농작물 가격은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그해 7월 민속박물관에서는 기우제가 열렸다. 기우제에 앞서 열린 세미나에서는 “기우제는 삼국시대 이래로 내려온 전통”이라며 긍정적으로 해석하는 발표도 있었다. 20세기 막바지에 비를 내려 달라는 제사를 지낸다는 비판도 있었지만 대부분의 시민은 비가 내리기만 한다면 무슨 일이든 못하겠냐는 심정이었다.

정부 정책도 폭염보다는 가뭄 피해 극복에 초점을 맞췄다. 당시 정부는 민관 합동으로 범국민가뭄극복대책위원회를 발족했다. 97만 대의 양수기를 투입하고 370만 명을 투입하는 대책을 내놓았다. 동아일보를 비롯한 여러 언론은 성금 모금 운동도 전개했다.

가뭄이 장기화하면서 황당한 해프닝도 벌어졌다. 휴양지의 한 대형 콘도는 인근 하천에서 물을 퍼 올려 객실과 식당에 공급하다 적발됐다. 당시 콘도 측은 하천과 수영장의 물을 지하수와 교묘하게 섞어 쓰다 덜미를 잡혔다. 농촌에서는 물을 끌어올리기 위한 양수기 도난 사건이 빈발했다. 배추 가격이 올라 수지타산이 맞지 않아 일부 식당은 아예 김치찌개를 메뉴에서 빼버리기도 했다.

반면 올해는 가뭄 관련 피해가 당시와 비교했을 때 상대적으로 적다. 전국 저수지에 물도 넉넉한 편이다. 한국농어촌공사가 운영하는 농어촌 정보 포털 서비스인 ‘농어촌 알리미’에 따르면 이달 2일 현재 전국 저수지의 평균 저수율은 64.2%다. ‘심각’ 수준인 50% 미만보다 14.2%포인트 여유가 있다. 올해 장마 지속 일수(10.5일)가 1994년(7.7일)에 비해 길어 전국 평균 강수량이 상대적으로 많았던 덕분이다. 장마 기간 강수량은 올해가 283mm, 1994년은 130.4mm였다.

1994년에 비해 수자원 인프라가 대거 확충된 것도 도움이 됐다. 상대적으로 물 부족에 따른 피해가 적다고 하지만 전국적으로 폭염 속에 가뭄 피해가 늘어나면서 정부와 각 지방자치단체는 대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일부 지자체는 소방차를 동원해 물을 공급하는가 하면 제주특별자치도 소방안전본부는 지난달 27일부터 8월 2일까지 물탱크차를 동원한 후 농가에 물을 공급해 가뭄 피해를 최소화하고 있다.

○ 그때나 지금이나 남북문제는 오리무중?

폭염이 기승을 부리던 1994년 7월 8일, 김일성 북한 주석의 사망 소식이 전해졌다. 사망원인은 지병인 동맥경화증이 갑자기 악화하면서 발생한 급성심근경색으로 알려져 있다. 당시 “김 주석이 폭염 때문에 사망했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다. 소문의 진위는 확인되지 않았지만 의학적으로 근거가 전혀 없는 건 아니다. 폭염으로 체온이 상승하면 땀이 많이 흐르고, 수분이 빠져나가면서 혈액이 끈적거릴 수 있다. 이 경우 급성심근경색 발병 확률이 높아진다. 지난해 국내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자료에 따르면 6∼8월 급성심근경색 환자 비중은 전체의 27.6%에 이른다.

그해 7월 25일엔 김영삼 대통령과 김 주석의 남북 정상회담이 예정돼 있었다. 분단 후 첫 정상회담으로 기대감이 컸지만 김 주석의 사망으로 무산됐다. 공교롭게도 올해 문재인 대통령은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판문점에서 역사적인 남북 정상회담을 가졌다.

김상훈 corekim@donga.com·송진흡 기자
#폭염#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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