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전쟁-테러-자연재해… 그래도 세상은 살기 좋아졌다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8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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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요한 노르베리 지음·심혜경 옮김/312쪽·1만5000원·클

산업화로 인류는 부를 획득했지만 환경을 오염시켜 혹독한 대가를 치러야 했다. 1952년 영국 런던을 뒤덮은 스모그로 1만2000여 명이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세계적으로 환경을 보전해야 한다는 움직임이 일었다. 클 제공
산업화로 인류는 부를 획득했지만 환경을 오염시켜 혹독한 대가를 치러야 했다. 1952년 영국 런던을 뒤덮은 스모그로 1만2000여 명이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세계적으로 환경을 보전해야 한다는 움직임이 일었다. 클 제공
‘기록적인 폭염으로 사망자 속출.’

무심결에 들여다본 스마트폰 기사에 눈살이 찌푸려진다. 세계는 참 불안하다. 국제테러단체들이 세계 곳곳에서 수많은 목숨을 앗아간다. ‘아메리카 퍼스트’를 내세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중국과 무역전쟁을 벌인다. 전문가들은 안보와 경제의 위기를 거론하며 비관론을 쏟아낸다. 그들 말대로 세상은 정말 살기 어려워지고 있는 것일까?

스웨덴 다큐멘터리 감독이자 저술가인 저자는 단호하게 고개를 젓는다. 제목 그대로, 세상은 진보하고 있다 외친다. 한술 더 떠서, 동시대인은 인류의 진보가 세운 업적을 누리고 사는 ‘행운아’다. 물론 진보가 하늘에서 뚝 떨어졌단 얘기는 아니다. “삶을 개선하기 위해 투쟁했던 선조의 놀라운 성취 덕분”이다.

역사적 사실과 통계가 이 같은 낙관론을 지탱한다. 인구가 식량 생산능력보다 빠르게 성장할 거라던 경제학자 맬서스의 저주는 농업기술의 발달로 여지없이 깨졌다. 인류가 평균적으로 부유해지고 교육 수준이 높아지며 낮아진 출산율도 한몫했다. 1900년 31세였던 기대수명은 오늘날 71세로 껑충 뛰었다.

겨우 100여 년 전인 19세기 유럽 거리를 떠올려 보라. 말의 똥오줌으로 뒤덮여 위생을 논할 수준도 못 됐다. 900년부터 현재까지 유럽에선 매년 평균 두 건의 전쟁이 벌어졌다. 세계적으로 따져 봐도 500년 동안 매년 4건의 무력 충돌이 발생했다.

자유, 평등 등 눈에 보이지 않는 지표는 어떤가. 개신교와 계몽주의의 영향으로 도덕적 개인주의가 부상했고, 기대수명이 높아지자 생명의 존엄성에 대한 인식 수준도 높아졌다. 가축에 매달아 사지를 찢거나 화형을 하는 나라는 더 이상 없을뿐더러, 사형제는 점점 폐지되는 추세다. 참정권 운동, 민주주의 확산으로 여성과 성소수자의 권리도 신장하고 있다.

하지만 수치의 함정은 인류의 진보를 살피는 데 큰 방해요소가 되기도 한다. “극빈자 수는 1820년 10억 명가량이었는데 오늘날은 7억 명이다. 이것이 진보가 아닌 것처럼 들린다면…. 빈곤 속에서 살아야 할 위험이 94%에서 11% 이하로 줄어든 셈이다.”

그런데도 왜 우리는 불안할까? 답은 간단하다. 매일 끔찍하고 우울한 뉴스, 긍정보다 부정적인 것에 민감한 인간의 심리 때문이다. 저자는 “‘만사가 잘 굴러간다’는 제목의 기사는 찾아볼 수 없다”고 지적했다. 사람들은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의 최근 전쟁들은 염두에 두면서도, 스리랑카와 앙골라, 차드 등에서 분쟁이 끝난다는 건 금방 잊어버린다.

‘진보’는 도발적이고 흥미롭지만 상당히 단편적이다. 좀 세게 말하자면, ‘꼰대’스럽다. 소득 격차나 청년 실업, 세대 갈등 등 현시대의 사회 문제를 냉철하게 바라보질 않는다. 다소 공허한 당위론에 그치는 느낌이다. 뭣보다 상대적 불평등이 지닌 심각성을 적절히 짚지 못했다. 물론 요즘 하루에 밥 한 끼 못 먹을까 봐 걱정하는 이들은 확실히 줄었다. 하지만 다 같이 못 먹는 것보다 남만큼 못 먹는 게 더 불행하지 않은가. 왠지 “힘들다”는 청년의 한숨에 “예전에 비하면 행복한 줄 알라”고 일침을 가하는 기성세대가 떠오른다.

그렇더라도 이 책은 참 신선하다. 인류의 진보를 최대한 객관적인 시각에서 바라볼 수 있다는 점에서 가치가 적지 않다. “옛날이 좋았다”며 과거로 회귀하려는 이 시대의 스트롱맨들, 여전히 권위주의적인 정치인과 독재자, 테러리스트 등에겐 따끔한 경고가 될 만한 책이다. 어쨌거나 세상은 계속 앞으로 나아가야 하지 않나. 책 제목만 보고, 보수와 진보나 떠올리는 이들에게도 한마디. 당신은 인류의 진보에 지금 도움이 되고 있는가.

신규진 기자 newjin@donga.com
#진보#요한 노르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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