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혜영 “인간의 자기모순서 비롯되는 일상 속 아이러니에 끌려요”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8월 3일 03시 00분


코멘트

장편소설 ‘홀’로 미국의 셜리 잭슨상 받은 편혜영 작가

편혜영 소설가는 주인공 ‘오기’가 눈물을 흘리는 의미심장한 마지막 장면에 대해 “지난 시절 저지른 잘못이나 선택에 대한 후회, 어쩔 수 없이 멀어진 시간들 같은 게 오기의 머릿속에 혼란스럽게 떠올랐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편혜영 작가 제공
편혜영 소설가는 주인공 ‘오기’가 눈물을 흘리는 의미심장한 마지막 장면에 대해 “지난 시절 저지른 잘못이나 선택에 대한 후회, 어쩔 수 없이 멀어진 시간들 같은 게 오기의 머릿속에 혼란스럽게 떠올랐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편혜영 작가 제공

“미국은 장르소설의 전통이 강하고 번역 소설에 배타적이라는 평판이 있는데, 제 작품이 기꺼이 받아들여져 몹시 기뻤어요.”

지난달 15일 장편소설 ‘홀(Hole)’로 미국의 셜리 잭슨상을 받은 편혜영 소설가(46)는 수상 소감을 이렇게 답했다. 미스터리 작가 셜리 잭슨(1916∼1965)을 기리기 위해 제정된 이 문학상은 추리, 스릴러 등 장르 문학을 대상으로 한다. 편 작가는 “뚜렷하게 자기 세계를 일군 여성 작가인 셜리 잭슨을 좋아하기 때문에 이 작가의 이름을 딴 상을 받게 돼 개인적으로 더 의미 있다”고 했다.

‘홀’은 사고로 아내를 잃고 식물인간이 된 남자 주인공 ‘오기’와 그를 돌보는 장모의 이야기다. 딸을 잃은 슬픔과 박탈감을 느끼는 장모와 전신마비 상태로 무력하게 누워 있을 수밖에 없는 사위의 대비가 흥미롭다.

“‘홀’은 특정한 국가의 문화나 사회에 대한 이해가 없어도 몰입이 가능한 서사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해외 독자들에게도 낯설지 않게 받아들여진 듯하고요.”

‘홀’에서는 가족이지만 피를 나누지 않은 두 사람을 이어주는 죽은 딸의 생전 이야기가 중간중간 교차돼 나온다.

“인생은 알 수 없는 비밀과 균열, 공백으로 가득 차 있다고 생각해요. ‘홀’은 한 남자가 사고를 당해 사회에서 누락됨으로써 인간의 모순과 관계의 비밀, 여백 같은 것을 대면하게 하죠.”

그는 식물인간이 된 채 자기 삶의 균열을 지켜봐야 하는 주인공의 이야기를 담은 단편 ‘식물애호’를 쓴 후 장편 ‘홀’을 떠올렸다고 한다. 그는 “사고를 당하기 이전에 주인공은 어떤 사람이었을까, 아내와는 어떻게 지냈을까, 사위를 돌보는 장모는 또 어떤 사람일까 하는 질문이 ‘홀’을 쓰게 된 계기”라고 했다. 인력(引力)이 강한 인물은 결국 작가를 소설로 끌어들이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인간의 자기모순에서 비롯되는 아이러니에 끌려요. 일상에서 이런 아이러니를 깨달으면 곧 소설을 쓰고 싶어지거든요. 시스템, 조직 문화에서 느끼는 부조리나 획일성의 문제도 흥미롭고요. 자동기계처럼 반복되는 삶 속에 놓인 인간에 대해서요.”

‘홀’은 미국, 독일, 폴란드에 이어 일본, 인도네시아, 베트남에서도 출간될 예정이다. 그는 “내년에 단편집을 출간하기 위해 그간 발표한 소설들을 읽고 추려내 고치고 있다”며 “책을 출간한 뒤에는 시간을 갖고 긴 호흡의 이야기를 구상하고 싶다”고 말했다.
 
조윤경 기자 yunique@donga.com
#장편소설 홀#셜리 잭슨상#편혜영 소설가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