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전 영웅’ 잊지않는 美… ‘에어포스 투’로 전사자 자녀 모셔와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8월 3일 03시 00분


코멘트

[미군 유해 봉환식]65년만의 귀환, 국가정상급 예우

“어떤 이들은 한국전쟁을 ‘잊혀진 전쟁’이라고 부르지만 오늘 우리는 이 영웅들이 절대 잊혀지지 않았음을 증명했습니다. 오늘 우리의 아이들(boys)이 집에 돌아왔습니다.”

1일(현지 시간) 오후 미국 하와이 히컴 공군기지에서 열린 6·25전쟁 참전 미군 전사자 유해 봉환식에서 마이크 펜스 미 부통령은 이렇게 선언했다. 6·25전쟁에서 목숨을 잃은 뒤 정전 65년 만에 돌아온 55구의 유해를 영웅이라고 부르며 “전사한 영웅들 모두가 집으로 돌아올 때까지 우리의 일은 끝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일부의 귀환에 만족하지 않고 아직 돌아오지 못한 나머지 6·25전쟁 전사자들도 데려오겠다고 유가족들 앞에서 약속한 것이다.

이날 봉환식은 ‘군인은 국가와 국민을 위해 목숨을 바치고, 국가와 국민은 군인의 명예를 책임지고 지켜준다’는 미국의 가치와 정신을 제대로 보여줬다. 조국을 위해 기꺼이 목숨을 바친 뒤 너무도 늦게 돌아온 용사들을 미 정부는 최고의 예우로 맞이했다. 미국 언론들은 “전사자들이 국가정상급 예우를 받았다”고 평가했다.

○ 영웅들의 귀환

북한으로부터 넘겨받은 미군 추정 유해 55구를 싣고 1일 오후 경기 평택시 오산 미 공군기지를 떠난 C-17 수송기 2대는 1일 오후 하와이 히컴 공군기지 활주로에 내려앉았다. 관을 뒤덮고 있던 푸른색 유엔 깃발은 미국 도착에 앞서 붉은빛 성조기로 바뀌어 있었다.

장중한 군악대 연주가 울려 퍼지는 가운데 유해들은 한 번에 2구씩 수송기 뒤쪽으로 내려져 봉환식이 열리는 격납고 안으로 이동했다. 육해공군과 해병대 소속 군인 4명이 각기 다른 정복을 입고 4인 1조로 관을 조심스럽게 옮겼다. 6·25전쟁 참전용사 아버지를 둔 펜스 부통령은 유해가 담긴 관이 옮겨지는 내내 가슴에 손을 얹은 채 부동자세로 서 있었고 그 옆에 선 필 데이비슨 미 인도태평양사령부 사령관은 거수경례를 유지했다. 행사장에 먼저 도착해 있던 사람들도 관이 지날 때마다 자리에서 일어나 가슴에 손을 얹거나 거수경례로 영웅들에게 예를 표했다. 찬송가 ‘어메이징 그레이스’가 식장에 울려 퍼졌다.

송환된 유해의 정확한 신원을 확인하는 작업은 하와이에 위치한 미 국방부 전쟁포로 및 실종자 확인국(DPAA)이 맡는다. 평생을 기다려온 유가족들은 신속하게 결과가 나오기를 희망하지만 신원 확인 작업에는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 로이터통신은 최종 결과가 나오기까지 짧게는 3일에서 길게는 20년이 걸릴 수 있다고 전했다. 유전자와 치아 검사, 흉부 X선 대조 작업 등을 거쳐 미군 전사자로 밝혀지면 국립묘지에 안장된다. 펜스 부통령은 이날 연설에서 “오늘 이들이 누구인지는 신만이 알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곧 그들의 이름을 알게 될 것이며, 그들의 용기에 대한 이야기를 하게 될 것”이라고 말한 것도 복잡한 신원 확인 과정을 염두에 둔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존 비드 DPAA 과학분석국장은 “예비조사 결과 북한에서 송환된 유해들은 과거 발굴된 미군 병사들의 것과 대부분 일치한다”며 “한국전쟁 전사자와 관련돼 있다는 것을 의심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미국이 아직 유해를 찾지 못한 6·25전쟁 전사자는 7699명이다. 이 중 5300명은 북한 지역에, 약 1000명은 비무장지대(DMZ)에 묻혀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전체 6·25전쟁 전사자의 9%는 유가족의 유전자(DNA) 정보가 없다. 10명 중 한 명은 신원을 밝힐 수 없는 것이다.

○ “김정은 감사하다. 곧 보게 되기를”

이날 유해 송환 행사는 북한과의 협상에서 가시적 성과가 있음을 보여줘야 하는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관심 속에 그 어느 때보다 성대하게 치러졌다. 앞서 1990년부터 2007년까지 443구의 유해가 미국에 도착했지만 부통령급 인사가 봉환식에 참석한 것은 처음이다. 미군 유해 송환은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6·12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에서 합의한 사항 중 하나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번 봉환식에 매우 고무된 반응을 보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2일 오전 트윗을 통해 김 위원장에게 감사의 뜻을 전하고 “곧 만나길 기대한다”고 적었다. 이어 “이같이 친절한 조치를 한 것에 대해 나는 전혀 놀라지 않았다”며 “당신의 ‘좋은 서한’에 감사한다”고 밝혔다. 이 서한이 유해들과 함께 전달된 것인지는 설명하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전날 트윗에서도 하와이 유해 봉환식에 대해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운 행사였다. 호놀룰루와 모든 군 관계자들에게 감사드린다”고 호평했다. 유해 송환을 계기로 김정은 친서 전달과 2차 북-미 정상회담 가능성이 거론되면서 교착상태에 빠진 북-미 비핵화 협상이 새롭게 진척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 워싱턴=박정훈 특파원
#국가정상급 예우#참전 영웅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