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전성철]윤석헌 금감원장의 변심, 밥보다 중한 신념은 없다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7월 3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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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성철 정치부 차장
전성철 정치부 차장
윤석헌 금융감독원장이 국회 정무위 업무보고에서 인터넷전문은행에 한해 ‘은산분리’(산업자본의 은행 지분 보유 제한) 규제를 완화하는 데 반대하지 않는다고 밝힌 25일, 한 은행권 관계자는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냐?”며 고개를 갸웃했다. 은산분리 규제 완화에 대해 윤 원장마저 태도를 바꿀 줄은 몰랐다는 이야기였다. 학자 출신인 윤 원장은 은산분리 규제 완화를 가장 강력하게 반대해온 인물이다. 은산분리 규제를 완화하면 인터넷전문은행이 대기업의 사금고로 전락할 수 있고, 고객 예금으로 대기업을 지원하는 등 경제력 편중이 심화될 거라는 이유에서였다. 그는 지난해 말 금융행정혁신위원장일 때도 “은산분리 완화가 한국 금융 발전의 필요조건은 아니다”라며 인터넷전문은행 규제 완화 반대 의견을 낸 바 있다.

아마 윤 원장의 태도 변화에는 자신을 임명해준 청와대의 기류 변화가 큰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청와대는 지난달 27일 제2차 규제혁신점검회의를 회의 당일 전격적으로 취소했다. 인터넷전문은행 규제가 주요 안건이었던 회의가 취소된 이유는 “준비가 미흡하다”는 것이었다. 이후 청와대가 은산분리 완화를 규제개혁의 출발점으로 삼을 것이라는 이야기는 정치권과 금융계에서 꾸준히 흘러나왔다.

하지만 그것만이 윤 원장이 마음을 바꾼 이유는 아닐 것이다. 윤 원장은 국회 답변에서 “현 시점에서 은산분리 완화를 통한 인터넷전문은행 활성화가 국가의 중요한 과제라 인식하고 있다”고 말했다. “개인적 생각을 이야기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며 말을 아꼈지만, 윤 원장의 발언은 금융감독당국의 수장이 돼보니 학자 때와는 세상이 많이 달라 보이더라는 이야기로 들렸다.

인터넷전문은행을 도입한 주요 목표 중 하나는 중금리 대출 활성화다. 젊은 창업자 대부분은 금융거래 기록이 거의 없는 ‘신 파일러(Thin Filer)’다. 따라서 거래 실적과 연체 전력을 기준으로 신용등급을 매기는 시중은행에서는 대출을 받기가 어렵다. 정보통신기술(ICT) 기업이 대주주인 인터넷전문은행은 빅데이터를 활용한 새로운 신용평가 모델을 만들어 그런 이들에게 도움을 줄 거라는 기대를 받았다.

국내 최초로 인터넷전문은행 영업을 시작한 케이뱅크는 실제로 전체 대출금의 40%가량을 신용등급 4등급(자체 기준) 이하 소상공인 등에게 내줬다. 그러나 최근 3500억 원인 자본금을 5000억 원으로 늘리는 증자에 실패해 마이너스 통장 등 주력 대출 상품 판매를 이달 말까지 중단한 상태다. 케이뱅크의 주요 주주인 KT는 투자 의지도 있고 자금력도 충분하다. 하지만 산업자본은 은행 지분을 최대 10%(의결권 있는 지분은 4%)까지만 가질 수 있도록 한 은산분리에 가로막힌 것이다.

이런 상황을 놔둔 채로는 포용적 성장은 허황된 꿈일 뿐이다. 훌륭한 아이디어와 기술이 있어도 돈이 없어서 창업을 못 해서는 일자리 창출도, 성장과실 공유도 모두 불가능한 얘기다. 은산분리 규제를 풀어준다고 케이뱅크가 당장 KT의 사금고가 되진 않는다. 그런 문제는 윤 원장이 국회에서 밝힌 대로 “잘 감독하는 쪽으로 역량을 집중하고 필요한 조치를 준비”하면 될 일이다.

‘은산분리 완화는 대선 공약 파기’라는 시민단체 방식 사고 틀로는 아무 일도 할 수 없다. 원래 직업이 무엇이었든 국정을 책임지는 자리에 올랐다면 국민 살림살이를 최우선시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본인의 신념이 틀렸다면 언제라도 수정할 수 있는 용기, 그런 태도가 실사구시(實事求是)가 아닐까 한다.
 
전성철 정치부 차장 dawn@donga.com
#윤석헌 금감원장#금융감독원#인터넷전문은행#은산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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