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호섭의 패션 談談]<5>Less의 시대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7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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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호섭 패션디자이너·홍익대 미술대 교수
간호섭 패션디자이너·홍익대 미술대 교수
‘Less(리스)’는 문법적으로 어떻게 쓰이느냐에 따라 ‘무엇이 적은…’ 또는 ‘…이 없는’의 의미를 갖습니다.

단순히 다이어트를 생각하시면 오산입니다. 칼로리가 적은 저지방식도 떠올리지 마십시오. 요즘 시대에 뭐가 적다고 하면 다들 체중이나 지방을 일순위로 꼽으니 많은 사람의 관심사가 ‘아름다워지기’에 있다고 할 수 있겠지요.

‘아름다워지기’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늘 화제였습니다. 때로는 동서양 문화의 교류를 통해 새로운 유행을 만들어내면서 아름다움을 발전시켰고, 때로는 구세대와 신세대 간에 아름다움을 전수했으며 때로는 남녀 간 성적 매력을 발산해 아름다움을 추구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이러한 공식이 점점 설득력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동서양의 구분도 국경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Borderless’의 시대라고 할 수 있죠. 과거 실크로드를 통해 몇 달, 몇 년의 시간 동안 점진적인 문화 교류가 이루어졌다면 이제는 전 세계 어느 곳도 하루 만에 갈 수 있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매스미디어를 통해 받아들이던 획일화된 문화도 이제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거쳐 더 다양하고 더 광범위하게 발전했습니다. 패션 브랜드들은 더욱 거대해졌고 더욱 빨리 유행을 전파시키게 되었죠. 유니클로 같은 제조유통일괄형(SPA) 브랜드의 탄생은 당연한 결과라고 말할 수 있죠.

이젠 더 이상 나이의 구분도 존재하지 않는 ‘Ageless’의 시대이기도 하죠. 어떤 삶을 사는가에 따라 나이가 결정된다고 할 수 있죠. 나이를 가늠하기 어려운 외모를 유지하기 위해 먹고 마시고 바르고 입는 모든 것에 돈을 아끼지 않습니다. 화장품산업의 호황도 당연한 결과이지만 패션산업에 있어 스타일이 점점 더 캐주얼해지고 있는 것 또한 이 시대의 요구라 할 수 있습니다.

남녀의 구분도 사라지고 있습니다. ‘Genderless’의 시대죠. 가장 큰 변화는 색의 다양성입니다. 남자는 파랑, 여자는 빨강이라는 이분법은 화장실 표지판에만 남아 있을 것 같습니다. 검정이 더 이상 장례식장에서만 보는 죽음의 색이 아니라 시크하고 매력적인 색이 되었고, 정장이 아닌 캐주얼 의상에서는 더욱 화려하고 다양한 색이 대세입니다. 재킷이 더 이상 남성만의 전유물도 아니고 눈에 띄게 패셔너블해진 스니커즈 또한 남녀가 즐겨 착용하는 아이템으로 등극했습니다.

위의 세 가지 ‘less’의 특징을 모두 함축한 패션 아이템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청바지입니다. ‘인디고 블루’라는 동양의 염료가 서양에서 발명된 청바지를 물들였습니다. 나이가 들었다고 청바지를 홀대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남녀의 차별도 없습니다. 오히려 노동자 계층의 작업복이 지금은 럭셔리 브랜드에서 가장 심혈을 기울이며 디자인하고 가장 많은 매출을 기대하는 아이템이 되었으니 이 또한 상위문화와 하위문화의 구분이 없어진 또 다른 ‘Less의 시대’를 연 셈이 됐죠.

앞으로 더 많은 구분이 없어지는 시대가 오리라 생각됩니다. 하지만 걱정은 덜어내십시오. 더 많은 ‘아름다움’을 얻는 ‘More의 시대’이기도 하니까요.
 
간호섭 패션디자이너·홍익대 미술대 교수
#less#청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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