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견은 날려버려” 링에 오른 두 챔프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7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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前페더급 챔피언 석봉준씨, 다문화자녀 권투교실 재능기부
‘난민복서’ 이흑산 챔피언과 경기

8일 경기 과천시 대한권투체육관에서 전 페더급 챔피언 석봉준 씨(오른쪽)가 현 슈퍼웰터급 챔피언인 ‘난민 복서’ 이흑산 씨와 함께 학생들에게 권투 동작을 설명하고 있다. 과천=김경제 기자 kjk5873@donga.com
8일 경기 과천시 대한권투체육관에서 전 페더급 챔피언 석봉준 씨(오른쪽)가 현 슈퍼웰터급 챔피언인 ‘난민 복서’ 이흑산 씨와 함께 학생들에게 권투 동작을 설명하고 있다. 과천=김경제 기자 kjk5873@donga.com

8일 오후 3시 반 경기 과천시 대한권투체육관. 링 주위에서 “와” 하는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링 위에선 선수 두 명이 상대의 얼굴을 향해 연신 주먹을 날렸다. 검은 피부에 레게머리를 한 카메룬 출신 ‘난민복서’ 이흑산(본명 압둘레이 아싼·35) 씨와 서울출입국·외국인청에서 근무 중인 석봉준 씨(33)다. 이 씨는 현 슈퍼웰터급 챔피언, 석 씨는 전 페더급 챔피언이다.

이날은 석 씨의 ‘권투교실’ 수업 첫날이다. 그는 서울출입국·외국인청의 도움을 받아 다문화가정 자녀와 한국인 학생이 함께하는 재능기부 프로그램을 마련했다. 학생의 절반가량은 방글라데시와 필리핀 중국 등 다문화가정 자녀다. 여름방학을 맞아 매주 일요일 2시간씩 두 달 동안 진행된다. 첫 번째 수업인 이날은 학생들이 권투에 관심을 갖게 하도록 난민복서로 잘 알려진 이 씨를 초청해 경기를 벌였다. 석 씨는 “운동을 통해 아이들이 함께 어울릴 수 있는 편견 없는 사회를 만들고 싶어 권투교실을 열었다”고 밝혔다.

3분씩 3라운드로 진행된 시범경기의 승부는 학생들의 박수소리로 결정됐다. 큰 박수를 받으며 두 선수 모두 승리로 마무리됐다. 가장 인기 있는 시간은 이 씨와의 ‘포토타임’. 이 씨는 학생들과 밝은 모습으로 기념사진을 찍었다. 이 씨는 2015년 8월 경북 문경시에서 열린 세계군인체육대회에 카메룬 국가대표 자격으로 참가한 뒤 망명을 신청했다. 카메룬 독재정부의 억압을 피해 한국에 온 그는 지난해 7월 난민 지위를 얻었다.

이 씨는 29일 아시아 웰터급 챔피언 타이틀 도전을 앞두고 있다. 강원 춘천시에서 훈련 중인 그는 이날 왕복 6시간 넘게 이동해 체육관을 찾았다. 바쁜 훈련 일정에도 석 씨의 시범경기 요청을 흔쾌히 수락한 이유는 이번 행사의 취지에 공감했기 때문이다. 이 씨는 “비슷한 처지에 있는 다문화가정 아이들에게 희망을 주고 싶어 기쁜 마음으로 참석을 결정했다”고 소감을 밝혔다.

경기가 끝난 뒤에는 권투수업이 이어졌다. 석 씨의 뜻에 공감한 3명의 선생님도 함께 학생들을 지도했다. 원투 펀치 등 기본동작 하나하나를 꼼꼼히 알려줬다. 20분이 채 되지 않아 학생들은 땀범벅이 됐다. 방글라데시 다문화가정 출신 최지산 군(16)은 “피부 색깔이 달라 어렸을 때 놀림을 받을 때도 운동을 하며 편견을 극복했다. 이번에도 권투를 함께하며 쉽게 친해질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첫 수업을 지켜본 다문화가정 부모의 반응도 긍정적이었다. 필리핀에서 온 결혼이주여성 넬마 엘바레도 씨는 “이주노동자센터에서 좋은 기회가 있다고 알려줘 아들을 데리고 왔다. 아이들이 땀 흘리며 같이 어울릴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 줘 감사하다”고 말했다.
 
과천=구특교 기자 kootg@donga.com
#이흑산#석봉준#권투교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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