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로 떴다가… 경제로 떨다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6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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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 대선 D-2… 고성장 독재 에르도안, 경기악화에 ‘21세기 술탄’ 꿈 흔들

‘황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차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파라오’ 압둘팟타흐 시시 이집트 대통령에 이어 또 한 명의 ‘절대 권력’ 국가 지도자가 탄생할까. 15년간 터키 권력의 정점에 서 있던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이 24일 치러지는 조기 대선에서 재선에 성공하면 2028년까지 권좌를 지킬 수도 있는 장기 집권의 발판을 마련한다.

터키 최대 도시 이스탄불 시장을 지낸 에르도안은 2003년 총리로 취임했다. 그는 2010년 헌법을 개정해 대통령 직선제를 도입했다. 2014년 8월 터키 역사상 처음으로 치러진 직선 대선에 출마해 당선됐고 이후 터키 권력 구조는 의원내각제에서 대통령중심제로 빠르게 전환하기 시작했다.

대통령이 된 에르도안은 ‘21세기 술탄’이 되려는 야망을 숨기지 않았다. 그는 의원내각제를 5년 중임 대통령제로 바꾸고, 대통령 권한을 대폭 강화하는 내용으로 개헌을 추진했다. 새 헌법은 이번 대선부터 적용돼 에르도안이 당선되면 최장 10년간 더 집권할 수도 있다. 개헌안은 작년 4월 국민투표를 통해 가결됐다.

사실상 에르도안의 독재를 공고화하는 ‘술탄 개헌’이 통과될 수 있었던 건 그가 그동안 이뤄낸 경제성과 덕분이다. 2001년 ―5.7%였던 터키의 경제성장률은 그가 총리로 있던 시절인 2011년 11.1%까지 상승했다. 3500달러(약 388만5000원) 수준에 불과했던 1인당 국민소득도 1만 달러까지 끌어올렸다. 이슬람 원리주의 정책을 추진한 에르도안은 세속주의 정권에서 소외됐던 무슬림 서민층의 열렬한 지지를 받았다.

에르도안은 올 1월 시리아 국경의 쿠르드 세력을 몰아내기 위해 아프린 군사작전(일명 올리브가지 작전)을 시작했다. 터키군이 3월 아프린을 점령하자 에르도안의 지지율은 급등했다. 그러자 에르도안은 내년 11월로 예정돼 있던 대선을 올 6월로 앞당겼다. 최근 터키에 불어닥친 경제 위기가 더 악화되기 전에 정치적 승부수를 던진 것이다.

그러나 터키의 경제난은 갈수록 악화돼 에르도안의 재선을 위협하는 가장 큰 걸림돌이 됐다. 터키 리라화는 올 들어서만 달러 대비 가치가 20% 이상 떨어졌다. 최근 미국이 기준금리를 인상하면서 신흥국 터키에서 외국자본이 급격히 빠져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에르도안은 대선을 앞두고 유권자들의 가계 대출 부담이 커지면 선거에 불리하게 작용할 것을 의식해 금리 인상을 자제해 왔다. 하지만 지난달 리라화 가치가 연일 역대 최저치를 경신하자 결국 터키 중앙은행은 기준금리를 수차례 인상하며 환율 방어에 나섰다. 현재 터키의 이자율(17.5%)은 주요 20개국(G20) 중 가장 높다.

최근 여론조사에서 에르도안의 지지율은 50% 아래로 확연히 떨어지는 추세다. 독일 공영방송 도이체벨레는 “실제 선거에서는 (에르도안 지지율이) 여론조사 결과보다 더 낮을 것”이라며 억압적 분위기의 국가비상사태에서 지지율이 과대평가됐을 수 있다고 분석했다. 반면 터키 제1야당 공화인민당(CHP) 후보 무하렘 인제와 좋은당(iYi Parti) 후보 메랄 악셰네르의 지지율 합계는 40%를 넘어섰다. 터키 대선은 1차 투표에서 과반 득표자가 나오지 않으면 득표율 1, 2위가 결선 투표를 치른다. 이번 선거에서 연대를 결성한 야권은 결선에 오르는 후보에게 힘을 실어줘 에르도안의 장기 집권을 저지하기로 했다.

카이로=박민우 특파원 minwoo@donga.com
#고성장 독재#에르도안#경기악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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