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어 음반으로 어떻게? 왜 하필 방탄소년단이었을까?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5월 28일 17시 3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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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빅히트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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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탄소년단의 빌보드 신화는 어떻게 가능했을까.

미국 현지를 대상으로 하는 빌보드 앨범차트에서 방탄소년단은 외국어 앨범으로는 12년 만에 정상을 밟았다. 2006년 다국적 팝페라그룹 ‘일 디보’가 1위에 올려놓은 앨범 ‘Ancora’는 스페인어, 이탈리아어, 프랑스어, 영어 가사가 섞인 음반이었다. 방탄소년단은 한국어를 주로 사용했다는 점에서 일 디보의 사례보다 차별화된다.

소셜미디어와 아이돌 팬덤이 이룬 신화

이번 방탄소년단의 1위는 밀레니얼 세대의 팬덤 문화와 소셜미디어 파워가 주류 사회를 어디까지 흔들 수 있는가를 가장 극적으로 보여준, 역사적인 사건이다. 전문가들도 1위 등극의 요인을 “헌신적 팬덤의 집중된 화력”에서 찾는다.

여기서 화력이란 팬들이 온·오프라인에서 벌이는 상업적·비상업적 활동을 포괄한다. 방탄소년단은 세계적인 파워 트위터리안이다. 세계에 1500만 명의 팔로어를 거느렸다. 팔로어들은 방탄소년단이 게시물을 올릴 때마다 실시간으로 공유해 홍보한다. 이를테면 제이홉이 26일 올린 ‘오늘도 감사합니당’ 게시물만 해도 36만4000회 리트윗 됨으로써 세계로 퍼져나갔다.

이러다보니 해외 미디어와 가수들도 ‘BTS가 도대체 뭐기에’란 물음표를 품게 됐다. 방탄소년단의 트위터 계정(@BTS_twt)만 자기 게시물에 언급해도 홈페이지와 SNS 팔로어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는 것을 깨닫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지난해부터 각종 출연과 협업 제안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팬들은 신작 음반이 나오면 집중적으로 스트리밍과 다운로드를 하고 음반을 몇 장씩 구매해 순위에 영향을 미친다. 이대화 대중음악평론가는 “대단한 성과임에 분명하지만 몇 년 사이 빌보드 앨범차트의 무게감이 떨어지면서 트렌드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점도 있다”며 “스트리밍이 커지면서 CD 판매량이 대폭 줄어 CD를 집중적으로 구매하는 열성 팬덤을 지닌 가수가 유리해졌다”고 말했다. 이 평론가는 지난해 미국 가수 핑크가 콘서트 입장권과 앨범을 묶어 파는 방식으로 앨범차트 2위에 오른 것을 예로 들었다. 그는 “방탄소년단의 신작 타이틀곡 ‘FAKE LOVE’는 정작 스트리밍 순위 63위(28일 오후 스포티파이 기준)에 그치고 있다”며 “대중의 트렌드를 더 잘 보여주는 싱글차트 추이는 좀더 신중하게 지켜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1990년대만 해도 50만 장, 100만 장까지 달했던 정상 등극 가능 판매량은 2010년대 들어 10여만 장으로 줄었다.

미국 현지의 아이돌 가수 기근 현상도 파란의 원인으로 지목된다. 김영대 음악평론가는 “저스틴 비버, 원 디렉션 등 서구권 아이돌의 인기가 줄어든 공백을 방탄소년단이 차지했다”고 분석했다.
빌보드 뮤직 어워즈서 돌아온 BTS 서울 중구 롯데호텔에서 24일 기자회견을 연 그룹 방탄소년단. 왼쪽부터 뷔, 슈가, 진, 정국, RM, 지민, 제이홉.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빌보드 뮤직 어워즈서 돌아온 BTS 서울 중구 롯데호텔에서 24일 기자회견을 연 그룹 방탄소년단. 왼쪽부터 뷔, 슈가, 진, 정국, RM, 지민, 제이홉.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4차 산업혁명, 직접 민주주의 시대 단면 보여준 ‘대분출’

그렇다면 그 공백을 메운 게 왜 방탄소년단이었을까. 또래인 밀레니얼 세대와의 실시간 소통 능력이 첫째로 꼽힌다. 방탄소년단은 다른 아이돌과 달리 한국 TV 예능 프로그램에서 잘 안 보인다. 대신 트위터와 유튜브로 자신들만의 ‘일상 예능’을 중계한다. 칼 같은 군무, 세련된 악곡에 끌린 해외 케이팝 팬들은 온라인에서 친근하게 잘 놀아주기까지 하는 방탄소년단에게 모여들었다. ‘K팝 딕셔너리’의 저자 강우성 씨는 “이번 1위는 방탄만의 성과가 아니다”며 “해외에 쌓여온 케이팝 전반에 대한 인기와 관심이 방탄소년단에 집약돼 마침내 폭발해 주류까지 뻗어 나온 것”이라고 진단했다.

방탄소년단의 팬덤인 ‘아미’는 여타 아이돌 그룹 팬을 능가하는 충성도와 열정으로도 유명하다. 김영대 평론가는 가사에도 주목했다. “1990년대 서태지와 아이들이 나왔을 때 어른들은 갸우뚱했지만 10, 20대가 열광한 것은 음악과 춤뿐 아니라 메시지에 공감했기 때문이다. 청춘의 고민을 연작 형태로 가사에 현실감 있게 녹여내 팬들이 자신들과 방탄소년단을 동일시하게 만들었다”고 했다. ‘난 육포가 좋으니까 6포 세대/언론과 어른들은 의지가 없다며 우릴 싹 주식처럼 매도해’(‘쩔어’), ‘널 가두는 유리천장 따윈 부숴’(‘Not Today’), ‘꿈이 없어도 괜찮아, 멈춰 서도 괜찮아’(‘낙원’) 등은 젊은 세대의 고민을 직설적으로 짚어냈다. 인터넷 번역기의 발전은 외국 팬에도 언어 장벽을 없애줬다.

방탄소년단의 팬덤 문화에는 시대적 격변이 투영됐다. 이병관 광운대 산업심리학과 교수는 “팬덤 문화가 적극적 소비 형태로 표출되는 쪽으로 변화하고 있다”고 했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참여형 소비자 활동이 세계적 추세가 됐다는 것을 보여준다”며 “경제적으로는 소비자 맞춤형 생산을 강조하는 4차 산업혁명, 정치적으로는 직접 민주주의에 대한 요구 증대와도 연결된다”고 말했다.

임희윤 기자 imi@donga.com
이지운 기자 eas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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