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전문가들이 대입 4, 5개 모형중 선택… 시민참여단에 맡긴 ‘2022 대입 개편안’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5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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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학년도 대입제도 개편 논의의 성패는 시민참여단 400명이 복잡한 이해관계로 얽힌 대입제도라는 ‘고차방정식’을 풀어낼 수 있느냐에 달렸다. 전문성이 부족한 데다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는 일반 시민에게 최종 선택을 맡겼다는 점에서 정부가 ‘시민참여’의 방패 뒤로 숨었다는 비판이 나온다.

○ 신고리 원전보다 한층 복잡한 공론화 과정

16일 국가교육회의 공론화위원회가 발표한 공론화는 지난해 10월까지 석 달간 진행한 신고리 원전 5, 6호기 공론화 방식을 차용했다. 신고리 5, 6호기 공론화위원회 시민참여단은 참여 의사를 밝힌 2만여 명 중 471명이 뽑혀 숙의 과정을 거친 뒤 ‘건설 재개’로 최종 권고안을 냈다.

한동섭 국가교육회의 공론화위 대변인은 “시민참여단 400명은 7월 한 달간 4, 5개 대입제도 개편 모형에 관한 자료를 학습하고 숙의 과정을 거쳐 설문조사에 참여한다”고 말했다. 교육부는 국가교육회의의 결정을, 국가교육회의는 공론화위의 결정을 존중할 것이라고 각각 밝힌 만큼 향후 대입제도는 이들의 선택에 달린 셈이다.

하지만 신고리 원전 때보다 논의는 한층 복잡할 수밖에 없다. 김학린 공론화위원은 “신고리 5, 6호기는 건설을 할 것이냐, 말 것이냐의 문제라 시나리오가 없었지만 대입 개편은 다양한 변수를 조합해야 해 여러 개의 모형이 만들어진다”고 설명했다. 대입 개편 모형은 학부모와 교사 등 이해관계자와 교육 전문가 20∼25명이 참여한 워크숍에서 각 모형의 장단점을 취사선택한 뒤 4, 5개로 압축된다.

대입 개편 공론화 절차 중 눈에 띄는 것은 대입 개편안의 직접적 당사자인 중고교생의 의견을 네 차례에 걸쳐 듣기로 한 점이다. 다만 직접적인 이해관계가 걸려 있고 투표권이 없는 학생들은 시민참여단 400명에서 제외된다.

○ 비전문가의 여론조사 뒤에 숨은 정부

당초 문재인 정부는 신고리 원전 5, 6호기 공사 중단을 공약했으나 공론화위 시민참여단의 59.5%가 공사 재개를 선택하자 이를 수용했다. 올해 1월 문재인 대통령은 “신고리 5, 6호기에 대한 공론화 과정을 통해 보았듯이 정책의 옳고 그름에 앞서 추진 과정에서 공감을 얻어 나가는 것이 더욱 중요한 시대가 됐다”며 공론화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문제는 찬반만 결정하면 됐던 신고리 원전 5, 6호기 공론화 과정과 달리 대입제도 개편은 최소한 4, 5개의 시나리오를 두고 결정을 내려야 한다는 점이다. 교육부가 국가교육회의에 의견을 요청한 것은 △대학수학능력시험 전형과 학생부종합전형의 비율 △정시와 수시 시기 통합 여부 △수능 평가방식(절대평가, 상대평가, 원점수) 등이다. 주요 쟁점별 ‘경우의 수’만 수십 개가 만들어진다. 당장 이를 압축해 대입제도 모형을 만드는 과정 자체가 간단치 않다. 만약 시민참여단의 설문조사 결과 모형별 지지율 차이가 크지 않다면 공론화 과정 이후 더 큰 혼란이 올 수도 있다.

이성호 중앙대 교육학과 교수는 “대학이 ‘어떤 학생을 선발하느냐’와 대중이 ‘어떤 사람을 좋아하느냐’는 완전히 다른 문제”라며 “전문가 집단인 정부는 숨어버리고 아테네식 직접민주주의로 복잡한 교육 문제를 풀겠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반면 박진 한국개발연구원(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는 “대입제도 개편은 미래 세대가 희생되기 쉬운 연금개혁과 달리 공론화를 통해 집단지성을 발휘할 수 있는 사안”이라며 “다만 선호도 조사가 아니므로 정확한 정보 전달과 정보 숙지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중3 딸을 둔 학부모 김모 씨(42·서울 강남구)는 “대입은 직접 겪어 보지 않으면 문제를 알 수 없다”며 “이해당사자인 고교생과 최근 대입을 경험한 대학 신입생, 그리고 이들의 부모가 설문조사에 반드시 참여해야 한다”고 말했다.

우경임 woohaha@donga.com·김호경 기자
#대입 개편안#대학#입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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